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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신문, TV 등에서 연일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한 기업가이자 정치인의 자살 사건이 화제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는 기업의 회장으로써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이었고 그리고 정치인으로써 국회 위원을 했던 사람으로써 국가로부터 많은 세금을 지원을 받았지만 그의 기업이 워크아웃으로 회생 가능성이 낮아지자 국가에서 혈세 소비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면서 자신의 구원의 손길을 외면한 정치인들을 원망하면서 복수로써 자살을 선택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필자는 그의 삶의 심리적인 면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경제적인 면과 정치적인 면은 그 분야에 전문가에게 맡기고 심리적인 면만 고찰해 보고자 한다. 필자가 그의 죽음을 해부해 보고자 하는 것은 그 사람을 비난하고 망신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고 그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 자신이 배우고 깨닫는 계기를 마련해보고자 함에서 이다 그의 죽음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만큼 그는 보통 사람들과 다른 특수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신문이나 TV 등의 언론 매체를 통해서 밝혀진 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수 억 원들의 돈들을 유명한 여야의 정치인들에게 보험용으로 지원을 해 주었으나 국가에서 지원한 경제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희생에서 어려움이 포착되자 수사 과정에서 그의 정치 자금들이 밝혀지고 그가 빠져 나올 수 없다는 절망감에서 유명 정치인들에게 SOS를 쳤으나 이를 무시한 정치인들에게 배신감을 호소하면서 그가 지원한 정치인들의 이름과 돈의 액수를 적은 쪽지를 남겨주고 자살을 한 것이 밝혔다. 그는 유서에서 정치인들에 대한 배신감, 아들에게 집 한 체 남겨주지 못함을 용서해 주기를 그리고 그가 이루어 놓은 유일한 장학 사업의 지속적인 운영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시신을 화장해서 어머니 무덤 옆에 묻어달라는 말을 남겼다.

 여기에서 필자는 왜 xx 씨가 사업가로써 정치인으로써 겸업을 하게 되었는지(어떤 전문가는 그가 기업가로써 외길을 걷거나 정치인으로써 외길을 걷지 않고 두 개의 직업을 겸업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라고 진단), 왜 죽으면서 엄마 옆에 묻어달라고 한 점(보통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사업가로써 성공한 이후에 많은 정치인들에게 비자금을 만들어 스스로 그들을 지원을 해 주게 되었는지? 자식에게 집 한 채를 물러주지 못했는지? 그리고 그의 기업체의 사원들의 결혼 식에 수 백만 원을 부조금으로 지원해 주었는지?(보통 기업가들과 다른 점) 그리고 사건 발생 전에 그는 무소유의 정신으로 모든 것을 사회에 환원하고 빈 손으로 떠나는 성숙한 사람 즉 그가 애타주의적인 사람(altruism) 임을 강조를 하면서 자서전과 TV 출현으로 성공한 사람으로 연설을 여러 번 한 것 등을 분석으로 다루어 보고자 한다.

 XX 씨는 겉으로 보면 성공한 기업가이고 그리고 정치인으로써 성공한 사람으로 보이고 그가 죽기 전에 여러 차례 TV 앞에서 그의 성공을 자랑하고 그의 업적을 자랑한 스스로 성공한 사람이라고 자기평가를 늘 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그는 자살로써 죽음을 선택하고 유서에게 복수해 줄 것을 요구하는 비자금의 지원 자의 이름과 액수를 적었다는 것으로 볼 때 분명히 그는 비극적인 삶을 산 사람임에 틀림없다고 부인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XX 씨의 비극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의 외도로 인해서 두 번째 부인과 살림을 차린 것에 분노한 어머니가 자녀들을 남겨두고 가출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계모 밑에서 생활할 수가 없어서 동생들을 데리고 집을 나와서 동생들은 친척에게 맡기고 혼자서 서울에서 가정부로 살고 (그 당시에는 식모살이라고 불렀다) 있는 어머니를 찾아갔다.

