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blog.naver.com/psychclinic/220445555098

 얼마 전에 한 교사가 말을 잘 듣지 않는 자기반 학생들을 "일일 왕따"로써 생활 지도를 하고 있다고 해서 학부모들의 공분을 샀다. 비슷한 시기에 또 한 교사가 말썽을 피운 그 학생에게 분기탱천하여"너는 정신병자야! 너의 마음속에는 악마--"라는 폭언을 했다는 보도가 언론 매체를 타면서 학부모들과 네티즌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비슷한 시기에 이와는 정반대로 학생 생활 지도를 하던 50대의 고교 교사가 태도 불량 학생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가 도리어 그 핵생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사건이, 또 한 여교사가 과제물을 해 오지 않는 여고생을 교무실로 불러서 어깨를 쥐어박은 것에 분노한 그 여학생이 거꾸로 그 여교사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건이 일어났다, 비슷한 시기에 자녀를 차별했다고 분노한 학부모가 교실에서 여교사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담인 교사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건이 언론 매체를 타고 보도가 되었다.

 전자는 교사가 학생을 언어 폭력으로 처벌을 했다는 것과 후자는 학생이 교사를 폭력을 행사를 했다는 점에서 이 두 개의 사건은 서로 정 반대가 된다. 그러나 이 두 개의 사건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교사가 학생들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사들의 전문 용어로 말하면 그 교사들의 학생 생활 지도에 결함이 있다는 말이다. 모든 교사들이 전자와 후자처럼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위에서 사건에 휘말린 교사들은 학생들의 컨트롤에 결함 즉 문제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체벌이 금지된 상황에서 전자의 두 교사가 신체적 처벌 즉 체벌 대신에 학생들을 컨트롤 하기 위해서 이번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처벌로 심리적 처벌언어 폭력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정신분석의 창설자인 프로이트(Freud)는 100년 전에 "신체적 고통보다 심리적 고통이 수십배 더 고통스럽다, 고로 이러한 심리적 고통이 마음의 상처가 되어 신경증과 정신정의 뿌리가 된다"고 공언을 했다. 이런 점에서 두 교사는 어린이들의 가슴에 대 못을 박아서 심리적 상처를 가한 것이다.그와는 정반대로 학생들의 생활 지도를 하던 교사들이 거꾸로 학생들로부터 폭력을 당하는 일들이 너무 비밀비재 해서 이제는 이러한 사건들을 뉴스꺼리가 되지 않게 된지가 오래 되었다. 최근의 한 신문 보도에 의하면

 학교에서 학생들로부터 폭언·폭행을 당하는 교사들이 급증하고 있다. 국회 김세연 의원(새누리당)이 13일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교권 침해 현황 및 사례'에 따르면 지난 5년간 학생에게 폭행을 당한 교사가 343명에 달했다. 학생에게 폭행을 당한 교사 수는 지난 2009년 31명에서 2010년 45명, 2011년 59명, 2012년 132명 등으로 매년 급증하고 있다. 4년 만에 학생에게 맞는 교사 수가 4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2015, 8, 5. 조선일보).

학생들이 교사를 폭행하는 사건들이 해마다 증가해서 심각한 사태로 번져가고 있다고 한 교육 위원의 교육부 보고 자료를 인용해서 보도 한 적이 있다(조선 일보, 2015, 8.5).

 도대체 학생들과 교사들 사이에서 어디에서 이런 문제가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그 해결 방법이 없는지에 대해서 논의해 보고자 한다. 필자는 위와 비슷한 문제를 다루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우선 문제의 핵심부터 시작해서 정부 당국(교육부), 학부모들, 교사들, 학생들 그리고 사회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의 뿌리들을 파헤쳐 보고자 한다.

