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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은 한 개의 학문에서 그리고 한 사람에 의해서 탄생한 것은 아니다. 심리 과학은 철학으로부터, 생물학(생리학)으로부터 그리고 물리학으로부터 태어나게 된다. 더 붙여서 세 사람을 거치면서 태어나게 되는데 탄생지는 독일의 라이프찌그(Leipizig) 대학에서 생리학자 웨버(Weber)에 의해서 시작되고 그의 수 제자인 물리학자인 페크너(Fechner)에 의해서 그리고 페크너의 수 제자인 분트(Wount)에 의해서 실험실에서 심리학이 드디어 태어나게 된다. 즉 제 1 세대에 의해서 씨앗이 뿌려지고 제 2세대에 의해서 가꾸어지고 제 3 세대에 의해서 열매가 맺어지게 된 것이다(김종만, “”(정신분석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 1999, 한림미디어).

 

1 세대 심리학의 씨앗이 뿌려짐

어네스트 웨버(Ernest Weber)(1795-1878)

웨버(Weber)는 의과 대학을 졸업한 의사였으나 의학을 포기하고 라이프찌그 대학에 생리학 교수가 된 사람이었다. 그는 19세기 초반에 그의 논문을 통해서 마음을 측정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사람이었다. 형체가 없는 마음을 그것도 실험을 통해서 수학적으로 측정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 온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이었다.

웨버가 한 실험들은 사실은 어린 시절에 우리가 자주 했던 장난끼 섞인 놀이의 일부임을 알고 나면 더욱 더 놀랄 것이다. 어린 시절에 초등학교 시절에 소풍(야외 학습)을 갔을 때 우리들이 친구들과 도시락을 까먹고 놀면서 자주 친구들 몰래 친구 뒤에서 강아지 풀을 하나 뜯어서 그 풀로 그 친구가 모르게 그 친구의 목덜미 혹은 귓바퀴에 대고 살살 간질이면 그 친구가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고 야단을 치는 것을 보면서 깔깔대고 웃으면서 너는 예민하다혹은 너는 감각이 둔하다라고 놀려댔던 바로 그러한 실험이었다.

웨버가 마음을 실험적으로 수학을 사용해서 어떻게 측정을 했는가? 하는 것을 한가지 예를 들어 보자. 웨버는 10명의 피실험자들을 실험실에 앉혀놓고 수건으로 눈을 가리게 한 후에 추운 겨울의 오늘 날씨를 추측해서 책상 위에 놓여진 종이 위에 적도록 했다. 어떤 피실험자는 영하 3, 다른 피실험자는 영하 2도 또 다른 피실험자는 영도 --- 등등으로 10명의 데이터를 평균을 해서 영하 2 도라고 하면 그날의 실제 온도가 영상 1도였다면 우리는 피실험자들이 추측을 한 그 날의 기온을 체감 온도영하 2도라고 말을 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현재의 일상 생활에서 매일 같이 사용하는 실제 온도체감 온도가 아닌가!

웨버는 이러한 실험을 해서 우리 몸의 전체의 구석구석 진 부분들을 데이터로 표시를 해서 가장 예민한 부분이 손끝이고 가장 둔한 부분이 등 뒤의 부분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그는 실제 온도와 감각으로 느끼는 온도는 사람마다 각각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을 밝혀냈다. 즉 감각(실제 온도)과 지각(체감 온도)은 다르다는 것을 밝혀냈다. 여기에서 감각과 지각이라는 학문이 심리학의 한 부분으로 등장하게 된다. 웨버는 이러한 실험실에서 측정한 데이터들을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출판을 했는데 이 책의 이름이 심리 생리학(psychophysiology)이었다. 심리학과 생리학의 혼합으로 아직도 심리학이 독립된 학문은 아니었다. 여기에서 심리 과학의 씨앗이 뿌려지게 된 것이다.

