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blog.naver.com/psychclinic/220437774379

 얼마 전에 각종 언론 매체들을 통해서 교수가 제자를 폭행하고 인분을 뒤집어 씌웠다는 언론 보도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한 것과 비슷한 시기에 한 출판사에서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매출을 10배 이상으로 끌어 올려서 출판업계에서 전설적인 인물이 된 xx 사장을 그 회사의 회장이 200억 사기 혐의로 고소를 함과 동시에 그 사장 역시 350억원의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는 혐의로 그 회장을 맞 고소한 사건(연합 뉴스 15, 7,31)이 비슷한 시기에 터져 나와서 네티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두 개의 사건은 유사한 시기에 일어났다는 점과 두 개의 사건이 처음에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만났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서로 물고 뜯는 원수지간으로 변했다는 것이 공통되는 점이어서 흥미를 끈다.

 일반적인 관점으로 보면 교수와 회장은 갑(甲)질을 한 가해자이고 폭력을 당한 그 제자와 그 회사를 운영해 온 그 사장은 힘없는 피해자(乙)로 우리는 전자를 슈퍼 갑질을 한 사람으로 힘있고 권력이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힘없고 나약한 약자에 대한 횡포로 전자를 비난하고 그들에게 공분을 터뜨리면서 흥분해하고 비판을 한다.

 그러나 가해자(갑)와 피해자(을)의 관점에서 보면 위의 사건들은 100% 갑이 잘못한 것으로 보고 그들을 비판하고 비난을 하게 되어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왜 처음에 만났을 때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결국은 물고 뜯고 싸우게 된 원수지간이 되었는지?를 설명할 수가, 이해를 할 수가 없게 된다.

 이것을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왜 스승과 제자의 사제지간이 나중에 원수지간으로 변했는지?하는 그 이유와 그 해답이 보인다. 정신분석에서는 외형적인 관계의 모습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내면의 심리적인 자아의 관점에서 갑의 자아와 을의 자아의 쌍방관계 혹은 상호작용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예를 들어보자. A라는 내성적이고 착한 말이 별로 없는 조용한 학생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장난끼가 심하고 잘 다투고 다른 동료들을 잘 자극을 하는 B라는 학생이 A라는 학생을 자극을 해서 가만히 있는 사람을 괴롭히게 되자 A가 "귀찮게 하지 말라"고 몇 번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뒤에서 뒤통수를 찌르고 깔깔거리며 괴롭히자 마침내 폭발해서 B의 얼굴을 때려서 코피가 나서 소동이 일어났다. 결과적으로 A는 가해자, 폭력을 행사한 사람으로 그리고 B는 얻어 맞은 피해자로 보이게 된다. 외형적으로 보면 A가 나쁜 사람으로 비난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쌍방관계, 상호관계를 연결해 보면 자극으로 A를 화내게 한 사람은 B로써 B가 잘못해서 A로 하여금 화를 내게 만든 장본인이다. 물론 A가 말로써 표현을 하지 않고 폭력을 사용한 것은 잘못이지만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내 글을 읽어주지 바란다. 위의 갑과 을의 관계를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재 조명을 해 보기로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은 혼자서 잘 수가 없다는 말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명언들도 외형적으로 보면 원룸에서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서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살고 있는 독신 남녀들의 경우에는 혼자서도 잘 살고 있지 않느냐?라고 반문을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외형적으로 혼자서 살고 있다고 해도 내면적으로는 혼자가 아닌 적어도 두 사람 이상과 관계를 하면서 살고 있음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내가 심층 분석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는 이유).