 첫 번째 교육부에서는 이미 15년 전부터 체벌의 금지에 따른 대책을 내 놓고 준비를 했었다. 학생들의 체벌은 이미 선진국에서 금지된지 오래 되었다. 고로 교육부는 이런 점을 감안에서 1999년에 전국에 약 120여개의 종합 대학과 교육 대학에 상담 교사를 훈련시키는 방안을 대학원 과정으로 개설해 주었다. 그 때 목표가 "전국 교사들을 상담 교사화" 하겠다는 프로젝트로 시작을 했었다. 필자가 그 때 xxx 교육 대학원에서 상담 교사 양성 교육에서 "가족 상담"과 "상담 실습 과목"을  두 과목을 담당해서 약 6년간 강의(1999년부터 - 2004년까지)를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총론은 시작으로 좋았는데 문제는 각론으로 가면서 변질이 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 당시에 상담 교사 단기 코스로 30명을 여름 방학과 겨울 방학을 이용해서 1년 코스로 그리고 정규 대학원 과목으로 2년 6개월의 대학원 과정으로 15명-20명 정도로 총 50명의 상담 실습을 필자가 담당을 하면서 일어난 일화를 소개하면서 각론에서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50명의 상담 교육을 받으러 온 교사들이 대부분이 40대-50대의 교육 경력이 20년이 넘은 교사들로써 그들이 상담 교육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들은 자신의 입으로 "이 상담 교육을 이수하면 점수를 받아서 장학사, 교감, 교장으로 승진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라고 실토를 했다. 더 붙여서 1년 혹은 2년 6개월의 과정으로 "전문 상담 교사"가 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상담 심리, 임상 심리학은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 과정을 마치고 자격증을 따야 정규 상담사가 되는데 그러한 과정을 거치는데 약 10년 이상이 걸리는데 1년 2년 만에 벼락치기로 전국 교사를 상담사를 만들겠다는 그 프로젝트의 취지는 좋았으나 땜질 씩 엉터리 상담 교육으로 형식적인 과정으로 변질이 되어 결실이 없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더 붙여서 각 교과목들은 강의를 하면 되는데 문제는 "상담 실습"으로 20시간 이상의 실습 과목을 이수하는 문제로 교사들과 논쟁이 붙게 되었다. 필자는 이 과목의 담당자로써 제대로 된 상담 실습을 이수하려고 하면 적어도 한 학기에 적어도 약 3개월-4개월 동안 각 학급에서 문제아를 선정해서 그 아동들의 행동 수정과 심리 상담을 해야 한다고 제의를 했다. 필자가 담당 교수로써 제의를 한 것은 각 교사들은 1명 혹은 2명의 반의 문제 학생들을 1주일에 고학년(4, 5, 6학년)은 1회에 40분-50분으로 1주일에 2회 3회 정도의 회수로 그리고 저학년(1, 2, 3학년)은 1회 30분-40분 정도로 1주일에 3회, 4회의 상담을 실시해서 그 결과를 노트해서 2주일에 1회씩 지도 교수(필자)의 슈퍼비젼을 받아서 상담 과정을 보고 하고 그 다음 각 주일에 상담 실시 내용을 의논하고 지시를 받아야 한다고 제의를 했다. 더 붙여서 이 과정에서 그 학생의 학부모를 주기적으로 만나서 그 학생의 양육 과정에서 문제점들과 그들의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야 그 문제 학생들의 행동을 수정하고 심리를 치료 해야 한다는 내용의 실습 과목을 발표을 했을 때 50명의 교사들의 집단 반대에 부딪쳤다. 교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우리는 그러한 것이 필요 없습니다. 전국에서 이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 다른 대학들은 20시간의 상담 실습을 하루에 10시간씩 이틀 만에 20시간으로 집단 상담 연습으로 끝내는데 왜 우리 대학만이 한 학기 동안에 학생들과 상담 그리고 학부모와 상담 그리고 지도 교수를 찾아와서 슈퍼비젼을 받아야하는지?" 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치게 되었다.

