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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24세의 대학 4학년 여학생 Y양

증세: 공부에 집중을 하려고 하면 스스로 공부하는 것을 의식해서 자신이 잘 하고 있는지를 관찰하게 되고 그 순간에 이상하게 느껴지고 돌 아이(정신 이상자)가 된 것처럼 느껴져 공부를 집중할 수가 없다.

생리적 증세들이 많았다. 늘 위가 쓰리고 위에 통증으로 고통스럽고 생리가 한 달 동안 계속되다가 어떤 때는 몇 달까량 생리가 없거나 생리가 불규칙적이고 생리통이 있고 두통이 심하고 어깨절림이 있다.

접촉: 인터넷에서 치료자의 홈 페이지에 접촉한 후에 치료를 받으러 오게 되었음

진단명: 일반화된 불안 장애, 심인성질환 장애

치료 기간: 1회기에 2시간으로1주일에 2회씩 2달 가량 그리고 나머지는 1주일에 1회 2시간으로 1년동안 집중적 심리치료를 받고 있음

치료의 결과: 치료 3개월 쯤에 치료자와 치료 동맹이 잘 형성되어 증세의 원인들이 하나씩 밝혀지고 있으며 마음의 안정을 얻어서 돌 아이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은 사라졌음

 

치료의 과정

 Y 양은 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인 여학생으로 졸업을 한학기 남겨두고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게 되었다. 증세를 물어보았을 때 공부를 하면 갑자기 자신의 공부하는 모습을 관찰하게 되고 그러면 그 다음에는 자신이 하고 있는 공부가 잘 하고 있는지 의심을 하게 되고 그 순간에는 머리가 빙빙돌아가는 것처럼 이상해지고 어지러워지고 현기증이 나고 공부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다고 했다. 과거에는 한 달에 가끔씩 그런 일이 반복되었으나 지금은 지난 달 한 달 내내 계속해서 이러한 증세가 계속되어 자신이 정신 이상자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두려워지고 자주 우울해진다고 했다. 졸업을 앞두고 미래에 희망이 보이지 않고 절망적이어서 살아갈 의욕이 없고 죽고 싶어진다고 했다. 언제부터 그런 증세가 나타났느냐고 물었을 때 Y양은 중학교 2학년 때 우연히 공부를 하다가 그런 생각이 머리를 쓰치고 지나가면서 하던 공부를 그만 두고 한참 쉬고 난 후에 정상으로 회복되어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고 했다. 두 번째 증세가 시작된 것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1년 재수를 하게 되었을 때 그 때 공부를 하려고 책상 위에 앉았을 때 자신을 관찰하고 스스로 잘하고 있는지 지금하고 있는 공부를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 정상인지를 체크하게 되어 혼란에 빠진 적이 있고 대학에 입학 후에 1학년 때 1학기를 휴학하고 다시 수능을 공부하려고 할 시점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그만 혼란해서 신경 정신과를 찾아가기 위해서 인터넷을 보니 공황장애인 것 같아서 신경 정신과에 가서 공황장애가 아닌가하고 물었더니 맞다고 해서 약물을 복용해 보았으나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2주일 후에 사라졌기 때문에 더 이상 그 문제로 고통스러워하지 않았으나 최근에 이 증세가 다시 등장하면서 1달 동안 Y양을 괴롭히는 바람에 약물 치료의 한계점을 느끼고 심리치료자를 찾아왔다고 했다.

 Y양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오빠가 있었다. 어머니는 Y양이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이상한 소리를 하는 정신 이상 증세로 Y양과 어머니 관계가 잘 형성되지 못했다고 했다. 오빠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해서 의과 대학에 진학하려고 3수를 했으나 실패하고 지금은 수의과 대학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Y양은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했다. 아버지는 오빠가 남자답지 못하다고 항상 오빠를 비난해왔었고 Y양이 남자처럼 성격이 외향적이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성격이 활발해서 특히 Y양을 좋아했었다고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에 되면서 Y양은 학급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면서 스스로 너무 잘난체 했기 때문에 친구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성격이 내성적으로 변하게 되었다고 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어머니의 정신장애가 심해서 결국은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고 이 시점에 아버지가 명퇴로 집에서 5년 동안 소일하는 바람에 경제적 어려움이 심해져서 온 가족들이 어려움에 시달리게 되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다시 직장을 얻어서 지금은 어느 정도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났으나 아직도 후유증이 남아있고 어머니는 그 이후에 약물을 꾸준히 복용해서 지금은 표가 나는 행동을 하지 않지만 가끔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했다. 어머니는 지금은 파트 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Y양은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이 가장 행복한 시절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경제적으로 넉넉해서 처음으로 35평의 새로지은 아파트로 이사를 간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아파트에서 살면서 어머니가 이웃 사람이 자신을 비난한다고 해서 초등학교 5학년 때 그 아파트를 전세내고 이웃에 있는 비슷한 아파트로 이사를 간 것은 어머니의 이웃사람의 의심으로 인한 불평불만 때문이었다고 했다. 이후에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의 명퇴로 인한 실직으로 아파트를 팔고 조금 낮은 빌라로 이사를 갔고 이후에 다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재수 시절에 지금 살고 있는 연립 주택으로 이사를 했다고 했다. 지금은 아버지와 어머니와 Y양이 한 방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조금만 구석진 방이 있지만 그곳이 좁아서 Y 양은 자신의 공간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낀다고 했다.

