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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심하게 불안한 27세의 남자 Z씨

증세:불안해서 물건을 사기 어렵고 어떤 결정을 내리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가 어렵고 특히 부모님에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어렵다. 머리 속에 어린 시절에 상처 받은 잡다한 생각들 때문에 새벽 2시-3시까지 잠을 잘 잘 수가 없음

접촉: 치료자의 저서 "나"(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을 보고 치료자의 홈페이지에 접촉한 후에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겠다고 연락이 옴

진단명: 심한 불안장애, 대인공포증, 자아가 너무 약한 자아 장애

치료 기간: 1주일에 1회 2시간씩 1년 6개월간 치료를 받고 있음

치료 결과: 자아가 점점 자라나고 있고 부모님에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해서 분가해서 독립된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혼자서 물건을 살 수 있게 되었고 결정을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게 되었고 머리 속에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상처들은 1주일에 1회-2회 정도로 많이 감소되었으나 아직도 대형 백화점에서 가서 물건을 사는데는 망설임이 많다.

 

치료의 과정

 Z씨는 부모님으로부터 어린 시절부터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아서 자아가 거의 없었다. 밤에 잠을 자려고 하면 떠오르는 잡념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했다. MP 3를 사려고 마음을 먹었으나 이것을 정작 사는데는 7개월이 걸렸다고 했다. 어떤 것을 최종 결정을 내리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학교 시절에는 친구를 거의 사귀지를 못해서 외로웠다고 했다.

 Z씨는 장남으로 그의 부모님은 아버지가 공무원으로 명퇴해서 지금은 개인 사업을 하고 계시고 어머니는 교사로써 명예 퇴직을 하시고 지금은 집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아래로는 결혼해서 출가한 여동생이 한분이 있고 둘 째 여동생은 몇 개월 전에 결혼해서 출가를 했고 지금 막내 여동생이 직장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는 특별히 부모님 중에서도 어머니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아서 지금도 어린 시절에 받은 언어 폭력들이 마음 속에 떠올라서 잠에 잠자리에 들면 계속해서 그 생각들이 침투를 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바보 같은 놈이라고 놀릴 것 같아서 얼굴을 똑 바로 들도 다닐 수가 없고 사람이 많이 모여있는 곳은 피하고 싶다고 했다.

 Z씨의 마음의 상처는 어린 시절에 유치원 시절로 거슬여 올라갔다. Z씨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왜소하고 허약해서 항상 어머니의 걱정과 불안의 대상이 되었다고 했다. 유치원에 다닐 때는 유치원에서 점심 시간에 빵과 우유를 주었는데 그는 그것을 다 먹지 못하고 집에 가져와서 먹고 있으면 어머니가 "너는 그것도 빨리 먹지 못하느냐, 그렇게 해서 몸이 건강해지겠느냐?"고 빈잔을 주었다고 했다. 유치원에 같이 다니는 2살 어린 여동생은 항상 자신의 몫을 먼저 먹고 오빠의 빵과 우유를 빼앗아 먹었다고 했다. 유치원 때 그가 좋아하던 이웃집 여자 어린이가 있었는데 그 여자 어린이가 좋아서 뒤에 졸졸 따라다니다가 그 여학생이 왜 자꾸 따라다니느냐에 빈잔을 주자 말로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냥 뒤에 따라다녔다고 했다. 속으로는 "너가 좋아서 같이 친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떠 올랐으나 차마 입밖으로 말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Z씨가 7살이 되었을 때 하루는 어머니가 그에게 종이 쪽지에 메모를 해서 어머니 친구에게 심부름을 시켰다고 했다. 그는 심부름을 가다가 길 모퉁이에서 약장사가 원숭이를 데리고 재주를 부리면서 약 선전을 하고 있는 것이 신기해서 보고 있다가 원숭이가 둥글 게 서 있는 사람들 중에 여자 어린이의 손을 활퀴어 손에 피가 나는 것을 보고 어머니에게 이야기하기 위해서 심부름 쪽지를 잊어 버리고 집으로 오다가 어머니를 만났고 어머니에게 원숭이가 여자 어린이 손을 활퀴어 손에 피가났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어머니는 "심부름을 잊어 버리고 온 아들을 보고 "야이 썩발이 자식아! 너는 심부름도 제대로 하지 못하느냐?"라고 심하게 야단을 치는 것을 보고 이웃에 사는 아주머니가 아들에게 그렇게 심하게 야단을 치느냐며 나무라자 "저 자식 때문에 내가 내 명대로 살지 못할 것이야"는 무서운 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했다. Z씨는 그 말이 지금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종종 희상이 된다고 했다.