 필자는 상담 심리학을 제대로 배우려고 하면 정상적 절차를 밟아야 하니 나 한데서 배우고 싶으면 똑 바로 배우든지 아니면 다른 교수를 초빙해서 그 과목을 이수하라고 거부를 했다. 그들은 다른 교수를 초빙하기로 하고 여름 학기의 강의는 끝이 났다. 그러나 9월이 시작되기 1 주일 전에 연락이 와서 "상담 실습을 받을 터 이니 실습 과목을 지도해 달라"라고 연락이 왔다. 그들이 지도 교수의 지도를 따르겠다고 했기 때문에 필자가 그 상담 실습을 맡게 되었다. 첫 1 기 생들의 상담 실습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성공리에 끝이 났다. 교사들은 상담 실습 후에 배운 것이 많았고 도움이 되었다고 평가를 해주었고 첫 학기의 강의가 끝나고 전국 각 대학에서 담당 실무자들이 한 곳에 모여서 실행 과정들을 서로 주고 받으면서 필자가 상담 실습을 한 내용들이 최고로 인정받아서 각 대학에서 필자의 상담 실습 과정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전해왔다. 이런 결과 덕분에 그 다음 제 2기 연수생 들은 대학의 연구비 지원을 전폭적으로 받아서 상담 실습 과정의 사례 논문들을 모아서 논문집으로 출판해서 전국 대학에 보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필자는 6년 후에 대학을 떠났고 그 이후에 정규 대학원은 존속하고 있었지만 단기 코스는 사라지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교육부 장관이 바뀌면서 전 교사의 상담 교사 프로젝트는 형태가 바뀌게 되었고 한 학교에 상담 교사 배치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학생들의 채용으로 바뀌게 되었다. 여기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선진국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전문 분야는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 과정을 밟게 되어있는데 급한 대로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상담 교사로 배치되어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점에서 실망으로 이어지면서 그 계획 또한 무산되어져서 예산 문제로 한 학교에 상담 교사를 1명 이상 배치하는 문제는 장관이 바뀌면서 진로 상담 교사가 담당하는 쪽으로 바뀌게 되었다. 진로 상담 교사는 이미 학교에서 고 3 담임을 오래하신 분들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상담 교육 과목을 일부 이수하게 되면 진로 상담 교사가 상담 교사 역할을 함께 한다는 명목은 예산 절감과 교사 배치에 일거양득으로 일시적인 소득은 있지만 학생들의 문제들을 수정하고 고치고 예방하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거리가 멀어지게 변질이 된 것이었다.

 이후에 교육부는 교사들에게 인성 교육을 강조했다. 그 인성 교육의 내용을 한번 살펴 보았더니 주로 미담, 훈육 등으로 학생들에게 미담을 들려주거나 외부 인사들의 강의, 강연의 초빙 등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인성 교육은 이미 오래 전부터 도덕 교과서 혹은 사회 과목, 국어 과목 등에서 미담, 훈시, 교훈 등으로 과거에 내려오던 교과 과정들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이름만 한 개더 첨부된 꼴이 되었다.

 최근에는 국회 의장이 각 학교에서 인성 교육을 강화해서 학교 폭력, 왕따 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법률로 국회에서 인성 교육 법을 제정한다는 소식들이 뉴스로 보고가 된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인성 교육을 법률로 제정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이 교사들의 목소리이다. 이미 인성 교육 정도의 대안으로써는 이런한 학교의 생활 지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은 필자도 동감을 한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대학원에서 상담 심리학, 임상 심리학을 전공하고 석사,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들을 채용을 해서 각 학교에 적어도 1명 이상을 배치해서 교사들이 컨트롤할 수 없는 학생들의 행동, 심리적인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수정하고 고치게 도와주어서 학교 상담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수준에서 고치기 어려운 학생들은 정신과 의사, 심리치료사, 정신분석가 등으로 의뢰를 해서 근본적인 학생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방향으로 이런 문제들을 다루고 다는 점이다.

 두 번째 학부모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아버지 혼자의 힘으로 경제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점 때문에 부부가 맞벌이를 하게 되면서 자녀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맡겨지거나, 영아원, 유아원으로 맡겨지게 되면서 자녀 양육이 엄마의 손을 떠나게 되면서 자녀들의 행동 문제들과 심리적인 문제들이 엄청나게 발생하게 된 것이다. 유아원, 영아원은 자녀들을 관리하고 대소변을 도와주고 수유와 질병 등을 돌보아주는 곳이지 양육을 하는 곳이 아니다. 보모들은 한 사람 당 8명에서 10명의 유아들을 돌보아준다는 점 때문에 대소변, 수유, 위험에서 안전하게 관리를 해주는 점이라는 것을 부모님이 알아야 한다. 정신분석에서는 0세-5세, 6세까지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기간으로 이 기간 동안에 엄마가 아기의 욕구를 일일이 대응해주고 아기와 상호관계를 통해서 말로써 표현하게 하고 감정을 받아주고 욕구를 컨트롤하고 갈등을 해결하고 의사 소통을 제대로 하도록 양육을 해주어야 하는데 이러한 양육이 영아원, 유아원 그리고 학교에 들어 가면서 선생님들 한데로 이전이 되면서 문제들이 쌓이게 된 것이다. 또한 부모님의 맞벌이에 시간이 빼앗기게 되면서 자녀들과 소통을 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대화의 스타일이 부모님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자녀들을 소망하는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해서 자녀들은 Yes 맨으로 부모님과 대화는 지시, 명령, 확인 적인 의사 소통에서 자녀들은 자신의 생각, 느낌, 감정, 상상, 감각 등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게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자녀들의 자아에 대인관계의 결함이 생겼다는 말이다.