 그의 비극은 이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분석이 되어진다. 그는 아버지의 보호막에서 벗어나면서부터 그는 절망적이었음에 틀림없다.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고 돈이 없는 자신에게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는 이 세상에서 혼자 남았고 외톨이고 도와주고 이해해주고 지원해주고 이끌어주는 사람이 돌보아주는 사람이 사라져버린 XX 씨의 4학년 때의 심리적인 상처 즉 무기력함과 절망과 어떻게 혼자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공포가 그의 자아를 엄습했고 그 위기의 순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의 자아는 power 즉 힘과 돈이 있어야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절감한 순간에 그의 미래는 이 상처 때문에 이미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결정이 되었다. 사람은 돈이 없으면 권력이 없으면 힘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에서 그는 돈을 모으고 힘(권력)을 길러야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절감을 한 것이 그의 미래를 바꾸어 놓게 된 원인이 되었다.

 특별히 어린 시절에 가족의 울타리가 되는 아버지의 상실 혹은 부모의 무능력으로 어린이들이 경제적인 짊을 지게 되면 소녀소녀 가장이 되는 경우들을 많이 본다. 이들이 어린 시절에 걱정 근심이 없이 공부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게 해주어야 성장 후에 건강한 자아를 가지게 되는데 이런 부모의 보호막을 박탈 당한 나이 어린 청소년들은 자신의 삶의 짊을 스스로 혼자서 지게 되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희생하고 반납하고 심리적인 방어의 옷을 입게 된다.

 그는 어머니를 찾아갔다. 그 때 어머니가 유일한 희망이었고 보호막이었다. 어머니는 그를 만나서 같이 생활을 하면서 아들의 보호막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그 보호막은 충분하지 못해서 그는 어머니의 보호막 안에서 편안하게 공부를 할 수 없었다. 일단 살아 남았지만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결심으로 그는 심부름을 하는 소년으로써 돈을 모으고 사업으로 뛰어들어서 기업가로써 성공을 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돈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돈을 벌려고 하면 권력과 결탁을 해야 한다는 것을 몸소 깨우치면서 배웠다. 권력자의 한 마디에 은행 융자가 일사천리로 해결이 되고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Money Talk” 라는 것을 뼈 속 깊이 새겨지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을 자아의 보호를 위한 방어적인 갑옷이었기 때문에 이것이 일시적으로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나 이것이 결국은 자신의 발목을 잡을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이후에 그의 정치적인 행보는 충분히 이해가 될 것이다. 그는 정치인들에게 돈을 지원해서 보험 용으로 들어놓게 되었다. 그것은 여야가 없이 이름있는 정치인들에게 정치 자금으로 미리 지원을 해서 위기 시에 도움을 받는 것이었다. 이러한 그의 사고 방식은 처음에는 효과가 있었다. 똑 같은 대통령으로부터 두 번이나 사면으로 효과를 보았다. 그러나 그러한 그의 사고 방식이 새로운 시대로 발전하면서 그의 사고 방식이 진화를 하지 못하고 고착이 된 것이 문제였다. 이것은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자아의 성장이 중지된 초등학교 4학년의 그 시점에서 그의 자아는 자라나지 못하고 방어의 껍질 속에 갇히게 되기 때문에 똑 같은 실패를 반복하게 된다는 정신분석적인 이야기를 이해하면 왜 그가 시대가 변했지만 그는 과거의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똑 같은 문제 해결 방식을 고집 하느냐?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은 그는 그의 문제 해결 방식이 21세기에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배신감으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보험을 들어 놓았던 그 이름있는 권력가들도 그의 요구를 더 이상 들어줄 수 없었기 때문에 그의 SOS에 응답을 하지 못한 것을 그는 그의 요구를 무시한 배신자로 복수를 선포하고 유서에서 그들에게 지원한 돈과 이름을 남기고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두 번째는 그는 사업자로써 성공한 이후에 장학 사업으로 많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을 지원하고 돌보아주었다. 그리고 그의 사업체 직원들이 결혼을 할 때 수 백만 원의 부조금을 지원했다. 그리고 정치인들이 요구를 하면 망설이지 않고 자발 적으로 지원을 해 주었다. 첫 번째와 세 번째는 이미 이야기를 해서 이해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보통 기업가들을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의 어린 시절의 심리적인 상처와 연결 시켜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그가 어려운 사람들을 지원하는 행동을 정신분석에서는 애타주의(altruism)라고 부른다. 그가 애타주의 자가 된 것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무리하게 분수에 넘치게 남에게 퍼주고 도와주는 것은 (사실은 그는 과도한 소비 때문에 기업이 회생 절차에 들어가서 국민의 세금을 동원하게 된 것이 아닌가?) 의존에 대한 방어로 보고 있는 정신분석학 적인 이론과 일치된다. 그는 의존을 하지 않고 혼자서 살아남기 위해서 맹세를 한 초등학교 4학년이 아니었던가! 의존할 수 없었고 의존을 해 왔던 아버지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남에게 의존은 결국 자아의 몰락으로 간다는 것을 깨달았던 초등학교 4학년 시점이었다. 고로 의존에 대한 방어로써 남에게 무리하게 퍼주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건강한 애타주의가 아니고 자아의 방어로 자아 보호를 위해서 보호막이었기 때문에 결국은 들통이 나게 되었다. 보통 때는 의존에 방어의 진지 구축을 우리가 모른다. 그러나 그의 행동을 잘 보면 그가 평소에 보험을 들어 놓았던 권력자의 power에 대한 보험으로 비자금을 모아서 지원을 해 준 것은 위기 시에 의존을 위한 보험이 아니었던가? 결국 그는 두 번의 위기 시에 똑 같은 대통령으로부터 두 번이나 사면으로 권력의 힘을 실감을 했다. 그러나 마지막에 의존의 힘이 통하지 않았고 그는 그들을 배신자로 원망하면서 죽음을 선택을 했다. 즉 의존에 실패한 것이 결정적인 배신감으로 연결된 것이 아닌가! 표면적인 애타주의의 심층에는 의존에 대한 방어임이 증명이 된 것이 아닌가? 마지막의 방어적인 갑옷은 처음에는 효과가 있었지만 결국에는 그 갑옷이 내 자아의 성장을 방해하는 방해물이 된 것이 프로이트(Freud)가 말하는 방어 기재의 작용이 아닌가!

