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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38세의 직장인 D씨

증세: 최근에 "심장마비" 심장병" "심장"등의 말들이 나오거나  TV에서 "심장마비"로 어떤 사람이 죽었다는 뉴스가 나오면 채널을 돌리거나 심장이 두근거림을 자주 느낀다고 하소연

접촉: D씨는 2년 전에 6개월간 치료자에게 공황 장애 때문에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 때 좀 더 치료를 받으라는 치료자의 권유에 이제는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겠다고 치료를 종결했던 사람이었다. 그 이후 약 1년이 지나면서 공황 장애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으나 가끔 심장 박동, 호흡에 집착해서 죽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좀더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다시 치료자를 찾아와서 지금까지 분석 치료가 계속되고 있음.

진단명: 불안 장애, 공포증(죽음 공포증), 자아 장애

치료 기간: 1주일에 1회기로 2시간씩 분석 치료를 받아서 두 번째 치료 계약의 종료 시점에서 직장을 옮기는 문제로 다시 공황 장애의 재발로써 다시 6개월간 치료 기간을 재 연장하기로 했음

치료의 결과: 아래의 분석은 D씨가 1주일에 1회 2시간씩 40시간의 치료 과정(지금까지 총 136시간의 치료--1년 5개월의 과정)에서 등장한 문제점을 분석한 것이다.

 

치료의 과정

 D 씨는 "444" "혹은 "14"에 대한 불평은 사라져서 이제는 더 이상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남아 있는 한 가지 문제는 "심장마비" "심장병" "심장"등의 용어들이 자주 머리 속에 떠오를 때 마다 심장이 벌떡거리고 호흡이 가파지면서 그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만져보는 것이 습관화 되었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처음에 1년 6개월 전에 치료자 한데 공황 장애 때문에 치료를 받으러 왔을 때 이러한 증세들을 이야기를 했었다.

 그는 "심장마비" "심장병" "심장"이라는 용어들을 그 자신이 즐겨쓰는 용어로 "망상들"이라고 불렀다. 이런 망상들이 머리 속을 스치며 지나갈 때 심장이 벌떡 거리고 호흡이 가파지고 자신의 몸을 의식하게 된다고 했다. 이런 망상적인 용어들은 주로 TV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 뉴스를 듣거나 건강 특집으로 심장에 대한 전문 의사들의 특강이 있을 때에는 채널을 자신도 모르게 돌려 버린다고 하소연을 했다. 이런 망상이 머리 속에 각끔씩 떠오르면 그는 머리를 흔들면서 "이것은 망상이야! 아무 것도 아니야! 하면서 머리 속에서 지워 버리려고 한다고 털어 놓았다.

 이제 다른 죽음에 대한 생각들 즉 "444" "14"는 더 이상 그를 괴롭히지 않는데 유일하게 한가지 남은 것이 바로 이 "망상"이라고 하소연을 하고 있고 이 증세에 대한 분석을 하기로 했다. 우선 치료자는 그에게 "심장마비" "심장병"에 관계되는 과거에 상처 혹은 기억들을 연상을 해 보라고 했다.

 즉시 그는 그가 고등학교 3학년 때 학교에서 실시하는 체력장 검사를 할 때 학생들이 그룹으로 오래 달리기를 하는데 그의 뒤에서 달려 오던 학급 동료인 K 군이 쓰러져서 심장마비로 죽어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고 기억의 회상을 털어 놓았다. 그는 운동장을 돌다가 자신의 바로 뒤에서 뛰어오던 K군이 갑자기 쓰러지면서 입에 거품을 물고 발짝을 하는 것을 보았다. 선생님과 몇몇 동료들이 그에게 입에 물을 마시게 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 앞에 훤하다고 그의 상상들을 소상하게 기술을 했다. 얼마 후에 그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 날 저녁에 몇몇 친구들과 함께 그 인근 병원의 영안실에 안치되어있는 곳에 가서 그의 조문을 했다고 했다. 그는 학교 시절에 K 군과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친하지 않으면서 왜 그 친구의 영안실에 갔었느냐? 물었을 때 그는 혹시 그에게 결려서 넘어져서 사망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 때문에 지금까지도 한번씩 "내 때문에 그가 넘어져서 심장마비로 죽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죄의식이 마음 속 깊이 자리잡고 있다고 했다. 그는 K군의 죽음이 K 군이 그에게 부딪쳐서 넘어지면서 그가 죽게 된 것이 아닌가? 라는 죄의식에서 그 당시에 그의 영안실까지 찾아가게 되었다고 털어 놓았다.