 Y양과 어머니 관계는 심한 갈등 관계였다. 어머니는 오빠를 끔찍히 기여워했고 지금도 오빠만 차별대우를 해서 편애를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고 했다. 오빠는 3수를 해서 의과대학에 도전을 했으나 결국은 포기하고 지금은 지방에서 하숙을 하면서 수의과 대학 3학년에 다니고 있으나 자신의 전공에 전념하는 것 같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엄마는 오빠 한데는 하숙비를 매달마다 보내면서 Y양에게는 한 푼의 용돈을 주지 않아서 Y양은 대학 입학 후에 아르바이트로 백화점에서 주차원으로 일을 해서 어렵게 대학생활을 해 왔고 생활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오빠는 대학 1학년과 2학년 때 조금은 시간적 여유가 있는 대도 불구하고 아르바이트를 전혀 하지 않고 생활비만 타서 쓴다고 오빠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Y양과 오빠와 관계는 친밀한 관계가 아니고 서로 무관심으로 적대적 관계로 오빠는 엄마와 밀착 관계, Y양은 아빠와 밀착 관계로 가족 구성원이 분열된 가족이었다.

 어머니는 늘 Y양에게 부정적이었다. 항상 Y양에게는 비판적이고 비난적이고 평가절하적이었다. "너는 왜 그 모양이냐" "누가 너 같은 사람을 데리고 가겠느냐" "너의 남자 친구가 무엇을 보고 너를 좋다고 사귀고 있는지" 늘 이런 식으로 Y양을 힘들 게 했다. 얼마전에 그녀는 피부과에 여드름 치료를 하러 어머니와 함께 피부과를 찾아갔다. 피부과 의사 선생님은 피부에 생긴 흠집을 보면서 누가 피부 치료를 했는지 물어 보았고 xx 피부과 의사에게 했다고 하니 그 피부과 의사 선생님이 잘못해서 피부에 흠집이 생겼다고 했다. 그가 이 근처에서 가장 유능한 피부과로 소문이 났으니 다음부터는 자신에게 오라고 했다. 그 피부과 의사 선생님이 은근히 자기 과시를 하는 바람에 기분이 상했던 것 이외에도 간호사가 마취를 해야 한다고 강요를 했다. 과거에는 피부 마취를 하지 않고 했다고 하니 그래도 마취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요했다. 그녀는 기분이 나빠서 다음에 오겠다고 하고 나올 때 어머니가 Y양을 나무라면서 "너 왜 고집을 피우느냐"고 나무랐다. 이런 상황에서 딸을 지원해주지 않고 간호사와 피부과 의사를 지원하는 어머니에게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피부 레이져 치료를 그만 두기로 했다고 했다. 그녀는 이런 어머니의 비판이 어린시절부터 계속되어왔기 때문에 이제는 습관화되어 어머니에게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그냥 듣고만 있다고 했다.

 

어린 시절의 상처 경험

 Y양은 어린 시절에 상처 경험이 많았다. 그것은 대부분이 어머니로부터 온 상처들이었다.