 Z씨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느 날 어머니는 3명의 여동생들을 모아 놓고 "너희 오빠는 나중에 혼자 살아가기 어려울 것인데 너희들이 도와주어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어머니의 이런 말은 이후에 여러번 계속되었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의 그 말을 듣고 나서 자신이 어른이 되면 혼자서 살아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늘 마음 속에서 불안해 했다고 했다. 이 불안이 점점 커져서 나중에는 "나는 커면 거지가 될 것이야, 나는 거지가 되어서 남에게 얻어먹고 살아야 돼!"라면서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불안에 떨면서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그 불안한 "거지 공포증"(Z씨의 표현)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는지 지금도 괴로워했다.

 Z씨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오줌을 싸는 오줌싸게였다고 했다. 그러나 부모님에게는 정작 그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항상 부모님의 처벌이 두려웠다고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쯤에 집에서 친척들이 모이는 행사가 있었는데 먼 친척 아주머니가 그와 이웃 친구와 둘이서 놀고 있는데 들어와서 친구의 바지를 벗기고 꼬치를 만지며 놀리자 친구가 울면서 자기 집으로 가 버려 그가 화가 나서 그 아주머니에게 왜 내 친구를 화나게 해서 집으로 쫓아 버렸느냐고 따지자 그 아주머니가 잠시 후에 혼자서 놀고 있는 방에 찾아와서 "너의 어머니가 너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 하시는데 너는 태어나서 그렇게 너의 어머니를 고생하게 만드느냐?"라고 하면서 질책하는 바람에 자신이 태어나서는 안될 사람이었다고 지금까지도 어머니를 원망하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가 그 먼 친척 아주머니한데 그런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그에게 그런 언어 폭력을 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한숨을 쉬었다.

 Z씨는 그 초등학교 4학년 쯤에 어느날 그가 길거리에서 팔고 있던 병아리를 세 마리를 사서 집에 가지고 와서 키우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Z에게 병아리는 병이 들어 살 수가 없으니 내다 버려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부지런히 키우기 시작했고 한 마리는 얼마 후에 죽었고 두 마리는 잘 자라나서 알을 낳은 암탉으로 커게 되었다. 그는 시간이 있으면 닭을 품에 안고 친구처럼 지내면서 학교에서 방과 후에 집에 오면 닭을 제일 먼저 챙겼다. 어느 날 가족들의 계 모임에서 먼 친척 고모가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해서 그 닭을 잡아 먹자고 해서 Z에게 허락을 받지도 않고 몇 푼의 돈을 주면서 그 닭을 잡아 먹기로 했다고 했다. Z군은 어머니에게 항의를 할 수 없었다. 그날 그 닭을 잡아서 닭 죽을 가족들이 나누어 먹는 것을 보고 자신을 그 닭 죽을 먹지 않았다고 했다. 그 이후에 Z씨는 지금까지도 닭 죽을 절대로 먹지 않는다고 했다. 닭 죽을 보면 그가 애지중지 키우던 닭 생각이 나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고 했다.