 치료자는 만약에 비록 K군에 D씨에게 부딪쳐서 넘어졌다고 하드라도 그 넘어진 것 때문에 심장마비로 사망하지는 않는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가 틀림없이 평소에 심장에 병이 있었거나 심장에 관계된 어떤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체력장 도중에 넘어져서 심장마비를 일으킬 가능성은 있지만 멀쩡하게 건강한 사람이 갑자기 운동장에 쓰러져서 죽을 확률이 거의 없다고 이야기를 했을 때 그는 대뜸 하는 말이 그 당시에 K군이 간질병을 가지고 있었다는 소문이 K군이 운동장에 체력장을 하다가 쓰러지기 전에 그런 소문이 파다했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여기에서 치료자는 한 개이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간질병을 가진 사람은 발짝으로 쓰러지면 혹시 옆에 물이나 옷이나 수건 등으로 입이 가리어지거나 호흡이 막히지 않게 하고 그대로 5분-6분 정도 가만히 두면 발짝이 지나가면 스스로 깨어 일어난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치료자가 친척의 장례식에 참석해서 그 친척 분이 영안실에서 장례를 치르지 않고 재래식으로 동네 사람들이 "꽃 상여"를 매고 매장지까지 운반을 하면서 애도의 노래(꽃 상여를 매고 가는 동네 사람들이 소리를 합창 해서 부르는 일종의 노래)를 부르면서 매장지로 가는 도중에 어떤 나이 50대 후반의 남자가 쓰러져서 간질 발짝을 하는 것을 보고 그 당시에 치료자는 미국에서 간질에 대한 지식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그 발짝을 하는 사람에게 일으켜 세우고 돌보아주려고 하는 것을 말리면서 "간질 발짝"을 하고 있는 중이니 손을 대지 말고 그대로 조용하게 지켜보고 있으면 5분-7분 정도 시간이 지나가면 깨어나서 털고 일어날 것이라고 조언을 해주었고 5분 정도 시간이 지나가면서 그 사람이 깨어나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어나서 꽃 상여가 간 매장지로 달려간 것이 기억이 나서 D 씨에게 내가 경험했던 간질병 환자의 발짝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그가 그 이야기를 듣고 K 군이 발짝을 하고 있을 때 선생님과 동료들이 K군에게 입에다 물을 넣어서 깨어나게 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고 치료자는 그것이 사망을 원인일 것이라고 추측을 했다. 간질 발짝을 하는 사람에게 금기가 물을 입에 넣어주는 것임을 강조를 했다. 입에 물을 넣으려는 것이 기도(호흡 기관)로 물이 들어가서 기도가 막히는 바람에 숨졌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선생님과 동료들은 K군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고 시체 검안 의사가 그것을 밝혀냈는지 혹은 학교에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는 D씨 자신도 모르고 있었다.

 K 군이 죽은 것은 D씨에 부딪쳐서 넘어졌다고 해도 그 이유로 심장마비로 죽은 것은 아니고 담임 선생님과 동료들이 간질 발짝을 하는 K군에게 물을 마시게 한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D가 알 게 했다. K군이 넘어졌을 때 D씨는 자신 때문에 넘어졌다는 의심과 죄의식 때문에 친하지도 않는 K 군의 영안실에 참석하게 되었던 것이라고 D도 인정을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에 D씨는 교회에 열심히 나가는 기독교인 이었고 K군의 죽음에 대한 죄으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치료자는 D씨로 하여금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죄의식을 토해 내도록 했다. K군이 죽은 "심장마비"라는 말이 그의 삶에서 처음으로 동료의 주검을 바라보면서 죽음의 이미지가 머리 속에 각인이 된 것이 분명하다고 그가 인정을 했다. 그의 마음 속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는 이 사건을 계기로 그 다음의 그의 죽음에 대한 공포로 연결되어었었던 것을 밝혀낼 수 있었다.