 세 번째 그는 죽음에서 어머니의 무덤 옆에 묻어달라고 유서에 썼다. 그가 초등학교 4학년 때 그가 가출을 했을 때 절망감, 무기력과 도와줄 사람이 이 세상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유일한 희망으로 엄마를 찾아갔다. 엄마는 그의 보호자가 되어주었다. 똑 같이 그는 마지막 순간의 절망적 순간에서는 그는 평소에 보험을 들어놓았던 power의 권력자들에게 도움의 SOS를 보냈지만 시대 상황이 달라진 상황에서 아무도 그의 SOS의 구출 신호에 응답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극도의 배신감에서 그는 어머니를 찾았으나 어머니는 고인이 된 사람이었다. 그가 무의식적으로 마지막으로 SOS로 구원을 보낸 사람들은 위기 시에 그를 구원해줄 어머니를 대신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실패했고 그는 죽음을 선택하면서 마지막으로 엄마를 불렀다. 그 엄마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그를 도와줄 수 없었다. 고로 그는 죽음의 순간에서 엄마를 부르면서 엄마 옆에 묻히기를 소망을 한 것이다. 결국은 죽어서 초등학교 4학년 때의 그 자아가 찾던 엄마의 구원의 품으로 되돌아간 것이 아닌가!

그는 절망감, 무기력, 두려움과 공포에 직면할 때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의 놀란 그 자아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첫 번째는 어머니가 구원을 해 주었다. 중간에 위기 때는 두 번이나 사면을 받아서 어머니 대신에 구원자들이 어머니의 대역을 해 주었다. 그러나 세 번째는 어머니를 대신하는 구원자는 등장하지 않았다. 만약에 건강한 자아가 작동을 했더라면 위기 상황을 예측해서 건강한 재무 구조로써 자치적으로 혼자서 해결할 수 있었을 터 인데 위기 시에는 반복해서 초등학교 4학년 때의 그 자아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위기 때의 구원자들은 어머니로 변장한 구원자들이지 실제 어머니는 아니다. 그의 4학년 때 상처 받아서 놀란 자아는 다른 해결 방법을 모른다. 왜냐하면 그 자아는 이미 상처를 받아서 문제 해결 방식이 구원자에게 의존하는 방법 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신분석에서 상처 받은 자아가 치유되지 않으면 비슷한 상처의 상황에서는 반복해서 등장하게 된다는 성장이 중지된 자아의 반복된 등장을 입증해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위기 시에는 구원자에게 의존하는 방법 밖에 모르는 그 4학년 때의 자아는 그 구원자는 실제 엄마가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는 실망과 좌절을 안겨주게 되어 있다. 그것이 빨리 오느냐? 늦게 오느냐? 그 차이일 뿐이다.