 

2 세대 심리학이 성장을 하도록 돌보고 가꿈

구스타브 페크너(Gustav Fechner)

 페크너는 청교도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신학을 전공하려고 신학교를 졸업을 했으나 신학을 포기하고 의과 대학에 들어가서 의학을 전공을 했으나 의사가 되기를 포기하고 라이프찌그(Leipizg) 대학에 들어가서 물리학을 공부해서 실험 물리학자가 된 특이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론을 싫어하는 철저한 실험 물리학자가 되었다. 그의 초반기 이런 과정과 후반기 인간의 마음에 대한 열정은 서로 반대가 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는 학교 시절부터 만학도로 이름이 났었다. 대학에서 무보수로 일하면서 가명으로 많은 신문에 투고와 글을 썼던 사람으로 이름이 높았다(Ellenberg, 1970).

 정작 교수가 되어서 2년 만에 교수직을 그만 두고 자신의 방에 빛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버리고 두문불출하게 되었다. 그가 가진 장애는 오늘날 우울증에다 건강염려 증이라는 장애로써 그는 2년 동안 방문을 잠그고 햇빛이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밀봉을 해서 그 속에서 2년간을 지냈는데 어떻게 지냈는지? 누가 식사를 제공했는지?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2년 후에 방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첫 마디가 세상은 정말 아름답다였다. 그는 이후에 그의 스승 웨버의 뒤를 이어서 뉴톤의 만유인력에 버금가는 몸과 마음의 법칙을 발견하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스승의 감각과 지각의 측정을 10 년 동안 연구해서 드디어 그 법칙을 발견을 했다고 선언을 했다.

 그의 실험은 그의 스승인 웨버가 했던 실험의 연속이었다. 예를 들어서 10명의 피실험자들을 실험실에 앉혀 놓고 책상 위에 종이와 연필을 제공한 다음에 눈을 감기고 손의 감각으로 40 온스의 표준 감각을 손으로 익히게 한 다음에 1 온스의 무게를 올렸을 때 무게가 무거움을 감지할 수 있는가?를 실험을 했다. 그는 이러한 과정을 수학적으로 기록하고 계산을 했다. 40 온스의 표준 무게에서 처음보다 더 무겁게 느끼지는 무게의 감각들 일일이 한 온스씩 올리면서 수학적으로 계산해냈다.

그는 표준 무게를 분모로 몸의 감각으로 그리고 1온스씩 첨가 되어진 감각의 무게를 분자로써 R분의 ΔR는 비례 상수 K라는 공식으로 표현을 했다. 분모인 신체적 감각을 몸으로 분자인 무게의 느낌 감각을 마음으로 표현을 해서 수학적으로 계산을 해 본 결과 분모인 몸의 감각은 기하급수적으로 분자인 느낌의 지각 감각은 산술 급수적으로 변한다는 것과 그리고 그들은 항상 비례 상수 K로써 약분을 하면 40분의 1이 된다는 것을 공식으로 발표를 했다.

페크너는 이 공식을 그의 스승의 이름을 붙여서 웨버의 법칙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가 주장은 몸과 마음의 법칙은 뉴톤의 만유인력의 법칙에 버금가는 법칙은 아니었다는 것은 밝혀졌다. 그러나 그가 발견을 한 웨버의 법칙은 인간의 감각의 최소 한계점을 구하는 공식인 트레시홀드(Threshold)으로 지금도 감각과 지각의 심리학 교과서에 등장하고 있고 사용되어지고 있다.

페크너는 그의 스승인 웨버가 저술한 심리생리학 서적처럼 그의 실험들을 모두 모아서 심리물리학(psychophysics)이라는 책을 출판을 했다. 그러나 심리학은 아직도 물리학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었기 때문에 심리학의 탄생은 한 세대를 더 기다려야 했다. 그의 심리물리학은 이후에 실험 심리학의 토대가 되었다.

 

3 세대 심리학이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음

윌헬름 분트(Wilhelm  Wount)

 분트는 루트란 교회의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독일 하이델베르그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해서 의사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그 당시 신경학계에서 신경의 방출은 빛의 속도와 같아서 측정할 수 없다고 여겨왔던 금기를 깨고 신경의 전달 속도를 측정을 해서 신경의 전달 속도가 빛보다 느리다는 것을 증명했고 그리고 눈의 색깔이 적색, 녹색 그리고 파란 색이 파장의 길이가 다르기 때문에 다르게 감각 되어진다는 것을 밝혀냄으로써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던 지도 교수였던 헤몰츠(Helmholtz)의 해부학 반복 실습에 질려서 의사를 포기하고 라이프찌그(Leipzig) 대학에서 철학 교수가 되었다.