 우리가 아침에 출근 직전에 거울을 쳐다 보면서 " xx야 오늘도 잘 해보자, 파이팅!"을 외치면서 현관문을 나설 때 우리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서로 대화를 하고 용기를 주면서 격려하고 있지 않는가! 이런 관점에서 정신분석에서는 우리의 내면 속의 여러 개의 자아들을 의인화 시켜서 이들이 서로 대화를 하고 격려를 하고 견제를 하고 조화를 이루면서 살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프로이트(Freud)는 자아가 원초자아, ego, 초자아의 세 개로 구성-마음의 구조 이론). 이러한 관계를 정신분석에서는 "대상관계")(마음 속의 자아 이미지들과의 관계)라고 부른다.  나아가서 이러한 내면 자아들과의 관계가 외부적인 대인관계에서 그대로 옮겨져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하게 된다고 보기 때문에 정신분석에서는 "내면의 자아와 대화"를 중요시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신분석에서 우리의 내면 자아를 들여다 볼 때 나(self)과 너(object)로 크게 두 개로 분류를 할 수 있다. 나(self)는 내 자아의 이미지들로 구성되어져 있다. 내 자신의 지금까지 경험의 총합을 의미한다. 너(object)의 이미지에 해당되는 것 속에는 엄마의 이미지, 아버지의 이미지, 형제들의 이미지, 친구들의 이미지 등등 수 많은 이미지들의 집합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고로 우리는 크게 두 개의 자아로써 자아(self)와 대상(object)으로 나누고 그 대상 속에는 수 많은 다른 이미지들로 구성되어져 있는 경험들을 대상(object) 이미지들과의 관계로 구분을 해서 분류를 한다. 여기에서 너의 이미지들을 통합해서 대상(object) 으로 통합을 해서 대표적인 이미지로 대상(object)불리우는 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우리 인간이 출생 이후에 가장 먼저 생기는 이미지는 엄마의 이미지 즉 너의 이미지(object)이다. 생후 7개월-9개월 쯤이면 엄마의 얼굴을 알아보는 시점에서 아기는 엄마를 구분하게 된다. 이 시쯤을 우리는 이것을 "아기의 낯가림"으로 불리운다. 아기는 엄마의 얼굴 이미지를 낯선 사람들과 구분을 하게 되고 엄마에게 매달리게 된다. 이 시점에서 정신 장애에서 가장 먼저 생기는 분리불안이 등장하게 된다. 엄마가 아기 옆에서 아기를 보호해주게 되면 아기는 마음의 안정과 안전을 느끼게 된다. 이 시점에서 엄마가 옆에 없거나 아기가 불안하게 되면 분리불안의 장애가 시작된다. 아기의 나(self)의 이미지는 엄마의 이미지에서 분리되어 분화되어 나오게 되는데 1.5세가 되면 아기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아(self)인 나를 알 게 된다. 고로 자아(self)보다는 대상(object)이 먼저이다. 정신분석에서는 엄마의 이미지가 나의 이미지의 모체가 된다는 점에서 이러한 이론을 대상관계(object relaltion)라고 부른다. 참고로 엄마의 이미지가 good한 이미지로 아기의 마음 속에서 형성되어져야 나중에 아기의 나(self)의 이미지가 good 한 자아 이미지가 된다는 점을 참고로 하기 바란다.

 요약을 하면 너의 이미지는 엄마를 대표되는 이미지로써 object 즉 대상의 이름을 따와서 이론적으로 설명한 정신분석적인 이론을 대상관계 이론(object relation theory)이라고 부른다. 최근에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에서 가장 인기를 모으고 있는 치료 이론으로 대상관계 이론이 여기에서 시작이 된다. 좀더 상세한 것을 알고 싶은 사람은 다음의 홈 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다시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관계로 되돌아가 보자. 그들의 초반기 관계는 한 사람은 스승으로 한 사람은 제자로 시작이 된다. 스승의 입장에 있는 그 교수는 xx 학과에서 이름난 유명한 능력있는 사람으로 xxx 학회 회장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뛰어난 능력을 인정을 받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카리스마가 있고 일을 미루지 않고 즉각 즉각 처리를 하는 다소 권위적인 사람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는 그의 제자를 조교로 뽑아서 도와주고 훈련을 시켜서 그가 xxx 학회 회장으로 있는 그 학회에 그 제자를 취업을 시켜준 은인이고 돌보아준 부모 같은 사람이었다. xxx 출판사의 회장님은 xxx를 그의 회사의 사장으로 일자리를 주고 신뢰감으로 회사를 맡기고 격려와 용기를 주어서 일자리를 준 사람으로 xxx 사장은 그 회장님을 은인으로 스승으로 존경하고 하늘처럼 존경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증거로써 그 회장님을 "교주(종교의 시조)"로 표현을 했다는 것(연합뉴스, 15, 7,31자 인용)에서 그들의 초기 관계는 스승과 제자 즉 사제지간으로 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제지간이 나중에 원수지간으로 변모해 간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그 교수는 어린 시절에 권위적인 아버지 혹은 어머니 밑에서 자란 사람이 틀림이 없을 것으로 유추된다. 아버지가 권위적, 명령적, 지시적, 강압적인 사람인 것을  그 스스로 싫어하면서도 어느 새 어른이 된 그 교수는 자신이 스스로 권위적이고 카리스마적이고 지시, 명령, 강압적이 되어있음을 발견을 하게 된다. 고로 일을 능률적으로 잘 처리하고 즉각적으로 해결했기 때문에 그 능력을 인정을 받아서 유능한 이름난 교수가 된 것은 부인할 수가 없을 것이다.