 네 번째 XX 씨는 유서에서 아들에게 집 한 채 남겨주지 못한 아들에게 용서를 빌었다. 사실 건강한 사람들은 자신의 기업들을 자식들에게 남겨주거나 전문 경영인들에게 회사를 남겨주고 무소유로 성인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회사의 사원들에게는 부조금으로 수 백만 원의 봉투를 돌리면서도 정작 자신의 아들에게는 집 한 체 남기지 못한 것을 용서를 빌었다. 이것은 그와 아버지의 관계가 그와 그의 자식인 아들과의 관계를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아버지와 그의 관계 그리고 그와 그의 아들과 관계가 비슷하지 않는가! 보통 우리는 부모로부터 상처를 받은 경우에는 절대로 자식에게는 그러한 상처를 남기고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아들을 과잉보호를 하거나 혹은 자신도 모르게 아들에게 그렇게 똑 같은 반응을 해서 반복을 하게 되는 것을 정신분석에서 지적을 하고 있다. 둘 다 과정은 다르지만 결과는 똑 같다. 과잉보호는 자녀의 자치심을 망가뜨리고 부모에게 의존하게 만들기 때문이고 그리고 후자는 박탈로써, 결함으로써 결국은 똑 같은 상처를 입히기 때문에 결과는 자녀의 상처로 대물림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가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었다면 그는 재산을 모르고 기업을 자식들에게 물러 주거나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건강한 재무 구조로써 정당하게 대출을 해서 건강한 기업을 일구고 그리고 전문 기업인들에게 재무 구조가 건강한 회사를 남기고 은퇴해서 삶을 정리하고 세상을 떠나는 것인데 그는 어린 시절에 심리적인 상처를 받아서 그 방어로써 삶을 살았기 때문에 결국은 그 방어의 갑옷이 그 자신의 삶을 그런 방식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복수를 외치면서 자신의 도움의 손길을 외면한 사람들에게 배신감으로 치를 떨면서 그들의 이름을 적고 몇몇 사람들은 자신의 SOS 요구를 거부하지 않고 전화라도 받아준 사람들 한데서는 돈의 액수를 적지 않고 SOS의 도움을 외면한 사람들 한데는 지원한 돈의 금액을 적어서 복수를 외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xx 씨가 예견한 결과와 현실적으로 얼마나 동 떨어져 있는가?를 그가 죽고 나서 검찰이 수사를 하면서 드러난 그들의 처벌의 가능성을 짐작을 해 본다면 그의 사고 방식이 현실과 거리가 한참 멀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죽어서 복수를 외친 그의 소망이 얼마나 달성이 되어 죽은 후에 그의 소망이 이루어질까? 하는 점을 생각에 보면 그의 사업의 방식, 그의 문제 해결 방식과 사고 방식이 현실과 많은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점들을 회상해 보면 그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심리적 상처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한가지 평소에 보험을 들어서 철석 같이 어머니처럼 구원자가되어질 것으로 믿었던 사람들이 자신의 SOS에 응답하지 않거나 무시하는 것을 보고 죽음으로 복수를 맹세하고 스스로 목슴을 끊었다. 그 내면의 심리는 엄청난 분노, 배신감, 적대감정, 노여움이 부글부글 끓고 있음을 엿 볼 수 있다. 이것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배신감의 적대감정, 노여움, 화, 분노가 억압되고 누적되어져서 갇혀 있다가 SOS에 반응하지 않는 사람들 한데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억압해 놓은 분노들이 한꺼번에 폭발하면서 극단의 선택으로 몰고간 것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부터 쌓인 분노, 적대 감정, 노여움, 화를 말로써 표현하고 치료를 받아서 방출시키지 못하면 언젠가는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서 자아를 파멸 시킨다는 정신분석적인 이야기가 여기에서도 지적이 되고 있다.