 부모님이 맞벌이 때문에 자녀들은 주중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서 저녁에는 부모님의 손에서 아니면 주중에는 조부모 손에서 그리고 주말에는 부모님이 데리고 오는 자녀들이 점점 많아지게 되었고 여기에서 부모님의 이혼으로 자녀들이 편부모 손에서 혹은 조부모 손에서 맡겨지거나 혹은 부부 싸움으로 자녀들이 상처입는 어린이들이 많아지면서 심리적인 어려움들이 양육의 과정에서 자녀들은 이미 심리적인 고통의 짊을 짊어지고 초등학교에 들어오면서 학생들의 컨트롤들이 더욱 더 어렵게 되고 있다는 점이다. 자녀들은 충동에 참을성이 없고 문제 해결의 능력을 부모님으로부터 배우지 못하고 의사 소통에서 그리고 이미 이전의 발달 단계에서 결함들이 성격 헝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고로 학생들의 행동 문제와 심리적인 문제점들이 엄청나게 쌓이게 되고 점점 심각하게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부모님은 자녀들이 1명-2명이기 때문에 자신의 자녀들이 혹시 다른 자녀들보다 뒤질세라 노심초사하고 다른 자녀들이 받고 있는 과외 활동 들을 받게 하느라고 등꼴이 휘는 꼴이 되었다 고로 사교육비가 하늘을 치솟고 있다. 더 붙여서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교사로부터 채벌을 받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자녀들이 혹시 교사로부터 미움이나 차별을 받는 것이 아닌가? 불안해 하고 있기 때문에 교사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어있다는 점이다.

 세 번째 교사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과거에 교사들은 초봉은 회사원들에 비해서 약간 적었지만 철밥통으로 정년까지 완정된 직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퇴직 후에 연금으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들 때문에 특히 여성들에게는 인기 직종이었다. 그러나 체벌 금지가 되면서 학생들의 컨트롤 문제가 등장하면서 학생들에게 지식을 가르치는 문제가 아니고 생활 지도 문제가 화두로 떠올라오게 된 것이었다. 학생들이 거칠어지고 사춘기가 빨라지면서(초등학교 5학년부터) 교사들이 6학년 학생들의 담임을 맡는 것을 기피하는 현상이 생견 난지 오래되었다. 중, 고등학교에서는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오히려 폭행을 당하는 사건들이 한 달이 멀다하고 터지는 바람에 특이 40대-50대의 교사들이 자신의 직업에 환멸을 느끼고 교사가 된 것을 후회한다는 연구결과 들이 언론에 보도 된 지 오래 되었다. 학생들은 교사의 지시, 지적, 지도에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반항적이 되고 교사의 말을 무시하고 빈정거리고 투덜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교직에서 20년 혹은 30년의 경험을 가진 교사들에게는 학생들의 이러한 교사 무시 행동들, 도전적인 행동들이 나이 많은 교사들에게 모욕, 수치심으로 그리고 학생들 앞에서 창피를 당하는 폭력적인 사건들 때문에 교사들은 이런 학생들 앞에서 쥐구멍을 찾고 싶은 권위의 실종으로 더 이상 교사로써 보람을 상실한지 오래 되었다. 더 붙여서 40대-50대 교사들이 교직을 떠나겠다고 명퇴 신청이 너무 많아서 명퇴금을 지급할 예산 부족으로 신청을 선별해서 받아주고 다음 해로 미루는 상황에 처해지게 되었다.