 동시에 그 제자의 경우를 살펴보자, 그 제자는 어린 시절부터 착하고 정직하고 말을 잘 들어서 부모님에게 착한 아들로 자라났음이 틀림없다 .부모님은 부모님의 말을 잘 듣는 자녀들을 착한 자녀로 칭찬을 주면서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고 즉각 따라 오도록 강조를 해 왔기 때문에 자녀는 자연히 자아의 목소리가 약해지고 부모님의 말씀을 잘 따르는 순종적인 자녀가 되었다. 즉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는 소홀했기 때문에 자기 표현이 없고 시키는 일을 잘 따르는 나쁜 말로하면 복종적인 자녀가 된 것이다. 자녀들이 자신의 의견이나 목소리나 부모님과 다른 의견을 제시를 하게 되면 부모님은 자녀들을 어른들의 말에 토를 달고 반항적인 자녀로 좋지 않게 생각을 하는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은 순종적인 자녀, 복종적인 자녀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부모님은 모른다.

 더 붙여서 자녀들이 자신들의 의사나 의견을 제시를 하려고 하면 "요점만 이야기해라! 내가 지금 시간이 없어서 너의 이야기를 다 들어 줄 수가 없어!"라고 하는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은 순종적이고 복종적이고 부모님의 눈치 ,비위를 맞추는 자아가 연약한 사람으로 자라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자녀들은 불안한 자녀들로써 독림심이 약하고 의존적이고 부모님처럼 자신을 돌보아주고 명령, 지시하는 사람들 즉 자신의 보호자적인 사람들을 선호하게 된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그 교수는 자신의 말을 잘 듣고 순종적으로 따르는 제자를 좋아하게 되고 그를 돌보아주고 안내해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승승으로 동시에 그 제자는 의존적이어서 자신을 안내하고 돌보아주고 자신을 인도해주는 부모님과 같은 스승인 그 교수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된 것이다. 그 회사의 회장님은 그 여성을 부모님처럼 돌보주고 일자리를 주어서 사장 자리에 앉히게 된 것이고 그 사장은 그 회장을 교주처럼 스승으로 모시고 존경으로 하늘처럼 떠받들면서 존경과 숭배적인 인물의 관계(연합뉴스, 15, 7,31자 인용)가 초반기 그들의 사제관계가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관계는 우연히 만들어지는 관계가 아니고 어린 시절부터 그 스승과 제자는 각자의 어린 시절의 자아의 취약점에 의해서 서로가 물고 물리는 관계로 만들어진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서로 얽히게 되면 낚시에 걸린 물고기처럼 한 사람은 낚시(갑)가 되고 한 사람은 물고기(을)가 되어서 물고 물리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형성되어지게 된다. 정신분석적인 용어로 말을 하면 새디즘과 마소키즘적인 관계가 된다(이 관계는 아래에서 상세히 설명 참조).