 중학교 시절에 Y양은 원인을 지금 기억할 수 없었지만 어떤 것으로 인해서 어머니가 노발대발해서 Y양을 처벌하기 위해서 뒤에서 쫓아오고 Y양은 피해서 도망을 갔다. 도망을 가면서 생각난 것이 "내가 그렇게 잘못한 것도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Y 양이 방으로 도망을 쳐 방문을 잠그고 어머니의 화가 풀리기를 기다렸으나 어머니의 분노는 더욱 커져서 걸상으로 방문에 던져서 방문이 파괴될 위험에 직면하자 할 수 없이 방문을 열어 주었을 때 어머니는 Y양을 개 패듯이 Y양의 머리채를 잡고 방 바닥에 내리쳤다. 그 순간에 죽을 것만 같은 두려움에서 Y양은 "어머니 잘못했습니다. 살려 주세요"라고 큰 소리로 울면서 말을 했다. 어머니는 닥치는 데로 두들겨 팼다. 어머니의 손에는 한 웅큼의 Y양의 빠진 머리카락이 쥐어져 있었다. 어머니는 그 순간에 이성을 잃어 버린 사람처럼 닥치는 대로 두들켜 팼다. Y양이 큰 소리로 살려달라고 하소연을 한 것은 옆 방에 있는 아버지가 듣고 자신을 보호해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딸의 애원에 가까운 비명 소리를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달려와서 어머니로부터 Y 양을 보호해주지 않았다고 회상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Y양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를 졸라서 아버지가 딸에게 바이올린을 사주었다.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Y양은 그 바이올린을 배우기 위해서 어머니와 함께 바이올린 학원에 찾아갔다. 바이올린 선생님은 Y양이 바이올린을 전공하기는 너무 나이가 많다고 하시면서 바이올린을 취미쪼로 그냥 교양으로 배우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Y양은 바이올린을 전공으로 배우기를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교양으로 배우고 싶었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어머니는 Y양을 무조건 끌고 집으로 가자고 했고 Y양에게 바이올린 배우는 것을 포기하라고 했다. 어머니의 강요와 처벌이 두려워서 Y양은 바이올린을 배우는 것을 포기하고 바이올린을 팔아라고 하는 어머니의 강압에 할 수 없이 바이올린을 팔고 말았다고 하면서 눈물을 쏟았다.

 어머니는 Y양과 아버지와의 친밀관계를 질투하고 시기했다. 아버지와 Y 양이 가깝게 지내는 것을 싫어했다. 아버지는 항상 이야기를 할 때 어머니와 오빠를 쳐다보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Y양을 쳐다보고만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이야기를 하다가 보면 아버지와 Y양이 대화에 참가하고 있고 어머니와 오빠는 항상 소외되어 삐져 있는 것을 알고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아버지와 대화를 독점하면 어머니와 오빠가 소외댄다는 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아버지와 대화를 스스로 피하게 되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딸의 이와 같은 행동을 이상하게 여기고 딸이 과거에는 유머도 하고 명랑해서 가족들을 웃기고 분위기 메이크였는데 지금은 딸의 행동이 달라졌다고 이야기를 자주 했다. 그러나 다행히고 그 이후에는 어머니와 오빠가 아버지와 관계까 개선되어졌다고 느꼈다고 했다.

 어머니는 자주 이모들에게 딸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침대에 자주 끼어든다고 하소연을 했고 이모가 "네가 그렇게 하면 안되는 것야, 자꾸 그렇게 하면 병원에 보내 버리겠다"고 말들이 지금도 떠오른다고 했다. 그 때 Y양이 밤에 너무 무섭고 혼자 잠자기가 어려워서 엄마의 손을 붙잡고 잠을 자는 버릇 때문에 잠을 자가다 엄마 방에 자주 드나든 것 때문에 어머니가 이모에서 이런 불평을 이야기해서 Y양에게 이모가 야단을 친 것이 생각난다고 했다. 어머니는 Y양이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걸핏하면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고 Y양의 방에 피신와서 함께 자는 적이 많았다고 했다. 그러나 Y 양이 성장하면서 불안해서 어머니와 함께 자겠다고 하면 어머니는 Y양의 핑계를 대면서 Y양이 남편과 잠자리에 끼어들어서 부부관계를 방해한다고 이모들 한데 하소연해서 이모들이 Y양에게 그렇게 하면 나쁜 사람이고 못쓴다고 경고를 자주 받곤 했다.

 Y양은 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를 해서 노력을 했으나 원하는 만큼 성적을 올리지 못해서 대학입시를 포기하고 한해 재수를 하게 되었다. 재수를 하면서 공부가 집중이 잘 안되고 원하는 만큼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아무리 집중을 해도 공부가 머리 속에 들어가지 않고 계속 집중이 되지 않고 잡념만 생겨서 공부를 하는둥 마는둥 해서 실망을 했다고 했다. 재수해서 서울에 여자 명문 대학에 합격해서 입학금을 내었으나 고 3학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서 조언을 요청한 결과 전문성이 세분화되어 있는 학과가 좋겠다고 해서 입학금을 회수하고 지금의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고 했다. 대학 1년 후에 Y양은 재수를 결심하고 1년 휴학계를 내고 다시 도서관에서 도전을 하다가 자신의 공부하는 모습을 의식하는 것 때문에 공부가 제동이 걸리면서 내가 돌 아이가 되는 것이 아닌가해서 인터넷에 찾아보았더나 공황장애와 유사해서 정신과에 찾아가서 자신의 증세를 설명하고 내가 공황장애가 맞느냐고 간호사에게 물었더니 간호사가 맞다고 해서 공황장애 약물을 처방받아서 몇 주일 복용하다가 효과가 없어 그만두게 되었고 이후에는 정신과를 다시 찾아가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공부를 포기하고 말았다. 한학기를 쉰 다음 다음 학기에 복학을 해서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고 했다.