 그의 스승인 페크너의 실험 실에서 그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감각 측정의 실험들을 실제로 강의를 했다. 그리고 그가 심리학이라는 교과서를 출판을 했다. 드디어 심리 과학이 탄생을 한 것이었다. 독일 라이프찌그(Leipzig) 대학 실험실에서 수학으로 데이터를 측정하는 심리 과학이 1897년에 태어나게 된 것이다(참고: 1789년이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해로써 백 년 후에 789를 첫 자리를 거꾸로 879로 바꾸면 심리학의 탄생인 1879년이 된다, 심리학 공부 때 연도의 암기를 위해서 사용).

 분트는 마음은 의식으로 관찰하고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서 보여주었다. 마음을 관찰하는 방법으로 내면 관찰법(introspect)을 사용을 했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한 곳에 마음을 모아서 그 의식을 내면 관찰로서 주의 관심을 그 의식에 집중을 해서 의식을 분석으로 관찰하고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을 실험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그의 실험들을 모아서 심리학 교과서를 출판을 했다.

 분트의 심리학은 생물학과 물리학에서 독립해서 순수한 심리학으로 그리고 심리학 교실에서 심리학 교과서로 탄생이 된 것이다. 그 탄생 연도가 1879년으로 심리 과학의 탄생 연도로 기록이 되었다.

 분트는 심리학 실험실에서 그의 제자들에게 심리학을 강의를 했다. 그의 수 많은 제자들 중에서 미국인으로 뉴욕 타임즈 기자로써 영국의 탐험가 리빙스런이 아프리카에서 빅토리아 폭포를 찾아 탐험 길에 나섰다가 실종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프리카로 달려가서 결국은 빅토리아 폭포에서 리빙스런과 만나서 그가 살아 있음을 기사로 써서 전 세계에 알린 것으로 유명한 그의 글이 옛날 초등학교 교과서 실린 적이 있는 그 기자가 바로 스탠리 홀(Stanly Hall)이다. (Hall)은 뉴욕 타임즈 기자를 사임하고 독일로 건너가서 분트 밑에서 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미국 최초의 심리학 박사 1호가 된 사람으로 그가 이후에 클라크(Clark) 대학 총장으로 있을 때 1909년에 프로이트(Freud)를 미국으로 초대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는 프로이트(Freud)를 미국으로 초대를 하면서 앞으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세계를 선도할 것이라고 예언을 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사춘기에 대한 13권의 저서로 사춘기가 질풍 노도의 시대라고 신조어를 만든 사람이다(김종만, “”(정신분석학적으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 1999).

 분트의 제자로써 분트 밑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뉴욕의 코넬 대학에서 처음으로 심리학을 강의를 한 사람이 에드워드 티치너(Edward Titchener)이다. 그는 분트의 강의 방식 그대로 검은 망토를 입고 강의실에서 분트의 심리학을 강의를 했다.

 

미국의 심리학의 아버지

 윌리암 제임즈(William James)

비슷한 시기에 미국의 하버드 의과 대학을 졸업한 윌리암 제임즈가 정작 의사가 되기를 포기하고 심리학자가 되었다. 제임즈는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 동안 자신의 심리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 노력을 하다가 그는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심리학자가 되었다(정작 그가 어떤 심리적인 문제를 가졌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시카코 대학에서 심리학을 강의를 했고 심리학 교과서를 출판을 했다. 티치너의 심리학은 해외에서 이민으로 미국에 온 분트의 심리학으로써 인정은 받았지만 미국의 심리학의 아버지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는 미국인이 아니고 이민자라는 점 그리고 분트의 심리학이라는 점에서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가 되지 못했다.