 여기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의존적인 자아를 가진 그 제자는 매사에 일일이 그 교수에게 하나씩 하나씩 물어보고 일일이 지도를 받아가는 과정이 초반기에는 사제지간으로 도와주고 도움을 받는 관계로 발전하지만 일일이 계속해서 질문을 하고 결정을 내려달라고요구를 하게 되면 교수는 질식을 느끼게 되고 짜증이 나고 분노하게 된다. 유아들이 계속해서 보채게 되면 화가 나고 여러번 이야기를 해도 계속해서 보채게 되면 분노하고 짜증이 나는 것과 같은 이치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교수는 그 제자를 비난하게 된다. 내가 일일이 하나씩 가르쳐주었는데 너는 지금까지 무엇을 배웠느냐? 앞으로 일일이 나에게 묻지 말고 알아서 해라! 라는 비난이 따르게 된다. 제자는 교수의 그러한 지적에 어절줄 몰라해서 어떤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처리를 하게 되면 그 때가서는 그 교수는 자신의 지시가 아닌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을 싫어해서 자신의 지시, 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마음대로 하게 되는 것에 비판, 비난이 따라오게 된다. 어느 쪽으로 해도 비난, 비판이 따라오면서 그 제자는 불안하게 되고 그 교수 앞에서는 긴장하게 되면서 불안이 가중된다. 불안이 가중되면 뇌의 회전 능력이 떨어져서 실수를 잘 하거나 잘 잊어먹거나 일을 잘못 처리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처벌과 질책과 비난이 따라오게 되면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주인과 노예 관계가 된다.

 출판사의 사장이 그 회장을 상대로 낸 고소장에 의하면 초반기에는 서로 좋은 관계로 시작되었으나 출판사가 성공해서 전국에 이름이 나게 되고 수익이 커지면서 그 회장의 형님의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돈 때문에 그 사장의 출판 회사의 운영에 일일이 회장님이 간섭을 하고 회사 돈을 마음대로 사용하려고 하는 것을 그 사장이 거부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회장의 형님의 회사가 어려워지자 출판사에 인수 압력을 넣는 것을 거부하자 노발대발해서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사람"으로 사장을 간섭하고 미워하기 시작면서 갈등이 시작되었다고 밝히고 있다(연합뉴스, 15, 7,31자 인용).

 제자는 스승에게 자신의 고통과 억압, 강압, 부당함을 말로써 표현을 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복종, 순종을 미덕으로 배웠기 때문에 표현을 할 수가 없다. 표현을 하게 되면 반항, 도전으로 말대꾸를 하는 불량 제자로 낙인이 찍히기 때문에 눈치만 보면서 그 고통을 스승이 알아서 해결해주기만 기다리게 된다. 반약에 불평 불만을 이야기를 하거나 터뜨리게 되면 즉각 불이익이 따라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불평불만과 고통을 말로써 표현을 할 수가 없게 되어있다.

 그 학생은 조교로 그 교수의 지도를 받아서 xxx 학회에 일자리를 준 그 교수에게 불평불만은 일자리를 잃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복종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그 학생은 상대방이 모든 고통을 알아서 해결해 줄 것으로 철썩 같이 믿고 내면의 고통을 말로써 표현을 하지 않고 참고 억누르고 견디어 오지만 말로써 표현하지 못하는 상대방의 머리 속을 우리가 들여다 볼 수 없기 때문에 알아주지 못하고 서로 갈등은 쌓이게 되고 누적되어 쌓이게 된다.

 참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해서 스승에게 한 마디를 하게 되면 그 스승은 그 제자에게 "내가 너를 키워주고 돌보아주고 너를 위해서 부모처럼 자식처럼 돌보아준 나에게 네가 감히 나를 배신자가 되려고 하느냐? 너는 나에게 그렇게 할 수 없다! 감히 네가 나에게 도전을 해!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네가 나에게 이렇게 할 줄 몰랐다"라고 억박지르고 모욕, 무시 처벌이 몇배 더 가중되어 되돌아오게 된다.

 이런 관계를 정신분석에서는 새디즘과 마소키즘의 관계라고 부른다. 이 전문 용어는 원래 섹스 이론에서 유래된 말로써 섹스 상황이 아닌 넓은 의미로 사용되어지고 있는 심리 사회학적인 용어이다. 새디즘과 마소키즘에 대해서 더 상세하고 알고 싶은 사람은 다음의 홈 페이지에 들어가보세요.

