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군복무 후에 복학을 준비하는 대학생 C군

증세: 초등학교 3학년 시절부터 입에서 냄새가 난다는 구취증, 초등학교 5학년 시절부터 소변이 너무 잦아서 스스로 빈뇨 증(구취증, 빈뇨증은 C군이 스스로 붙인 이름)

접촉: 어떤 학자가 쓴 "심인성 질환"이라는 서적에 감동되어 자신의 문제점이 심인성 질환으로 확신하고 인터넷에서 치료자의 심인성질환 홈페이지를 접하고 전화로 치료 문의를 해 왔음

진단: 심한 불안증, 신체 기형 공포증

치료 기간: 1회기에 2시간으로 6개월간의 치료 계약을 맺고 치료를 시작을 했음. 아래의 치료는 제 2 회 치료회기의 총 4시간의 치료 과정에서 B군의 심리적인 증세들을 분석한 것이다.

 

치료의 과정

 C군은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해서 올 해 2월 달에 전역을 한 후에 1년을 휴학으로 쉬면서 실종 아동 찾아주기 기관에서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고 있으며 내면 3월 달에 대학 2학년에 복학할 준비를 하고 있는 학생으로 xxx 대학에서 경영 정보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이었다.

 그는 어떤 학자가 쓴 "심인성 질환"이라는 책을 읽고 자신의 심리적인 증세들이 심인성 질환이 틀림없다고 확신을 한 후에 인터넷에서 심인성 질환이라는 자료를 검색하다가 치료자의 홈페이지에 접촉한 후에 치료를 받고 싶다고 휴대 전화로 연락을 해서 첫 시간부터 심리치료를 계약하고 6개월간의 심리치료에 들어가게 되었다.

 심리치료를 하려면 그 개인의 발달의 역사, 즉 성장 배경에 대한 정보가 필수적이다. 그의 양육의 역사, 그와 부모님과의 관계, 그리고 학교 시절에 동료들과의 관계, 지금 현재의 문제점(그가 지금 현재 가지고 있는 증세들), 그의 미래에 대한 비젼 즉 그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가? 하는 기대, 소망들을 샅샅이 살펴 보아야 한다.

C군의 성장 배경: C군은 외아들로 현재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초등학교 2학년 때 교통 사고로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망 이전에는 큰 문제점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의 유치원 시절에 대한 기억은 활발하고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으로 유치원 시절에 활동을 활발하게 잘 했고 친구들과 사이도 좋아서 친구 집에 자주 놀러 갔었고 친구네 집에서 자주 놀았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에는 학교에 가기를 좋아했고 친구 관계도 좋았다고 했다. 현재의 모든 문제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부터 시작되었다고 그가 털어 놓았다.

아버지가 교통 사고로 사망: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느날 그와 어머니는 밤 중에 전화 벨 소리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한 경찰관으로부터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에 놀라서 병원으로 달려 갔을 때 병원의 영안실이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음주 운전을 하다가 경찰의 단속에 걸리게 되자 도망을 하게 되었고 경찰 순찰차의 추격으로 쫓기다가 과속으로 충돌 사고로 즉석에서 사망했다는 것이 그가 알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전부였다. 사고 직전에 아버지는 이모와 이모부가 운영하는 슈퍼마겟을 인수해서 8개월간 운영을 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매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약 3분의 2 정도 매각이 진행된 상태에서 술을 잡수시고 음주 운전 단속에 걸리게 되자 도망치다가 운전 부주의의 사고로 사망을 했다는 것이었다. 더 붙여서 C군은 아버지가 사망 1주일 전에 둘 째 큰 아버지와 승용차를 바꾸어서 운전하다가 사고로 사망했다는 것에 대해서 어머니가 둘 째 큰 아버지와 대판 싸움을 벌린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도 둘 째 큰 아버지와는 그 앙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가족의 대소사에는 서로 큰 갈등은 없다고 했다.