 그 다음에 죽음에 대한 그의 두려움은 큰 아들이 태어나고 나서 그가 울지 않아서 부인이 출산을 했던 xxx 산부인과에서 퇴원을 해서 며칠 후에 xxx 종합병원으로 큰 아들을 안고 부부가 달려 가서 중환자 실에서 1.5 개월 동안 입원해 있으면서 두 번째 심장마비로 죽어가는 것을 목격한 것을 생생하게 회상을 했다.

 중환자 실에 입원해서 부부가 교대로 보호자로써 그 중환자 실에 있었던 몇 일 후에 한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부모님과 함께 응급실에 실려 왔다고 응급 조치 후에 그의 신생아 아들이 입원해 있는 중환자 실로 들어와서 얼마 후에 갑자기 호흡이 거칠어 지면서 의사 선생님들이 달려 오고 그리고 산소 마스크를 입에 씌우고 심장 충격기로 몇몇 크게 심장을 충격을 주고 나서 TV 모니터에 기록으로 나타난 심장 박동 그래프가 삐삐-- 소리를 내면서 심장박동의 진동이 멈추는 화면을 그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고 생생하게 그 기억을 털어 놓았다. 그 소년의 부모님은 통곡을 하고 의사 선생님은 그 소년이 숨을 거두었다고 옆에서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생생하고 기술을 했다. 그 소년의 심장이 멈추는 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 보면서 그는 가슴이 두건 거리고 그의 호흡이 빨라지는 것을 느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털어 놓았다. 그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자주 난다고 했다. 심장박동을 보여주는 그 TV 화면에 심장박동이 멈추는 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 보면서 그 소년의 죽음을 직접 본 것이었다. 이 모습이 마음 속에서 각인으로 남아 있으서 그것이 그의 "심장마비"라는 죽음을 용어와 연결되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심장마비"라는 죽음의 공포는 위의 마음의 상처에 더 붙여서 그의 갖 태어나 울지를 못하는 아들과도 연결되어있었다. xxx 종합 병원에서 응급실에서 조치를 받아서 중환자 실로 옮겨진 이후에 담당 의사는 그의 큰 아들이 '희귀병'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테스트를 하고 있어서 시간이 걸리니 기다려 달라고 했다. D씨 부부는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 기다림이 1.5개월이 지나가면서 그의 절망 상태로 희망이 없어 보였다. 담당 의사는 D씨 부부에게 "이제는 마음 속에 준비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귀뜸을 해 주었고 가망성이 없어 보였다. D는 부부가 교대로 신생아로 울지를 못하는 큰 아들 곁에서 생(生)과 사(死)를 넘나들고 있는 큰 아들을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하고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당시에 D씨는 사진 일을 하고 있었다. 암실에서 사진을 현상을 하는 일을 하고 있을 때 전화 벨 소리가 울리면 혹시 종합병원에서 결려 오는 큰 아들의 사망 소식이 아닌가? 하고 가슴이 쿵쾅거리고 심장이 벌떡거리고 그리고 호흡이 가파지던 신체적인 증세들을 확실하게 기억을 하고 있었다. 더 붙여서 그는 그의 처형(처의 언니)가 그 당시에 그녀 역시 걸려 오는 전화 소리에 깜짝 깜짝 놀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부모가 아닌 형제들도 그 큰 아들의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고통에 얼마나 긴장하고 두려워하고 있었는가? 하물며 그 부모인 D씨 부부는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는가?를 느끼고 표현을 하게 했다. 그는 중환자 실에 입원을 한 환자들은 거의 생(生)과 사(死)를 오고 가는 사람들이어서 그 당시에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엄청났을 것이라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그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야기를 하고 토해내도록 했다.