 항상 갑질을 하는 가해자는 처음에는 보호자, 안내자, 돌봄을 주는 부모와 같은 사람으로 그러나 결국에는박해적인 사람으로 학대적인 사람으로 변하게 되고 반대로 의존적인 욕구를 가진 을에게는 보호자로써 안내자로써 존경을 보내면서 의존을 하게 되지만 결국에는 피해자로 학대를 받는 사람으로 피해자가 된다. 이 의존이 "주인과 노예" 관계로 변하게 된다는 것을 두 사람은 무의식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들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그러한 관계에 빠져들 게 된다. 이런 관계는 시간이 지나가면서 한쪽은 다른 한쪽을 억압하고 강압하고 지시 명령하는 관계로 발전되어가면서 주인과 노예 관계로 변모하게 된다. 을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노예처럼 강압, 명령, 지시하는 갑에 대한 분노,짜증과 노여움이 점점 마음 속에서 쌓여져서 누적되어가면서 적개심이 풍선의 입구를 조여서 풍선이 점점 빵빵해져서 터질 지경에 오게 되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이판사판이 되어 복수로 이어지게 된다. 이것이 빵빵한 풍선이 펑하고 파열음을 내고 터진 것이 바로 그 교수와 그 제사 그리고 그 사장과 회장님의 사건이 아닌가!

 정신분석적인 관계에서는 이러한 관계를 낚시 줄에 걸린 물고기처럼 발버둥 치면 칠수록 점점 올까미로 조여 오게 됨을 강조한다. 결국은 터지게 되고 둘 다 파멸로 이어지게 된다. 그 제자는 더 이상 굴욕적이고 모욕적인 처벌과 비난과 강압에 견딜 수가 없어서 교수의 폭행을 사진으로 찍고 증거를 모아서 언론에 터뜨리게 되었고 그 교수는 구속이 되었고 그 제자는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그 제자는 앞으로 그의 전문 분야에서는 발을 붙일 수가 없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교수는 그의 전문 분야에서 이름난 사람이고 그를 고발한 사람으로 알려져서 다른 동료들이 그 제사를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고 피하게 될 것은 뻔 하기 때문이다.

 치료자는 위와 같은 문제들을 많이 다루어본 경험이 있다. 대인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치료자 한데서 치료를 받았던 30대 후반의 A씨의 사례의 경우를 들어서 위의 사제지간이 원수지간으로 변모해 간 과정을 상세하게 다시 한번 설명해 보기로 한다.

 A씨는 공황 장애로 한달에 8번이나 병원의 응급실로 실려간 사람이었다. 입원치료, 약물 치료, 최면 치료, 인지 행동 치료 등을 받아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고 약물의 사용에도 소용이 없었다. 인터넷에서 치료자의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보고 심리치료를 받으러 오게 되었다. 치료자는 공황 장애를 "죽지 않으니 두려워하지 말라", "마음을 진정시켜라", "불안해 하지 말고 겁내지 말라" 라는 식의 치료를 하지 않는다. 근본 원인을 찾아내서 그 뿌리를 제거해야 치료가 된다는 정신분석의 치료의 원리를 사용해서 치료를 하게 된다. 예를 들어서 컴퓨터에서 글자를 아무리 고쳐도 컴퓨터를 꺼고 다시 커면 틀린 글자로 나오는 것을 보고 그 원본에서 처음에 잘못된 입력을 고치게 되면 그 다음에 글자가 고쳐진다는 원리처럼 현재의 문제들은 그 뿌리를 뽑아서 제거하지 않으면 아무리 고쳐도 일시적일 뿐 계속해서 재발을 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이러한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A씨의 현재의 공황 장애를 고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의 문제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 그의 어린 시절의 문제점의 분석에 들어갔다.