 Z씨가 중학교 2학년 때 쯤에 어느날 길거리에서 버림받아서 돌아다니는 개가 한 마리 Z씨를 졸졸 따라오는 것을 데리고 와서 집 안에 줄을 메어 두었으나 찾는 사람이 없어서 그냥 그 개를 키우기로 했다. 방과 후에 집에 오면 그는 늘 개와 함께 쓰다듬어 주고 같이 노는 친구가 되었다. 어느날 먼 친척 고모가 와서 그 개를 잡아 먹겠다고 끌고 갔다고 했다. 지금도 그 고모는 제사를 지내려 Z씨의 집에 자주 드나들지만 그 고모를 미워하고 원망한다고 했다. 그 고모만 보면 욕심쟁이로 Z씨의 집에 오면 어떤 것을 가지고 갈 것만 찾는다고 했다.

 Z씨가 중학교 1학년 때 쯤에 여동생이 걸 스카웃으로 단체 야영을 갔다와서 어머니가 그 여동생의 야영 훈련에 따라가서 찍은 사진을 집에서 보면서 그에게 "너는 이런 수련회에 갈 수 있겠느냐고 빈잔을 주면서 여동생이 얼마나 사진이 잘 나왔는지 예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을 보고 Z씨 자신에게는 한마디도 칭찬을 하지 않는 어머니가 여동생들은 자신과 다르게 대우를 하는 것에 분노를 느꼈다고 했다. 이후에도 그는 어머니가 유별나게 아들인 자신만 차별 대우를 하는 것을 자신보다 여동생들에게는 어떤 것이든지 칭찬을 하면서 왜 Z씨 자신에게는 그렇게 항상 험한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Z씨를 차별 대우를 하는 것은 어머니 뿐만 아니었다. 아버지도 언제나 Z씨를 보면 항상 비난이나 못한다는 말만 늘어 놓았다고 했다. 대학 때 아버지와 함께 일찍 성당에 같이 가면서 아버지는 Z씨에게 아침 일찍 우유 배달을 하는 사람을 보고 "저런 사람들은 저렇게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히 일하는데 너는 그렇게 할 수 있겠니?" 또 신문 배달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너는 저렇게 할 수 있겠니?" 언제나 아버지는 "너는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가 입에 따라 다녔다고 했다.

 Z씨의 아버지는 강박증이 있었다. 집에 오면 항상 물건이 제자리에 가지런히 있으냐 하고 비가 오면 우산들 한데서 떨어진 빗물들을 Z씨에게 걸레로 깨끗이 닦아라고 시켰다. 타올이 가지런지 놓여있지 않으면 Z씨가 바로 놓아라고 호출이 떨어졌다. 여동생을 시키면 코방귀를 끼고 하지 않으니까 Z씨의 몫이 되었다. 한번은 화장실에 타일 바닥이 더럽다고 아버지가 걸레로 깨끗하게 닦으면서 Z씨에게 같이 닦자고 했다. 여동생들은 모두가 아버지가 "결백증"이라고 빈정되고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지만 Z씨는 거절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부모님이 시키면 두 말하지 않고 하지만 속으로는 분노와 적대감정으로 부글부글 끓어오른다고 했다.

 