 동시에 TV, 신문에는 보도가 되지 않았지만 필자가 유추해 볼 때 xx 씨는 평소에는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고 무골호인 소리를 듣는 착한 사람이고 도덕적인 기준이 높은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주변에서 xx 씨를 선한 사람으로 착한 사람으로 남을 속이거나 사기를 치지 않는 사람으로 평가되어지고 있다고 유추되어진다. 이것이 분노, 적대 감정, 화, 노여움을 억압해서 표현을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이 분노를 표현을 할 첫 번째 대상인 부모님에게 표현을 할 수 없었고 살아남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 비위를 맞추어 온 사람으로 결국 억압되고 누적되어 쌓인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을 하는 경우에는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안타까운 것은 그는 평소에 외롭거나 스트레스 시에 이름 있는 스님을 찾았고 그 스님이 그를 만나서 유명한 운명 예언 가(점쟁이)에 데리고 갔을 때 복채 돈이 없어서 그 스님이 20만원을 대신 지불을 했고 그리고 식당에서 점심 값이 없어서 그 스님이 대신 지불했고 그리고 차비가 없어서 대신 지불해 주었다는 뒷이야기는 그의 마지막의 삶이 어떡했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돈이 있을 때는 함부로 쓰고(돈이 언제나 넘쳐 날 것이라고 생각) 그리고 돈의 부족과 자신의 미래의 몰락과 불행을 건강한 자아로써 예측하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다. 후자는 권력과 힘에 의존한 자아의 방어에서 오는 의존심을 과신한 것을 보면 잘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위의 XX씨의 삶을 통해서 우리는 어린 시절의 상처를 모르면 언젠가는 그 상처로 인해서 잘 나가던 삶들이 한방에 파괴 되거나 한 방에 치명타를 입고 파멸한다는 정신분석을 창조한 프로이트(Freud)의 명언을 한번 더 마음 속에 되새겨 보게 한다. 이러한 사례들을 우리의 주변에서 너무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명인들이 어떤 잘못된 한방의 실수로 인하여 앞길이 막히거나 삶이 붕괴되어 파멸하는 것을 많이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한번의 실수로 그리고 운명으로 팔자 탓으로 돌리는 것을 본다. 그러나 정신분석에서는 지적을 하는 어린 시절의 상처들은 치료 받아서 수리하고 고치지 않으면 평생 동안 반복해서 등장한다는 것을 우리 자신이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분석 치료는 증세만 다루는 것이 아니고 자아가 어떻게 작용을 하고 어떻게 나를 대인관계를 하고 내 삶을 이끌어 나가는 가? 의 자아를 이해하는 데 치료의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어린 시절의 상처를 달고 살아간다. 그것이 좀더 심각하거나 경미하거나 상처가 많거나 적거나 하는 차이 일뿐 우리는 누구나 상처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것을 깨닫고 나를 이해하고 그것을 고치려고 하는 생각과 행동의 차이일 뿐이다. 자신의 자아의 상처를 알고 그것이 작동을 알면 그 상처로부터 피할 수 있고 그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시대에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아라라고 한 말이나 성서에 나오는 말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말은 내가 나를 알고 내 자아를 알고 내 자신에 대해서 현명해지면 내 마음 속에서 생겨나는 운명의 위기와 팔자로써 받은 상처를 피해 갈 수 있다는 상식적인 말과 일치되지 않는가!

 

***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위의 xx 씨의 죽음의 분석한 내용을 퍼가거나 옮기거나 짜집기를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드립니다. 그의 죽음을 비하하거나 비난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습니다. 단지 그의 기구한 삶을 살아온 과정의 분석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자아를 스스로 되돌아보고 깨우치고 배우기 위함에서 이 글을 써다는 것을 이해해 주세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