제임즈는 의식은 흐름이기 때문에 분석으로 쪼개서 관찰하고 측정을 할 것이 아니고 의식은 흐름으로 관찰하고 측정을 해야 한다는 이론으로 기능주의 심리학으로 발전을 하게 된다. 윌리암 제임즈의 동생이 미국이 심리 소설가로 유명한 의식의 흐름의 소설 기법을 소설에 사용한 헨리 제임즈(Henley James)이다. 윌리암 제임즈의 심리학은 마음이 과정의 연구, 공리주의 즉 실용주의와 관계, 내면 관찰 그리고 상호작용의 강조 등으로 이후에 미국에서 응용 심리학이 되었다. 심리학이 실 생활에 도움을 주는 학문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제임즈의 주장은 이후에 실용주의 철학 즉 프라그마티즘(pragmatism)으로 발전을 해서 그의 제자인 존 듀이가 바톤을 이어받게 된다. 존 듀이(John Dewey)는 심리학자로 출발해서 교육학자로 변신한 사람으로 그가 창안한 도서 10진 분류 기법은 지금도 미국의 도서관에서 도서분류로 사용되고 있다.

 시카고 대학에서 심리학 강의와 뉴욕의 코넬 대학에서 심리학 강의는 이후에 미국에서 두 개의 심리학의 주류로 이어져내려 왔다. 티치너의 심리학은 몸과 마음을 분리해서 의식의 내용을 중요시하고 그 의식을 분석으로 관찰하고 측정을 하는 심리학으로 구조주의 심리학으로 순수 심리학이 되었고 제임즈의 심리학은 몸과 마음은 상호작용을 하는 의식은 흐름으로 분리시킬 수 없음을 주장하는 기능주의 심리학으로 동물과 어린이를 실험실로 끌어들이는 응용 심리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두 계통의 심리학의 공통점은 실험적인 방법으로 내면관찰(introspection)를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학습(S-R) 심리학의 등장

 잠깐 방향을 돌려서 배움 즉 학습(learning)이라는 것을 정의를 한번 해 보자. 무엇을 배움, 학습이라고 하는가? 라고 질문을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움, “학습이라는 것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라고 대답을 할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 해보세요 라고 한다면 어떻게 배움을 즉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과정을 실험으로 증명을 할 것인가? 이것을 실험으로 증명해서 1905년에 노벨 상을 탄 사람이 바로 파브로프(Pavlov)이다(Lundin, 1985).

 러시아의 육군 사관학교 생리학 교수였던 파브로트(Pavlov)가 개의 위에 구멍을 뚫어서 개가 음식을 보고 흘리는 침의 양을 측정으로 실험을 해서 개가 새로운 것을 배웠을 때를 데이터로 실험 증명을 했다.

 개를 묶어서 움직이지 못하고 고정 시킨 후에 개에게 쇠고기를 보여주었을 때 개는 본능적으로 침을 흘리게 된다. 이것은 고기 즉 자극(stimulus) 이고 침을 흘리는 것은 반응(response)이 된다. S-à R이 된다. 여기에서 고기를 주기 전에 0. 5초 전에 빛 혹은 벨 소리를 들려주고 나서 고기를 주는 것을 여러 번 반복 했을 때 개는 빛 혹은 벨 소리가 오고 나서 고기가 나온다는 것을 새로 배우게 되어서 빛, 벨 소리에 침을 흘리게 된다. 이 때 고기와 빛 혹은 벨이 서로 연결되어져서 새로운 학습 즉 배움으로 빛, 벨 소리에 개는 침을 흘리게 된다. 고기의 자극 즉 S에 조건화 된 자극 즉 conditional 이 붙여서 CS à CR로 표시되어질 수 있다.

 파브로프의 배움, 학습의 실험은 이후에 1950년대 이후에 컴퓨터의 발달로 학습을 할 때는 뇌 속에서 뇌 세포들이 서로 연결을 해서 새로운 회로망이 형성된다는 것이 입증이 되었다. 즉 고기를 주면 침을 흘리는 뇌의 회로는 본능적인 것이다. 여기에서 빛, 벨 소리를 고기와 반복해서 연결 시키면 뇌의 회로에서 빛, 벨 소리와 고기가 뇌의 회로망이 형성되어져서 침을 흘리는 것으로 회로가 연결되어진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CS-à CR로써 조건을 제공해서 학습이 일어난다는 고전적 조건 학습의 원리이다.