 

 Y양이 대학에 들어가서 한 살이 늦은 후배 3명과 같은 나이 또래의 A양을 합쳐서 모두 4명이 그룹이 되어서 4년 동안 친하게 지내게 되었으나 A양과의 관계는 서로 껄끄러운 것이 많아서 힘들어 하고 있었고 또 다른 3명과도 서로 속 마음을 털어 놓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고 호소를 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학급 동료들로부터 직접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따돌림으로 소외됨을 느끼기 시작했고 5학년 때는 몇몇 친했던 동료들이 자신을 피하고 멀리하는 바람에 Y양은 자신이 너무 나서고 아는 척하고 잘난 척하는 것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 때부터 내향적 성격이 되어갔다고 했다. 이후 중학교 1학년 때는 한 여학생 짝지와 친하게 지내면서 친밀하게 되었는데 어느날 TV에서 하리수가 나오면서 레스비언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친한 친구와 너무 가까워지면 레스비언이 될지로 모른다는 생각에 집착해서 그 친구와 가까이 지내는 것을 피하게 되었고 이후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는 친밀한 친구가 없었다고 회고 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3명과 같이 다니기는 했으나 무엇인가 외톨이로 친밀한 의사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그 문제 때문에 공부에 늘 집중이 되지 않고 사회생활에서 잘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부정적 생각이 꼬리를 문다고 했다.

 

치료의 결과

 Y양은 치료의 과정에서 과거의 상처들을 이야기하면서 약 3개월 동안 두 시간 내내 통곡하고 우는 경우가 많았다. 어머니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 때문에 속상한 것들을 이야기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자라오면서 자신이 가장 지금까지 Y 양은 제대로 속 시원하게 울지도 못했다고 했다. 실컷 울고 나면 쌓여있던 감정들의 방출로 마음의 정화가 일어나고 긴장이 방출되어지면서 긴장 이완을 가져올 수 있고 생리적인 문제들도 자연스럽게 해결이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심어주면서 어린 시절에 있었던 문제들이 지금 현재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계속해서 분석해 가고 있다.

 Y양은 치료자를 신뢰하고 자신이 내면의 갈등과 지금까지 양육에서 고통스러웠던 것들을 소상하게 털어 놓아서 치료에서 진전이 잘 될 것이라고 예상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늘 불안하던 마음이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으며 우울하던 기분이 완화 되었다고 기뻐했다. 돌 아이(정신 이상)가 될지 모른다고 늘 걱정했던 것은 이제 사라졌으나 아직 치료 초반기여서 언제든지 되 살아날 것이 아닌가? 두려움은 가지고 있었다.

 치료자는 Y양이 어린 시절부터 엄마에게 질문을 하거나 이야기를 할 때 엄마가 자신의 문제로 골똘하게 생각하는 통에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눈치를 보게 되고 대답을 듣지 못하게 되자 점점 직접 다시 물어보는 경우가 줄어들어서 말이 없어지게 되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과 상상들을 상세하게 상대에게 전달하는 대화의 기술이 부족해서 마음에 있는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말들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자기 주장 훈련과 자기 표현 훈련을 병행하기로 했다.

 특히 대학의 친구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기분이 나쁜 일들을 가슴 속에 묻어두고 있음을 분석하게 되었다. 이것은 어린 시절에 어머니의 처벌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느낌과 상상들을 이야기하지 못한 것들과 친구들과의 갈등 관계가 연결되어있음을 분석해 낼 수 있었다. 친구들이 서운하게 하거나 상처되는 말들을 했을 때 말을 하지 못하고 속으로 분개하거나 노여움이 쌓이는 것은 어머니에게 제대로 물어보지도 못하고 대답을 듣지 못해도 그냥 넘기는 행동 패턴이 깔려 있음을 알 게 되었다.

 치료 3개월이 지나가면서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고 공부에 집중 정도가 높아져가고 있음을 Y양과의 대화를 통해서 눈여겨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