 C군은 아버지의 사망 후에 슈퍼마겟는 다른 사람에게 매각을 하고 전업 주부였던 어머니가 일을 하게 되면서 이모네 집에서 같이 살 게 되었다.이모부와 이모는 C군의 부모님에게 그들이 운영하던 슈퍼마겟을 매각하고 다른 슈퍼마겟을 시작해서 지금도 슈퍼마겟을 운명하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의 사망 후에 C군은 주변 사람들에 대한 극심한 공포증을 가졌었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입에다 독약을 넣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사람들을 극구 싫어하고 사람들을 피했다고 했다. 그는 이모네 가족 구성원들을 피했고 심지어는 어머니가 자신의 음식에 독약을 넣지 않을까? 두려워 했다고 했다. 심한 대인 기피증 때문에 어머니는 이모 가족과 1년 6개월간 같이 살다가 집을 얻어서 C군과 함께 독립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그는 어머니가 죽지 않을까?두려움 속에 살았다고 했다. 치료자가 아버지에 대한 꿈을 꾼 적이 있는가?라고 물었을 때 그는  여러 번 아버지의 꿈을 꾸었다고 했다. 꿈 속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같이 가는데 C군이 뒤에서 따라 가는 꿈들이었는데 꿈 속에서는 아버지가 반가웠으나 꿈을 깨고 난 다음에 그는 아버지가 자신을 데리고 저승으로 가는 저승 사자처럼 느껴져서 아버지를 따라가면 저승으로 가는 것일 지로 모른다고 두려워했다고 털어 놓았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C군과의 관계를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을 때 C군은 아버지와의 갈등 관계는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아버지와 갈등 관계는 한번은 통 닭을 사 가지고 왔을 때 아버지가 통 닭을 먹기 전에 C군이 먼저 통 닭을 먹었다고 아버지는 그를 도어 문을 열고 내 쫓았다고 했다. 때리지는 않았는데 집 밖으로 내 쫓았다는 것을 기억을 했다. 그 당시에 그는 얼마나 그가 잘못했는지를 몰랐다고 했다. 두 번째 C 군이 맛있는 생선 요리에 너무 과식으로 음식을 많이 먹어서 속이 더부룩해서 토해내고 있는데 아버지는 전혀 무관심으로 일관해서 섭섭해 했다고 했다. 그 두 개의 이벤트 이외에는 아버지와 갈등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외에는 아버지는 C군에게 좋은 이미지로 항상 C군에 잘 대해 주었던 아버지로 남아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C군은 주변의 사람들이 두려워지고 자신에게 독약을 넣지 않을까? 두려워했다는 그 공포증 이외에도 4학년 쯤에서 한 친구가 자신에게 입에서 냄새가 난다는 말에 깜짝 놀라서 그는 그의 구취증(그가 붙인 증세 이름)이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했다. 그 시쯤에서 그는 소화가 잘 되지 않아서 위와장이 약해서 위와 장에서 소화가 잘 되지 않은 탓으로 냄새가 날 것이라고 해서 육류(소고기 돼지 고기 증 찔긴 음식)는 초, 중, 고등학교 때까지 먹지 않고 있다고 지금은 육류는 잘 먹고 있다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점에서 소화 불량으로 힘들어지면서 그는 어머니가 소개한 놀이 치료를 10개월 정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 놀이 치료 선생님께서 일본으로 유학을 가 버리는 바람에 그는 놀이 치료를 그만 두었다고 했다. 그는 놀이 치료가 그에게 효과가 있었는지는 지금도 기억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놀이 치료가 약간 효과가 있었다고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서 소변이 잦은 빈뇨증(그가 붙인 증세 이름)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했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빈 뇨증이 심했다고 했다. 치료자가 하루에 몇 번 화장실에 들락거리느냐? 물었을 때 그는 하루에 7회-8회 정도 드나든다고 했다. 병원에 가서 종합 검사를 했을 때 신체적인 이상이 없다는 말에 그는 빈 뇨증의 원인이 그의 심한 자위행위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빈 뇨증은 지금도 심하다고 했다.

 입에서 심한 냄새가 난다는 구취증 때문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는 친구들과 관계를 일부러 피하게 되었다고 했다. 고로 친한 친구 관계가 끊어지면서 대인 공포증이 생겼다고 했다. 친구들과 함께 하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자연히 친구들과 만나면 끌끄러워지면서 친구들을 피하게 되었다고 했다.