 네 번째 학생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부모님의 맞벌이로 방과 후에 쉴틈이 없어졌다는 점이다. 초등학교 1학년의 경우에도 방과 후에 과외를 하고 있는 학생들이 평균 한사람이 8개 정도를 하고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랬다. 미술, 태권도, 바이올린, 글짓기(논술), 왕수학, 영어 등등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과외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자녀들은 방과 후에 이학원, 저학원 등으로 전전 하다가 저녁 7시 쯤에 부모님의 귀가 시간에 맞추어 집으로 귀가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자녀들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각종 괴외로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과목들에 스트레스에 짖눌려서 이미 참을 수 있는 한계점이 넘어가는 학생들로 많았다.

 더 붙여서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도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학생들은 휴대폰으로 교사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휴대폰으로 찍거나 녹음을 하거나 해서 인터넷에 올리는 것이 다반사가 되면서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 비밀이 없어지게 된 것이 21세기의 2015년의 현재의 모습이 된 것이다. 문제 학생들은 가정에서 받지 못하는 사랑을 학교 교사들로부터 받고 싶어한다. 즉 문제 행동들을 일으킴으로써 교사로부터 주의 과심을 끌려고 하는데 정작 교사들은 이것을 반항, 도전, 말대꾸로 받아들에게 되면서 서로 갈등으로 폭발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상담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문제 학생들의 증세들이나 문제 행동들을 그러한 문제 행동들을 통해서 자신의 문제를 호소하고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 도움을 위한 울음(crying for help)으로 본다는 점이다. 고로 일반 교사들의 수준을 넘어가는 전문 지식을 요구한다는 점을 교사들이 이해하고 배우고 알려고 노력하지 않고 교사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모두 학생들의 잘못으로 투사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고로 전문 상담  자격을 가진 전문가가 학교에 필요하다는 점이 이러한 점이다. 이미 문제 하생들은 평범한 교사들이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 되었고 교사는 다루기 어려운 학생들을 상담 교사에게 의뢰로 보내야 한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심리적인 짊 때문에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학생들은 각종 심인성 질환 장애들을 달고 있었다.비염, 아토피, 천식, 위와 소화성 궤양, 두통 등의 각종 심인성 질환들을 한 개 혹은 두 개 이상을 가진 학생들이 4분의 1이나 되었다. 필자의 추측으로는 미국 같으면 우리나라의 중, 고등학교 학생들은 물론이고 초등학교 학생들의 3분의 2가 당장 전문가의 심리치료를 요하는 학생들로 보였다. 심인성 질환과 아토피, 비염, 천식 등의 알레르기 질병에 대해서 더욱 더 알고 싶은 사람은 다음의 홈 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다 섯번째로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면 과학 문명의 발달은 하루가 멀다하고 초스피드로 발전해 가고 있다. 휴대폰은 1년이나 2년이 지나면 구식이 되어 버릴 만큼 새로운 것들이 속속 등장을 하고 휴대폰 하나로써 이미 인터넷 기능, 결재 기능, 영화, 온라인 구매, 게임 등의 기능들이 속속 등장 하면서 눈깜짝할 사이에 변화되어가는데 반면에 정신적인 기능들 즉 심리적인 발달은 60년대, 7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 상대가 되지 않고 있다. 교사들이 처벌이 금지되면서 시대의 발달에 따른 정신적인 발달, 심리적인 발달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처벌이 금지되었다고 학생들의 생활 지도 문제에 매달려 있는 꼴이 바로 이러 점을 지적해주고 있지 않는가? 과거의 권위주의 시대의 학생 생활 지도 즉 지시하고 처벌하고 명령하고 강압하는 권위주의 시대의 학생 지도 방법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체벌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이런 점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2015년의 21세기는 권위주의 시대의 생활 지도가 아니고 소통하고 배려하고 이해하고 인정하고 인격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로써 서로 상호관계로 존중관계로 바뀌어가야 함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는 점이다.