이론적 근거

 Z씨는 부모님으로부터 심한 학대와 편애를 받았다. 부모님은 두 사람 다 심한 불안증이 틀림없었다. 아버지는 결백증 즉 강박증을 가지고 있었고 이것은 불안장애에 속한다. 어머니는  IMF 때 명퇴하실 때까지 교사로 근무를 했다.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특히 Z씨에게 아껴쓰고 절약해야 한다고 강조를 했다. 특이하게 어머니는 교사로 명퇴하실 때까지 "누룽지만 먹고 살았다"고 했다. 무슨 뜻인지 치료자가 물었을 때 그는 어머니는 식구들이 밤을 남기면 아깝다고 늘 혼자서 밥을 먹을 때는 다른 식구들이 남긴 밥만 먹었기 때문에 평생동안 누룽지만 먹고 산 셈이었다고 했다. 자녀들이 어머니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렸지만 어머니는 막무가네로 반찬이 남거나 밥이 남으면 절대로 버리지 않고 모아서 끓인다음 먹었다, 그래서 별명이 누룽지였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 어느날 백원짜리 동전으로 껌을 한 개 사서 씹다가 어머니에게 들키게 되자 어머니는 Z씨에게 "땅을 파 보아라 100원짜리가 나오느냐? 나는 한푼이라도 절약하는데 너는 절약할줄도 모르느냐"고 야단을 첬다고 했다. 어머니는 늘 Z군에 걸핏하면 "너는 돈먹는 기계이다"라고 언어 폭력을 했다. Z씨는 어린 시절부터 몸이 약해서 늘 약을 먹고 지냈고 또 자주 병원에 드나들면서 어머니가 돈을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 항상 너는 돈먹는 기계이다라는 말을 자주 했기 때문에 지금도 물건을 사거나 돈을 쓸 때 자신이 돈을 쓸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 곰곰해 생각하다가 보니까 물건을 제대로 살 수 없다고 했다.

 어머니의 편애는 Z씨의 외가집에 대한 어머니의 하시는 말씀들을 모아서 분석해 본 결과 Z씨의 어머니가 아들을 미워하고 딸을 편애하는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보통 어머니들은 아들 하나에 딸이 셋이면 아들을 편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것은 어머니와 아들 관계는 본능적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딸을 더 좋아하고 어머니는 아들을 좋아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Z씨의 가족은 달랐다. 하나뿐인 아들을 내내 미워하고 딸을 예뻐하는 어머니를 Z씨는 이해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왜 나만 특히 아들인 나만 엄마가 미워할까 하는 것을 알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의 어린 시절을 Z씨를 통해서 분석해 본 결과 어머니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아들 한사람과 딸 4명을 두고 있었고 외아들인 큰 외삼촌만 편애해서 학교에 다닐 때도 언제나 오빠인 큰 외삼촌을 도시락을 쌀 때 달걀과 맛잇는 쌀밥을 그리고 나머지 딸들에게는 멸치 뽂음이나 콩나물만 넣어 주었다고 불평을 했고 재산도 큰 아들에게만 물러 주는 사람이 오빠를 미워해왔으며 지금도 오빠 가족들과는 내왕이 거의 없다고 했다. 어머니가 자라면서 아들에 대한 편애를 당한 것에 대한  부모님에 대한 적대감정과 분노와 노여움이 지금은 자신의 아들 한데로 흘러가고 있음을 어머니는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의 부모님의 문제가 자신의 자식에게 대물림을 하고 있는 것이다.

 Z씨의 부모님은 둘 다 불안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항상 불안한 마음을 마음이 불안한 아들인 Z에게 방출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부모님은 항상 "엄마, 아빠는 너 때문에 죽을 때 제대로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없다"는 말을 늘 해 왔다고 했다. Z씨가 불안해서 세상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 때문에 아들만 보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고 늘 말하고 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너만 보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고 지금도 이말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내 때문에 부모님이 걱정을 하고 있구나! 나는 태어나서는 안될 사람이었는데"라고 자신을 질책한다고 했다. 부모님은 자신들의 분노와 불안을 즉 스트레스를 Z씨에게 풀어온 것이다. Z씨가 부모님의 분노와 적개심을 방출 시키는 피뢰침 역할을 해 온 것임을 부모님과 Z씨도 모르고 있었다.