 공부는 이러한 증세들 때문에 주의 집중에 잘 되지 않아서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은 많은데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아서 성적이 좋지 못해서 대학에는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고 했다. 친구들이 그에게 그가 공부를 하는 시간에 비추어서 성적이 올라가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해 준 친구가 있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전업 주부로 있다가 일을 시작했고 보험 세일즈 혹은 다양한 직업을 가지게 되었고 지금은 역술학을 공부를 해서 역술인으로써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고 했다. 심리치료에 대해서 어머니께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물어보았을 때 C군은 어머니는 심리치료 보다는 약물 치료를 선호하고 있으나 C군은 약물 치료보다는 심리치료를 선호하게 되었고 어머니는 C군이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는 것을 흔쾌히 허락해주시고 치료 비용을 부담해 주셨다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놀이 치료 이외에 정신과 치료나 심리치료를 받은 적이 있느냐?라는 물음에 C군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신경 정신과에 갔었으나 신경 정신과 선생님은 간단한 5분 정도의 이야기로 약물 치료를 처방해 주어서 약물을 약간 복용하다가 그만두었다고 했다. 이후에 인근에서 심리치료 센터에 가서 심리치료를 3개월 정도 받았으나 효과가 없는 것 같아서 그만 두었다고 했다. 치료자는 그 심리 치료사가 그의 병명이 무엇이라고 했느냐? 하는 물음에 병명은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냥 50분씩 상담만 하다가 효과가 없는 것 같아서 그만 두었다고 했다.

 군 복무 시에는 큰 어려움들은 없었으나 그가 근무를 하고 있던 해안 경비대에서 근무를 하면서 동료들과의 큰 어려움이 있었느냐?라는 치료자의 물음에 동료들과는 큰 어려움들은 없었다고 했다.

 C군은 자신은 기억을 하지 못하지만 그가 3살- 4살 사이에 1년 동안 할아버지, 할어머니 집에서 1년간 같이 살았다고 어머니가 이야기를 해 주었다고 했다. 더 붙여서 아버지가 죽고 나서 어머니가 일을 하러 갔을 때 저녁 늦게 오시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빨리 집에 돌아오라고 해서 어머니로부터 심한 처벌을 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 놓았다.

 초등학교 시절에 공작 시간에 공작을 만들면서 그는 동료들이 만든 공작물이나 자신이 만든 공작들이 자신의 목구멍에 걸려서 혹시 질식해 죽는 것이 아니냐! 하는 두려움으로 떨었다고 했다. 지금도 그는 생선이나 뼈가 있는 음식을 절대로 먹지 않는다고 했다. 고개 뼈가 목에 걸려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라고 했다.

 그 이외의 신체적 증세들은 없다고 했다. 초, 중, 고등학교 시절에 소화가 잘 안되어서 소화 불량으로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까지 소화제를 매일 저녁 마다 한 알씩 먹었다고 했다. 소변 잦은 이외에는 다른 신체적 증세들은 없었다고 했다.

 가족 관계와 친척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질문을 했을 때 외가 쪽에는 외할아버지는 공무원으로 외할머니는 전업 주부로 살림만 했으며 큰 외삼촌은 대학 시절에 법대을 졸업했으나 고시에 실패하고 결혼도 하지 못하고 지금은 직업도 없기 은퇴한 외 할아버지와 외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고 어머니의 언니인 이모 내외가 슈퍼마겟을 운명하며 살고 있고 어머니의 남동생인 외삼촌은 수재로써 국비 장학생으로 독일에 유학을 간 후에 외숙모는 같이 독일에 유학을 가지 못하고 이모네에 C군 가족이 살 때 같이 살았으면 이후에 C군의 가족이 독립해서 살 때 3개월 정도 같이 외숙모와 함께 살았다고 했다. 외숙모와 C군과의 관계도 좋지 않았다고 했다. 친족 관계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따로 살고 있고 큰 아버지는 대학에서 행정적으로 근무하고 있고 작은 큰 아버지 내외가 있고 아버지의 사망 직전에 작은 큰 아버지가 승용자를 바꾼 것 때문에 어머니와 작은 큰 아버지가 대판 싸운 것이 기억난다고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있고 시집을 간 고모가 있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 외갓집에 큰집에 어느 쪽에 간 기억이 많으냐고 했을 때 외갓집에 자주 간 기억이 많다고 했다.