 A씨는 어린 시절에 직업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술을 드시면 술 주사 때문에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오는 날이면 가족 구성원들이 모두 도망을 가 버려는 가정에서 자라났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A씨는 아버지의 술 주사에 도망을 가지 않고 아버지의 술 심부름을 모두 했다. 아버지는 군인이어서 복종, 존경을 요구했다, 말없이 술 심부름을 해서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어주어서 아버지로부터 폭력을 피할 수 있었다.아버지 뿐만 아니라 4살 위인 형님이 A씨를 아버지처럼 명령하고 지시하고 강압하고 간섭을 했다. 형님과 다투고 갈등 속에서 고교 시절에는 집을 나와서 독립을 하면서 일자리를 구하고 결혼을 하고 사회생활을 해 나갔다. 그는 여러 개의 직업들을 전전하다가 xxx 토건회사의 사장의 전속 운전기사가 되었다. 그 사장은 토지를 측정하고 측량을 해서 관공서에 돈을 받고 파는 일을 하는 회사로 전국으로 토지 측정의 일거리를 얻기 위해서 하루에도 서울에서 부산 그리고 밤새워서 강원도 등지로 밤낮이 없이 24시간 운행을 하고 대기를 하는 전속 운전기사로 휴식이 없이 항상 긴장 속에서 10년을 생활을 했다. 사장은 A씨에게 보수를 많이 주었고 보너스도 넉넉하게 주었기 때문에 10년 동안 힘들었지만 참고 지냈다.

 그런데 한가지 그 사장은 A씨에게 조금만 잘못해도 언어 폭력이 따라왔다. 욕질부질하고 온갖 스트레스를 A씨에게 다 풀었지만 A씨는 복종적인 자아, 순종적인 자아로 불평불만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인격적인 모욕을 주는 말들 때문에 속에 점점 울화가 쌓여만 갔다. 그러나 사장에게 그런 불평을 하면 일자리를 잃을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표현을 하지 못하고 참고 살아온 것이 10년이 되었고 그 시점에서 사장이 암에 걸려서 수술을 하게 되면서 그 일자리를 잃게 되면서 그 일을 그만 두고 다른 일자리를 구해 그 회사를 나오게 되면서 공황 장애가 시작된 것이었다. 치료자가 분석으로 밝혀낸 것은 그 사장과 A씨는 "주인과 노예 관계"로 "낚시줄에 걸린 물고기"처럼 발버둥치면 칠수록 올가미에 걸려들어서 꼼짝할 수 없는 관계를 10년 동안 유지해 오면서 분노, 짜증 , 적대감정이 누적되어 풍선처럼 한계점에 도달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자아의 붕괴 직전의 위험에 처한 것이 공황장애 임을 분석으로 밝혀냈다.

 이후에 A씨는 심리치료의 과정(약물은 일체 사용하지 않는다)을 거치면서 그 분노를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고 말로써 표현하는 과정 그리고 그의 어린 시절의 자아의 형성과정, 대인관계 과정 등을 알고 수정하고 깨달아가는 치료의 과정을 거치면서 2년 후에는 공황장애에서 해방되어 심리치료를 종결하게 되었다. 치료자는 의존적인 자아를 독립적으로 키워야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게 되어야 하고 그리고 자신감을 강화시켜서 불안에서 빠져 나오려고 하면 아직도 심리치료의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는 권유에도 불구하고 A씨는 이제 공황에서 해방되었으니 혼자서 스스로 잘 해 나갈 수 있다고 자신감을 가져고 치료를 종결을 했다.

 세월이 2년이 지나가고 지난 주일에 A씨가 치료자에게 휴대폰으로 연락이 왔다. 지난 주일부터 공황 장애가 다시 등장하는 것 같아서 다시 치료자를 찾아오겠다고 했다. 만나서 2시간 동안 컨설팅을 하면서 분석으로 밝혀낸 것이 치료자에게 심리치료가 종결되면서 K 형을 알 게 되었고 그 형이 그 당시에 하고 있던 탑차로 화물 운반을 하던 2.5톤을 팔고 은행 융자를 얻어서 5톤 짜리 탑 화물차를 새로 사서 화물 운송을 하게 되면 한달에 원하는 만큼의 큰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자세한 안내와 가르침을 받고 K 형님을 따라서 새로운 일을 하게 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K형이 모든 것을 안내하고 보호해주고 일을 가르쳐주는 부모와 같은 사람으로 서로 사제시간으로 변모를 했다.