 파브로프의 고전적 조건 학습이 미국으로 흘러 들어가서 S -à R 심리학 즉 자극 - 반응 심리학으로 190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미국의 심리학계를 휩쓸게 된다. 심리학은 실험실에서 자극과 반응을 수학적으로 데이터로 측정하는 자연 과학의 일부가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심리학이 자연 과학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관찰할 수 있고 측정할 수 있고 그리도 데이터화 할 수 있는 심리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미국에서 실험 심리학이 된 것이다.

위와 같은 학습, 배움 심리학은 기존의 회로에 새로운 회로가 연결되어져서 기존의 그것과 새로운 관계의 그것이 연결, 연상 이라는 말로써 즉 association 이라는 용어로써 표현되어 사용되어지는데 이 원리는 우리가 유치원, 초등학교 1학년 때 많이 사용하고 있는 줄 긋기가 바로 연상임을 알면 이해가 쉽게 될 것이다. 유치원, 초등 1학년 학생들이 자동차, 비행기, 기차 라는 글자를 읽힐 때 시험지 위에서 여러 가지 모형들 즉 비행기 모양, 기차 모양, 자동차 모양의 그림을 섞어 놓고 보여주면서 서로 관계가 되는 것끼리 줄을 이으세요라는 문제가 바로 학습 심리학이 우리가 어린 시절에 글자를 배울 때 사용했던 바로 그것이 아닌가! 새로운 연결이 형성되어져서 비행기 그림이 뇌 속에서 비행기라는 글자로 남게 되어 우리는 이후에 비행기 그림이 없어도 비행기라는 글자 만 보고 비행기 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뇌 안에서 이미지 상의 회로가 연결).

 실험 심리학은 철저하게 S(자극) – R (반응) 심리학으로 그 사이에 있는 가운데의 블랙 박스는 즉 자극과 반응 이외의 중간 과정은 철저히 무시되어져서 관찰하고 측정하고 데이터화를 할 수 없는 심리학은 철저하게 제외되었다. 과학으로써의 심리학만이 심리학으로 인정을 받던 시대가 되었다.

 심리학이 미국의 대학에서 자연과학의 일부로써 발전을 하고 있던 1913년에 존 홉킨즈 대학의 심리학 교수였던 왓트슨(Watson)행동주의자(behaviorist)가 본 심리학이라는 논문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것이 심리학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행동주의(behaviorism)라는 말이 새롭게 등장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행동주의 심리학이라는 용어가 새롭게 등장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심리학자들

 숀다이크(Throndike)는 자극(S) à 반응(R) 심리학을 연구하면서 새로운 이론으로 시행착오(try and error) 설을 이론화 했다. 실험 동물들을 미궁 속에 집어 넣고 보수를 주면서 그 미궁을 빠져 나오게 하는 실험들로써 보수를 많이 주었을 때와 보수를 적게 주었을 때의 미궁을 빠져 나오는 시간을 수학적으로 계산을 해서 보수와 배움과 관계를 데이터로 측정하는 실험들이 등장을 했고 여기에 생쥐, 원숭이, 고양이 등의 동물들이 실험실에서 사용되어지는 계가 되었다. 이러한 배움의 과정을 이론화해서 만든 것이 시행착오 설이었다.

비 에프 스키너(B.F. Skinner)

 스키너(Skinner)는 영문학을 전공한 대학생으로 케네디 대통령 취임 식에서 시를 낭독한 유명한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대표작: “눈 오는 날 저녁에 숲 속에 서서”, “아무도 가지 않는 길”)에게 시를 써서 앞으로 시인이 될 소질이 있는지?를 문의 했을 때 프로스트는 스키너에게 시인의 자질이 없으니 다른 전공을 찾아라라고 한 조언을 수용을 해서 심리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이후에 하버드 대학교에서 실험 심리학 교수가 되었다.

 스키너는 숀다이크의 연구를 이어 받아서 계속해서 연구를 해서 그의 새로운 이론으로 강화 이론을 만들어 냈다. 보수를 주면 행동은 증가하고 처벌을 주면 행동은 중지 혹은 감소한다는 이론으로 시작을 해서 그는 동물, 인간의 행동의 스타일들을 다양한 종류의 강화로써 달라지는 행동의 스타일을 발견하게 된 유명한 행동 강화 스케줄을 만들어냈다.