 Z씨는 대학에 다닐 때 아버지의 강요 때문에 자신이 하고 싶어했던 것을 전공으로 하지 못하고 경영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자신의 취미에 맞지 않고 재미가 없어서 대학 1학년 때부터 자신은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해오던 만화그리기 동아리에 가입해서 대학 4년 내내 만화를 그려왔고 동료들로부터 많은 칭찬을 받았다고 했다. 학교 졸업 후에 본격적으로 만화 그리기에 몰두하게 되었을 때 부모님은 만화를 그려서 밥먹고 살 수 없으니 다른 것으로 바꾸어라고 강압을 해서 제대로 마음 놓고 만화를 그릴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부모님이 만화를 그리는 것만 보면 분노해서 처벌적인 언어 폭력 때문에 부모님이 다 주무실 때 혼자서 밤새도록 만화를 그렸다고 했다. 그러나 아침에 조금 늦게 일어나면 부모님이 노발대발 하시면서 일찍 일어나서 할 일을 해야 한다고 제촉 때문에 괴로웠다고 했다. 그는 졸업 후에 만화를 전문으로 그리는 회사에 약 1년 동안 다녔으나 IMF로 인해 만화 회사가 문을 닫았기 때문에 결국 집에서 프리랜스로 만화를 그리기로 하고 학원을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으나 부모님의 간섭과 강압 때문에 아버지의 권유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인터넷 강의를 듣고 실습을 1달 동안 하려고 하든 시점에서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었다.

 

치료 결과

 Z씨는 자아가 너무 약해서 거의 자아가 자라질 못했다. 치료자는 Z씨가 어린 시절에 학대받은 상처의 말 때문에 늘 생각이 침투해서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음을 알고 마음대로 어린 시절의 상처 받은 말들을 머리 속에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하도록 했다. 내면 속에 묻혀 있는 상처들을 토해내게 했다. 그는 학교 시절에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서 집에 오면 부모님에게 학교에 가기 싫어요, 동무들이 나와 놀아주지 않아요? 라고 하소연을 했으나 부모님은 "네가 참아라,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했지 해결책을 주거나 도움을 주지 못했다. 학교에서 늘 혼자서 상상 속에 살았다고 했다. 한번은 학교 조회 시간에 운동장에서 아침 조회를 하면서 자신은 하늘의 구름을 쳐다보면서 신기해 하고 있을 때 선생님이 등을 치는 바람에 정신을 차려보니 운동장에 혼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있었던 일이었다. 부모님의 말씀이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으러 오기 전까지는 부모님이 자신을 사랑해서 하시는 말씀으로 알아들었으나 그러나 마음 속에 한가지는 늘 "이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서점에서 치료자가 쓴 "나"(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 부모님이 잘못된 것을 알 게 되었고 치료자에게 치료를 요청한 것이었다.