 학생 생활 지도에서 교사들이 감당을 하지 못하는 문제 학생들을 교사가 그들의 행동을 컨트롤 하겠다는 생각은 시대 착오적이다. 이 문제는 교사의 학생 폭력과 학생의 교사 폭력에만 관계된 문제가 아니고 학생들 사이에서 폭력 뿐만 아니라 왕따 문제 그리고 나아가서 군입대 후에 관심 병사 문제 그리고 동료들에 대한 총기 난사 문제 등과 근본적으로 뿌리를 같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 참고로 중, 고등학교에서 학업을 포기하고 학교를 떠나서 되돌아오지 않은 학생들은 28만명이나 된다는 교육부의 보고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들은 일본에서 등장한 하키코모리(방안에 콕 쳐박혀서 두문불출하는 사람)로 이들은 사회의 낙오자로 앞으로 국가적인 문제로 등장한지가 오래 되었다. 상세한 것은 다음의 홈 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선진국에서는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 학위와 자격증을 가진 상담 전문가들을 채용을 해서 한 학교에 적어도 1명 혹은 2명 이상이 상존해 있어서 교사들이 감당을 못하는 학생들은 그들에게 보낸다, 상담 전문가들이 그들을 2개월 3개월의 과정으로 상담하고 치료를 하다가 그들의 수준을 넘어가면 그들을 정신 건강 전문가들 예를 들어서 정신과 의사, 심리 치료사, 정신분석가 들에게 이첩을 시켜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하도록 도와주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실정은 이러한 것들을 학교 관리자들이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학교에는 상담 교사가 있는 곳도 있고 그들이 감당 못하는 학생들은 위 클레스(교육청에서 운영하는 상담 기관)로 보낸다는 것은 필자가 대충 알고 있지만 아직도 이러한 과정들이 시작 단계로 머물러 있고 제대로 작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교장들은 한반에 학급 인원이 20명-30명 정도로 줄었으니 자신의 학급 학생들의 생활 지도는 담임이 맞아서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담임에게 학생 지도를 일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문제가 많은 학생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은 그렇다고 치지만 그 학생이 수업을 방해하고 교사를 무시하고 반발하고 전체 학생들에게 수업 방해 때문에 학교 폭력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 학생들은 전문 상담 교사에게도 보내고 그 전문 상담 교사가 그 학생들을 맡아서 상담하고 치료를 해 주도록 하는 제도들이 제자리에 들어서야 한다는 점이다.

 체벌이 금지된 지금의 상황에서 교사의 심리적 처벌 즉 언어 폭력과 학생들의 교사 폭력에 대한 근본 문제점들을 교육부, 학부모, 교사들, 학생들 그리고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문제점들을 지적해 보았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만이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이고 그 한가지만을 해결하면 학원 폭력의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문제들을 서로 물고 물려 있기 때문에 어느 것이 하나가 해결 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볼멘 소리로 "체벌 금지 때문에 학생 생활 지도를 할 수 없다"라고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금지된 체벌을 다시 부활 시킬 수는 없다. 시대가 체벌 금지의 시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1960년대, 1970년대의 20세기의 구식의 지도 방식을 21세에 사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그렇다고 정부 당국 즉 교육부만 탓하고 앉아서 기다릴 수도 없다, 교육부의 정책 담당자는 그들 나름대로 끝없이 문제 해결책을 찾고 문제를 한 가지식 미래의 백년 대개를 위해서 계획을 짜고 다리를 놓아서 바탕을 닦아가고 학부모님 들은 그들의 자녀가 학교에서 갈등이나 학업에 어려움이 있을 때는 자녀들의 도움의 울음(문제 행동을)을 수용해서 즉각 전문가를 찾아서 치료해서 해결해주는 방향으로 그리고 교사들은 스스로 자신이 학생들과 생활 지도의 결함, 기술 부족을 수용하고 연구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하고 그리고 학생들의 경우에는 스스로 동료들과 갈등, 학업 부진, 의사 소통, 감정 표현등에 어려움이 있을 때에는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해서 전문가를 찾아서 조기에 해결 하도록 스스로 깨닫는 것이 지금 현재로써는 가장 현명한 것이라고 필자는 보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필자에게 문제점 들을 비판하고 분석을 하면서 왜 대안을 내 놓지 않는가? 라고 되물어 볼 것으로 사료된다. 고로 필자는 이런 질문에 대해서 교사들이 대인 관계에서 어려움 때문에 치료자를 찾아온 교사들을 치료를 하면서 위와 같은 문제들을 해결한 사례를 소개를 하면서 학교 폭력의 한가지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만약에 이 글을 읽는 사람이 학교 당국자들(교육부 혹은 학교 관리자), 학부모들, 교사들, 그리고 학생들인 경우에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교사들과 학생들로부터 폭력을 당한 교사들의 공통점 분석의 2부"부를 꼭 읽어보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