 우리가 오락실에 가서 슬롯머신에 동전을 넣고 당길 때 일정한 횟수를 고정 시켜서 그 횟수를 통과할 때 동전이 쏟아져 나올 때, 일정 시간이 경과하면 동전이 쏟아져 나올 때, 언제 나올 찌는 모르지만 1-50번 사이에는 한번 쏟아져 나오게 했을 때, 일정 시간 안에서 언제 나올지 모를 때 등등에서 인간, 동물의 행동들의 스타일이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것을 이론화 한 것이 행동 강화 스케줄이다.

 스키너의 강화 이론은 조건이 서로 짝을 이루어야 학습이 일어나는 파브로프의 고전적 조건화 학습과는 달리 강화의 결과로 학습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전자와 구분해서 조작적 조건학습이라고 부른다.

20세기에 들어가면서 스키너(Skinner)는 미국의 하버드 대학 교수로써 행동주의 심리학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의 실험들은 컴퓨터를 사용해서 다양한 동물들 특별히 비둘기, 원숭이, 쥐 등을 사용해서 실험을 하도록 고안된 스키너 박스(Skinner Box)를 만든 장본인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서 실험실에서 실험자가 2-3일 동안 먹이를 주지 않고 물만 주어서 굶긴 쥐를 한 마리를 스키너 박스에 집어 넣고 실제로 학습이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관찰하면서 실험을 하는 것이다. 스키너 박스에 들어간 쥐는 먹이를 찾으려고 이곳 저곳으로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스키너 박스 구석진 곳에 볼록 튀어 나온 단추를 건드리게 된다. 그 단추를 건드리게 되면 먹이가 튀어 나오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 쥐는 우연히 그 단추를 건드리게 되면서 먹이가 나오는 것을 주워먹은 이후에 그 다음에 또 우연히 또 그 단추를 건드리면서 먹이가 나오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이 시점 까지는 시행착오 이론에 부합) 몇 회, 몇 분 후에는 그 쥐는 그 단추를 건드리면 먹이가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시점부터 그 쥐는 계속해서 그 단추를 건드리게 된다. 즉 그 단추를 누르면 먹이가 나온다는 것의 학습, 배움이 일어난 것이다. 이 시점에 도달하기까지 몇 회, 몇 분 등이 컴퓨터에 기록이 되어지고 쥐가 배움에서 걸리는 시간과 빈도수 그리고 먹이의 량 등으로써 쥐의 학습의 과정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스키너 박스의 실험 과정이다.

 스키너는 쥐, 비둘기, 원숭이 들을 사용해서 그리고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들은 이후에 미국의 NASA에서 달 탐험 로켓을 발사할 때 인간이 달 로켓을 타기 이전에 이들 동물들을 우주 로켓에 태워서 보내는 실험에서 사용되었다는 것은 유명하다. 이들 동물들이 컴퓨터를 사용해서 먹이를 스스로 찾아 먹도록 훈련이 되어져서 우주 로켓에 실어 보내진 것이었다.

행동주의 심리학에 밀려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던 심리학은 1960-1970년대로 들어가면서 펜실바니아 대학에 심리학 교수였던 아론 벡(Aron Beck)에 의해서 생각과 사고 등도 간접적으로 데이터화 할 수 있다. 생각이 인간의 행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이론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그의 이론은 인지 심리학(Cognitive Psychology)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심리학은 폭이 한층 더 넓어지고 확대되어져 갔다. 1980년대에 실험 심리학과 행동주의 심리학에 반대해서 인간을 너무 기계적(행동주의) 그리고 병적으로(정신분석학) 보기 보다는 건강한 사람의 심리학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들을 한 칼 로저스(Carl Rogers)와 마슬로우(Maslow)에 의해서 등장하게 된 심리학이 인본주의 심리학(Humanistic Psychology)이 있다.