 그런데 50대 초반의 K형은 A씨의 화물 운송 일을 일일이 조언하고 지도해주고 안내를 해주는 것은 좋은데 그의 요구를 거부하거나 즉각 따르지 않으면 언어 폭력이 따라오고 모욕, 비난, 처벌, 비판적으로 변해서 A씨는 점점 주인과 노예 관계로 변모해 가면서 K 형을 피하고 외면하게 되면 즉각 적으로 폭언이 따라왔다. "네가 거지 같은 네 놈을 가르치고 보살펴서 지금 경제적으로 먹고 살도록 해 주었는데 감히 네가 내 요구를 거부하는 배은망덕한 배신자가 된 것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폭언과 모욕, 망신을 주면서 언어 폭력으로 분노, 짜증, 적대감이 누적되어가면서 K 형님이 A씨 자신을 이용하고 노예처럼 부려먹는다는 생각들이 누적되어지면서 빵빵한 풍선처럼 감정이 누적되어 폭발 직전의 상황이 다시 공황 장애를 재발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분석으로 밝혀냈다.

 A씨는 치료자의 다음과 같은 지적에 자신도 시인을 했다. 즉 어린 시절에 아버지, 형님, 그리고 그 토건회사의 사장, 지금의 K형님에 무의식적으로 똑 같은 사람으로 새디즘과 마소키즘의 관계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지적을 했을 때 시인을 했다. 치료자가 2년 전에 A씨의 공황 장애의 근본적인 치료로써 의존적 자아를 수정하고 고쳐서 독립심을 기르고 남에게 의존하지 않도록 지적을 한 것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불안에 빠지는지를 알고 자신감을 기르고 하루에 적어도 1시간 이상씩 운동을 해서 체력을 다지는 치료를 계속하기를 권유한 것을 지적을 하면서 A씨의 새디즘과 마소키즘적인 관계를 근복적으로 수정을 할 것을 받아들여서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재개하기로 약속을 했다.

 이제 전체의 내용을 다시 정리를 해 보기로 하자. 초반기에 스승과 제자의 사제지간이 결과적으로 원수지간으로 변모해서 서로 물고 뜯는 관계로 학대자, 박해자와 나약한 피해자의 관계로 발전을 하는 것은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서로의 어린 시절의 자아의 취약점 때문에 물고 물리는 관계로 만들어진 것임을 당사자들은 모르고 있다. 이것은 무의식적인 것으로 겉으로는 우연처럼 보이지만 우연이 아니고 필연적인 결과임을 알아야 한다. 위의 치료 사례에서 본 A씨처럼 만약에 그 제자나 그 사장이 그 교수와 그 회장을 피해서 폭발 하기 전에 헤어졌다고 해도 그들은 언젠가는 유사한 의존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서 비슷한 주인과 노예 관계가 재발한다는 점이다. 새디즘과 마소키즘의 관계가 빨리 일어났느냐? 혹은 늦게 일어났느냐?의 차이일 뿐 언젠가는 연속에서 되풀이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동시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몇 마디의 조언이나 충고 혹은 가해자를 피해서 도망을 간다고 해도 해결되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의존적인 자아를 독립적인 자아로 눈치, 비위를 맞추려고 하고 감정을 참고 억압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느낌과 생각과 감정들을 말로써 표현을 해서 어린 시절에 성장이 중지된 자아를 성장하게 만들어야 하고 의사 소통을 통해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고로 근본적인 자아 결함의 수정과정을 거치는데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자아 장애 치료에 대해서 더욱 더 알고 싶은 분은 다음의 홈 페이지에 들어가보세요.

 위와 같은 사건들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내가 관계를 하고 있는 대인관계가 혹시 주인과 노예 관계가 아닌가? 살펴보고 그러한 관계라면 빨리 치료를 받아서 자아를 수정을 해야 근본적으로 해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한다. 그 제자가 고소를 했기 때문에 그 사장이 그 회장을 고소를 했기 때문에 법정에서 원고와 피고로 만나게 될 때 소송 비용을 감안한다면 심리치료의 비용은 그것에 비해서 새발의 피로 몇 배가 절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재판 과정에서 잘, 잘못이 드러난다고 해도 얻는 것은 복수를 했다는 것일 뿐 남는 것은 상처뿐인 영광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