 그의 아들이 희망이 없이 1.5 개월을 시간을 보내다가 D씨의 손위 동서(처의 언니의 남편)가 보다 못해서 담당 의사의 멱살을 잡고 노발대발하면서 고칠 수가 없으면 다른 큰 병원으로 보내주지 않고 왜 시간만 끌고 있느냐?고 항의를 하자 담당 의사가 큰 병원으로 가라고 허락을 해 주어서 큰 아들을 데리고 xx 대학 병원으로 달려 갔으나 그 병원이 입원을 거부하는 바람에 다시 서울대학 병원으로 달려 가게 되었고 응급실에 도착하자 말자 서울대학병원에서 즉각 큰 아들의 수술에 들어갔고 그 담당 의사 선생님이 D씨 부부에게 "왜 빨리 오지 않고 이제서야 왔느냐 지금까지 무엇을 했느냐?"고 노발대발 했다고 했다. 그 담당 의사 선생님은 "한달 만 빨리 왔더라고 아드님은 100% 정상으로 회복될 수 있었다"고 안타까워 했다. 이 말을 듣고 D 씨 부부는 큰 아들이 태어난 xxx 산부인과 의원과 xxx 종합 병원 의사들에게 살인적 분노를 느꼈지만 지금까지 한마디도 그들에게 분노를 표현하거나 항의를 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마음 속에서는 그 의사들에게 살인적인 분노를 가지고 있었다.

 D 씨 부부는 지금까지도 서로에게 그 의사들에 대한 분노, 큰 아들이 서울대학 병원에서 수술 후에도 울지를 못했고 2년이나 지난 후에 세브란스 재활치료에서 처음으로 울음을 울었을 때까지 큰 아들이 태어나서 4년-5년 동안에 그들이 받은 그 심리적 고통과 긴장, 불안, 두려움을 부부 사이에서도 털어 놓고 시원하게 서로가 이야기를 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했다. 그의 부인은 D씨에게 D씨의 누나와 어머니(부인의 시어머니)가 종합 병원에 병문안을 와서 D씨나 며느리인 D씨의 부인에게 한마디도 위로의 말이나 안타까움 등의 느낌들은 표현을 하지 않고 중환자 실에 누워있는 큰 아들 옆에서 그들이 병문안을 오면서 가지고 온 통닭은 뜯어먹으면서 깔깔거리고 웃고 있는 모습이 이해가되어지지 않았다고 몇몇 섭섭했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고 실토를 했다.

 D 씨의 부모님은 D씨가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직업 군인으로 봉급을 술로 탕진하고 생활비를 제대로 D씨의 어머니에게 주지 못하자 어머니가 돼지를 많을 때는 100마리 정도를 키우면서 자녀들에게는 신경을 써지 않아서 따뜻하게 감정을 표현해 본 적이 없었다고 털어 놓았다. 형제들은 아버지가 저녁에 술에 취해서 고함을 지르면서 집에 들어오면 어머니를 비롯해서 모두가 뿔뿔이 도망을 가서 집 주변에 숨어 있다가 아버지가 잠이 들면 방으로 들어와서 잠을 자곤 했던 것이 셀 수도 없이 밥먹듯이 했다고 회상을 했다. 어머니나 여동생 역시 마음 속에 부정적인 감정을 잘 다루지 못한다고 털어 놓았다. 그것은 D씨 역시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의 큰 아들이 중환자 실에 입원을 해 있을 동안에 그는 한번도 마음 속의 고통이나 두려움, 죽음의 공포 등을 입 밖으로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었고 겉으로는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것처럼 무감각을 느꼈다고 이야기를 했다.

 여기에서 치료자가 D씨에게 지적을 한 것은 지금까지 D씨는 그 담당 의사들에게 한번도 마음 속의 살인적인 분노, 고통을 한 번도 표현을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xxx종합 병원에서 분노해서 항의를 한 것은 D씨의 동서이지 D씨 자신은 아니라는 점이다. 동서가 D씨의 대신해서 분노를 폭발시켰지 D씨 자신이 스스로 표현을 한 것은 아니었고 그리고 D씨의 내면 속의 고통, 분노, 두려움, 죽음에대한 공포는 한번도 같이 20년을 넘게 살아온 그의 부인에게도 이야기를 털어 놓고 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D씨의 감정 표현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을 했다. 그의 부인도 D씨에게 큰 아들의 중환자 실에 입원을 해 있을 때 두려움, 고통이 없는 감정이 없는 표정에 문제점을 이미 그 당시에 지적을 했었다는 것이 이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D씨 부부가 큰 아들의 출산 이후 4년-5년 동안 받은 심리적 고통, 공포, 죽음, 두려움, 불안 등으로 받은 고통을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른 건강한 일반 부모들보다 수 백배의 고통을 받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 결과로 D 씨의 부인은 30대 후반의 젊은 나이로 갑상선 암에 걸려서 수술을 받았고 D씨 역시 1년 6개월 전에 공황장애로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고 있음을 치료자가 지적을 했을 때 그들 부부는 이미 오래 전에 서로가 그러한 병을 가진 것은 큰 아들에 인한 스트레스 때문일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털어 놓았다.