 Z씨는 부모님의 화풀이 대상이었다. 언제나 짜증 분노, 노여움, 스트레스를 Z씨에 방출 시켜온 것을 알 게 이제는 부모님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게 했다. 부모님에게 어린 시절의 상처들을 치료 시간에 재연 시키면서 부모님에게 잘못되었음을 말로써 표현하게 했다. 어린 시절의 상처 재연이 8개월쯤 계속되었을 때 Z씨는 밤에 잘을 편안하게 잘 수 있게 되었다. 부모님한데서 독립하고 싶다고 했다. 방을 얻어서 나오기로 했다. 문제는 Z씨가 부모님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한번도 이야기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부모님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훈련을 시작했다. 부모님에게 방을 하나 얻어달라고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는 연습을 몇 개월 한 후에 드디어 Z씨가 어느 날 부모님에게 오피스텔 하나를 얻어서 혼자 살겠으니 돈을 지원해달라고 했다. Z씨가 독립을 원하는 밑바탕에는 자신이 원하는 만화를 그리고 싶어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고 이제 더 이상 부모님 밑에서 자신을 위축시켜고 학대 받으며 살지 말고 자아를 성장시키는 것이 급선무임을 알 게 했기 때문이었다. 부모님은 승낙을 하면서 한 달에 생활비를 지원해주기로 했다. Z씨는 한 단계씩 일을 추진해나가기로 했다. 먼저 원하는 지역에서 오피스텔을 확인하고 가격을 알고 보고 자신이 살고 싶어하는 장소를 물색하도록 했다. 중개소를 방문하는 연습과 중개소 직원에게 이야기를 하는 연습을 한 다음에 실행에 옮겨졌고 자신이 원하는 오피스텔을 점찍어 놓게 되었다. 가격은 5천만원 정도가 되었고 한 달에 50만원 정도 생활비용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이것을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하게 했을 때 부모님은 거절했다. 그만한 돈이 없다고 했다. 사실은 부모님은 아버지가 공무원으로 근무를 해왔고 어머니가 교사로 맞벌이 부부로 경제적으로는 부족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틈틈이 부동산에 투자를 해서 몇 개의 부동산을 가지고 있었고 아버지 앞으로 어머니 앞으로 Z씨 앞으로 몇 개씩 등기로 이전을 해두고 있었다는 것을 Z씨도 알고 있었다. 부모님은 생활비용도 줄 수 없으니 네가 돈을 벌어 이사를 가라고 했다. 처음에 했던 말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해서 이야기했으나 먹혀들어가지 않았다. 다시 2단계로 전략을 바꾸었다. 이번에는 고시방을 구하기로 했다. 마음에 드는 고시방의 위치를 알아본 후에 4개 정도 점을 찍어서 다시 직접 현장을 확인하게 했다. Z씨는 그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고시방으로 최근에 지은 건물로 내부 시설도 마음에 든다고 했다. 한달에 37만원에 밥은 늘 제공해주고 부식도 한 두가지는 제공해준다고 했다. 에어컨과 히타가 가동되고 책상과 TV도 제공된다고 했다. 월 37만원과 한달에 약 40만원의 생활비용을 조달하면 되겠다고 했다. 다시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했다. 집을 다음 주일에 집을 나가겠다고 폭탄 선언을 했다. 돈을 아버지가 세를 준 점포에서 Z씨의 통장으로 한달에 약 70만원이 입금이 되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도 그것을 사용하라고 인정을 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Z씨는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둘 째 여동생 자가용으로 집을 옮겨서 혼자서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Z씨는 이제 독립된 생활을 혼자서 하게 된지 6개월 정도 세월이 흘러갔다. 처음에 부모님은 혼자 나가서 한달도 못되서 짐을 싸들고 집에 들어올 것이라고 했으나 Z씨는 혼자서 사는 것을 치료자로부터 한가지씩 배워가면서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매일 같이 운동을 1시간-2시간 하면서 체력을 다니고 남은 시간에는 만화를 그리면서 실력을 높이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을 배우면서 1주일에 1회 2시간씩 치료자에게 분석 치료를 받으면서 자아를 키우는 것을 한지 1년이 지나가면서 이제는 매일 밤마다 침투되는 어린 시절의 마음의 상처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어 하던 것이 이제는 1주일에 1회 혹은 2회 꼴로 줄어들었고 지금은 깊은 수면을 취할 수 있게 되었고 마음도 편해졌다. 그는 최근에 자신이 사고 싶은 옷 몇가지를 혼자서 쇼핑을 할 수 있게 되었다.아직도 물건을 살 때 내가 이 물건을 살 자격이 있는가? 부모님에게 야단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들고 있지만 강도는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이제 혼자서 살 수 있게 되었가고 있었다.

 얼마 전에 지금까지 6개월간 지내온 고시 방에서 여자 분들만 거주하는 고시방으로 만든다고 나가달라는 요청에 다시 인근에 고시방을 구해서 이사짐을 혼자서 용달차를 불러서 이사를 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잘 해나가고 있음에 칭찬을 많이 해주었다. 이제 자신이 원하는 만화 그리기로 경제적인 문제만 해결이 되면 나머지는 혼자서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도 심리치료를 끝내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Z씨가 처음 1년 6개월 과정의 치료를 마친 후에 다시 1년 동안의 재 계약으로 이후에 2년 6개월 동안의 치료의 과정을 상세하고 알고 싶어신 분은 다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