 이제 심리학은 여러 가지 갈래로 나누어져서 인간의 다양한 심리적인 면들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발전을 했다. 실험 심리학의 대명사가 된 행동주의 심리학, 몸과 마음과의 관계를 연구하는 생리 심리학, 사고의 과정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인지 심리학, 기계적인 그리고 병적인 모습의 인간 보다는 건강한 인간의 마음을 연구해야 한다는 인본주의 심리학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어떤 상처를 받아서 마음의 병이 들고 그 병든 마음에 무의식이 하는 역할을 이론화 한 정신분석학으로 심리학은 크게 5가지의 갈래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특이한 점은 심리학의 탄생에 공헌한 심리학자들은 모두가 의과 대학을 졸업한 의사들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그들의 전문 직종에 해당되는 환자를 한 사람도 치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웨버(Weber), 페크너(Fechner), 분트(Wundt)는 의과 대학 출신 의사였다. 그리고 프로이트(Freud)은 비엔나 의과대학 신경학과를 전공했지만 신경과 환자를 다룬 것이 아니고 심리적인 문제를 가진 환자를 치료하다가 심리학자가 된 사람이고, 미국의 심리학의 아버지인 제임즈(James) 역시 하버드 의과 대학을 졸업을 했으나 정착 환자는 한 사람도 치료하지 않고 심리학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고로 심리학을 전공하려는 사람들은 반드시 생리학이 필수적이라는 점, 물리 화학 중에 한 과목을 필수 과목으로 그리고 심리학에서는 내일을 예측하는 과학으로 사용되는 통계학으로 수학이 필수적이라는 점이 심리학을 전공하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 심리 과학의 전체적인 면들을 요약으로 정리를 해 보고자 한다. 심리학이 과학으로 등장을 한 것은 독일의 라이프찌그 대학 실험실에서 분트(Wundt)에 의해서 1879년에 태어났다. 그 후에 15년 후에 1895년에 프로이트(Freud)에 의해서 정신분석이 태어나게 된다. 20세기에 들어오게 되면서 심리학은 크게 두 가지의 줄기로 양분이 된다. 분트의 심리학은 실험실에서 과학으로 등장하게 되는 실험 심리학, 프로이트에 의해서 인간의 마음을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게 되는(은유적 표현) 정신분석학으로 대표되어진다.

분트(Wundt)와 프로이트(Freud)는 서로 비교, 대조가 되는 심리학의 대표자 이다. 전자는 실험심리학으로 후자는 이론 심리학(프로이트의 이론은 실험을 할 수 없다는 단점)으로, 전자는 의식을 분석의 대상으로 후자는 무의식을 분석의 대상으로, 전자는 어른들을 중요시 한 점과 후자는 어린이들(0-5, 6)을 중요시한 점, 전자는 내면 관찰법 혹은 내성법(introspection)을 사용한 사람으로, 후자는 자유 연상 법(free association)을 사용한 사람으로 비교 대조되는 심리학의 거목이다. 둘 다 공통점은 분트는 하루에 평균 2.2 페이지 총 5 3 735 페이지를 반면에 프로이트는 하루에 환자를 10명 이상 치료 하면서 130여 종의 논문과 1만 페이지와 24권의 전집을 남겼다(Lundin, 1985).

프로이트와 분트가 심리학에 이바지한 공적은 심리 과학이라는 큰 수레를 굴러가게 하는 양쪽 바퀴에 비유될 수 있다. 한 사람은 무의식을 연구했고 다른 한 사람은 의식을 연구함으로써 두 개의 분야가 통합되어 비로소 심리학이라는 방대한 분야가 된 것이다. 어느 한 분야 만으로는 온전한 심리학이 아닌 반쪽 심리학 밖에 될 수 없다. 두 분야의 통합으로 심리학은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을 연구하는 방대한 분야로 확대될 수 있었다. 프로이트와 분트는 심리 과학을 떠 받치는 두 개의 버팀목으로써 서로 경쟁자가 아닌 보완자 역할을  하고 있다”(김종만, 1999,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 p 634).

다음 장에서는 이제 내면 세계를 마음의 현미경이라는 은유로써 들여다보면서 사람의 마음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자아로 형성되어져 가는가?를 최초로 연구해서 밝혀낸 정신분석을 탄생시킨 프로이트가 등장하게 된다. 프로이트(Freud)의 등장 에 들어가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