 D씨의 내면 마음 속에 갇혀 있는 죽음에 대한 공포, 심장마비, 444, 14 등에 대한 두려움을 D씨의 마음 속에 목이 졸려서 갇혀 있는 죽음에 대한 공포, 두려움이 상징적인 것 즉 444, 14, 심장마비, 심장병이라는 것들을 통해서 증세로써 하소연을 하고 있다는 것을 D씨가 알도록 했다.

 치료 시간에 D씨의 마음 속에 태산처럼 쌓여있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씻어내고 닦아 내는 치료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는 우선 xxx 산부인과 의원에 대한 분노를 토해내게 했다. 그의 마음 속에는 그 의사를 죽이고 싶다는 살인적 분노가 숨어 있었다. "의사 선생님 평범한 우리 부부가 보아도 아기가 울지를 않는데 왜 의사 선생님은 한번씩 어린이가 울지 않고 태어나는 수도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냐요? 아기가 울지 않고 용을 쓰면서 괴로워하는 표현을 평범한 우리가 보아도 알 수 있는데 왜 정상이라고 이야기를 했나요? 그 당시에 선생님이 빨리 큰 대형 병원으로 가 보세요 라고 한마디만 해 주었어도 우리 아이는 지금 정상이 되어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그 말 한 마디에 큰 아들의 생과 사ㅏ 달려 있었습니다. 서울 대학교 의사 선생님은 왜 지금 왔느냐 지금까지 왜 시간을 지체하고 이제야 왔습니까?라고 얼마나 우리 부부를 질책을 했는지 아십니까? 한달만 빨리 왔으면 우리 아들은 100% 정상으로 되었을 것이라는 말에 한이 맺힙니다. 당신을 죽이고 싶도록 분노하고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분명히 의료 사고가 아닙니까? 부인이 임신 중에 병원에 가서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았을 때 태아 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습니다. 임신 도중에 태아에게 이상이 있었다면 어떤 조치가 있었지요, 출산 직전까지 정상이었고 출산 시에 자연 분만으로 진통이 오지 않자 의사 선생님이 분만 촉진제를 놓았으나 진통이 없다 한번 더 분만 촉진제를 놓아서 두 번이나 분만 촉진제를 주사를 했고 결곡 그것도 부족해서 할 수 없이 제왕절개로 출산을 했는데 그 때 큰 아들에게 이상이 생긴 것은 틀림없습니다. 몇 년이 지나고 나서 TV 의사 선생님이 특별이 강연을 하는 것을 들었을 때 분만 촉진제가 신생아에게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이야기를 내가 직접 들었습니다. xxx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 의료 사고가 분명한데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지금까지 항의나 불안을 한마디도 하지 못한 것이 한의 맺힙니다." 마음 속에 갇힌 한 맺힌 이야기들을 쏟아 놓게 했다. 그리고 xxx 종합 병원의 담당 의사 선생님에게도 살인적 분노를 토해내게 했다. "선생님 우리 아아 마루타(실험 대상의 인간)입니까? 왜 원인을 밝힌다고 아이를 1.5개월이나 지체를 했습니까? 서울 대학교 의사 선생님과 당신네 의사 선생님들은 똑 같은 의사 면허를 가지고 있는데 그렇게 다를 수가 있습니까? 왜 선생님은 병명을 모르는 희귀병이라고 시간을 지체했는데 자신이 없으면 큰 병원으로 가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어야 지요? 한달만 빨리 왔어도 큰 아들이 정상으로 회복될 수 있다는 말에 살인적인 분노를 느낍니다."

 그는 통곡을 하면서 지금까지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내면 속에 싿아 가두어 놓은 살인적 분노를 쏟아냈다. D 씨 부부의 큰 아들에 대한 고통을 그 때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큰 아들이 중학교 3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신체적인 성장을 정상적으로 자라났지만 큰 아들은 지금도 언어적인 능력이 1살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유아기에 언어적인 능력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D씨 부부가 큰 아들이 컨트롤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치료자의 치료실에 한번 큰 아들을 데리고 인터뷰를 요청한 적이 있었다. 그 때 큰 아들과 치료자는 의사 소통이 전혀 되지 않았다. 그의 말을 치료자가 알아 들을 수가 없었고 그를 컨트롤할 수가 없었다. D 씨 부부는 지금도 밤에는 큰 아들의 소변을 두 번정도 부모님이 호스를 사용해서 빼내주어야 한다고 했다. 서울대학 병원에서 생후 3개월 정도 때 수술을 한 것이 소변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방광을 수술을 해서 소변을 밖으로 빼내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큰 아들의 컨트롤 문제 때문에 D씨는 지금도 평범한 보통의 부모 보다는 수 백배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지금 현재에도 그는 그러한 스트레스가 쌓이면 그는 내면 속에 묻어두고 있는 두려움, 공포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 심장마비, 심장병과 같은 죽음의 공포가 연결이 되어 그에게 그것을 닦아내고 퍼내고 씻어낼 필요성을 암시를 하고 있는 것임을 알도록 했다.

 지금 그의 부부가 받은 스트레스, 긴장은 바로 그가 내면에서 큰 아들의 출산 이후에 받은 4년-5년의 생(生)과 사(死)를 넘나들었던 고통, 두려움, 죽음, 긴장 등의 누적된 마음이 내면 속에 깊이 갇혀 있는 죽음의 공포들은 D 씨 자신의 죽음이 아니고 큰 아들과 그가 옆에서 지켜 본 그 초등학교 4학년 소년의 죽음 그리고 고등학교 때 그의 학급 동료의 죽음에다 큰 아들의 죽음임을 인식하도록 했다. D 씨 자신은 그들의 고통과 공포, 두려움을 D 씨 자신의 죽음올 오인을 하고 있다. 심층에 갇히 그 두려움 , 공포가 외부의 자극들 즉 TV에서 "심장마비" 혹은 "심장병" 이라는 자극들에 의해서 꿈틀거릴 때마다 심장이 벌떡거리고호흡이 거칠어지면서 자신의 몸을 체크를 하면서 자신의 죽음이 아닌가? 두려워서 벌벌 떨고 있는 것이다. D 씨의 자신의 내면의 심층에 쌓여 있는 살인적 분노, 큰 아들의 죽음에 대한 공포 등이 "444" "14" "심장마비" 등의 상징적인 증세들을 통해서 D 씨 자신의 목졸린 두려움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 게 했다.

 앞으로 남아 있는 치료 시간은 그의 내면에 쌓인 감정들을 닦아내고 쓸어내고 그리고 마음의 연고를 발라서 이 갇혀 있는 느낌들, 감정들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치유를 해 가는데 초점을 맞출 것임을 알 게 했다. 그는 치료 시간에 그 동안에 표현을 하지 못했던 느낌들을 울면서 토해내고 열심히 닦아 내고 있다.

 그 다음에 치료 회기 시간에 그는 과거처럼 마음 속에서 그의 표현인 "망상들"의 떠 오르는 빈도 수가 현저히 감소되어가고 있다고 마음에 안도 감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다시 6개월의 치료 계약을 하고 공포증에 관계된 그의 성격적인 문제를 치료를 하기로 약속을 했다. 자아 결함으로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주장이 빈약해서 다른 사람들과 갈등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제대로 다루지 못해서 이것이 생리적인 긴장으로 그리고 그가 잘못된 해석으로 심장마비, 돌 아이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신체적 컨트롤 상실로 이어진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그의 공포증은 소멸하게 되었고 그는 공포증의 관리하고 컨트롤하게 되어 그의 치료는 성공적으로 끝나가게 되었다. D씨의 치료 과정을 알고 싶은 사람은 다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