 현재까지의 증세들: 구취증(입 안에서 냄새가 난다는 공포증), 빈 뇨증(소변이 너무 잦아서 고통스럽다)은 지금 현재 그가 가장 해결하고 싶은 증세들이고 나머지 대인 공포증, 학습에 주의 집중 정도를 높이는 것이라고 했다.

 구취증에 대서 살펴 보자. 구취증이라는 증세의 이름은 C군이 스스로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자신의 몸에서 냄새가 난다거나 몸이 기형이라고 생각해서 자신의 몸에 대해서 지나치게 신경을 많은 쓰는 증세를 가진 장애가 있다. 정신의학에서 이것을 신체 기형 공포증이라고 불리운다. 치료자가 치료를 한 경험으로 20대 후반의 여성으로 자신의 항문에서 구린내(똥 냄새)가 난다는 아가씨로 대인 관계를 아예 피하고 두문불출하는 여성으로 그녀는 정신분열증으로 진단된 사람이었다. 실제로 자신의 얼굴이 기형이라고 수십차례 수술을 받아서 심한 기형적인 얼굴이 되어 TV에서 소개된 "선풍기 아주머니"와 같은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정신분열증으로 자신의 신체에 기형에 집착하게된 심한 환자에 속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C군은 심한 신체적 기형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의 입에서 냄새가 난다는 것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독약 투입에 대한 공포 때문에 대인관계를 피했다는 점은 심한 불안증으로 일반화된 불안 장애에 들어가는 것은 확실한데 입에서 냄새가 난다는 증세는 신체 기형 공포증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C군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입에 독약을 넣거나 음식에 독약을 탈 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대인관계를 피하게 된 것은 편집증(다른 사람을 심하게 의심)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모든 것을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려는 성향은 아닌 것으로 보아서 편집증으로 이름을 붙일 수는 없다고 본다.

이론적 근거: 치료자는 C군에게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여러 개의 증세가 시작된 것으로 볼 때 C군 자신은 증세들은 무엇 때문으로 보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아버지의 죽음이 그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고 인정을 하고 있었다. 그의 증세는 심한 불안증으로 그가 인정을 하고 있었지만 무엇 때문에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다른 사람을 피하고 소화 불량으로 매일 저녁마다 소화제를 한 알씩 6학년 때까지 복용을 했으며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소변이 잦아지게 되었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는 그 자신도 유추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치료자는 C군과의 2시간 인터뷰 상담에서 아버지와 C군과의 관계를 찾았으나 유치원 시절 혹은 초등학교 1학년 시점에까지는 특별한 상처 경험이나 결함들을 발견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 왜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여러가기 증세가 폭발을 했는가?를 분석하면서 한가지 실마니를 찾을 수 있었다. 분명히 C군은 아버지와 죽음과 자신의 증세 발발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C군도 시인을 했고 누가 보아도 분명히 아버지의 죽음과 그의 증세 발발은 관계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치료자는 그의 한 말 중에서 그가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3살-4살 사이에 친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서 1년간 아버지와 어머니와 떨어서 살았다는 것을 어머니로부터 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것이 분리 불안으로 작동을 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C군은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특별히 C군에게 잘 보살펴주고 사랑을 주었다는 기억은 확실하지만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분리에서 불안 심하게 가진 것은 분명했다. 그 이유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어머니가 직장을 가지게 되면서 C군이 저녁에 어머니를 집에 빨리 돌아오라고 보채는 것에서 볼 수 있다. C군이 심하게 어머니에게 집에 빨리 오라고 보채는 것 때문에 어머니로부터 심하게 처벌을 받았다고 이야기를 한 것에서 그가 분리 불안을 심하게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분명했다. 엄마가 옆에 없어서 심하게 불안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그 분리 불안이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심하게 나타났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가 C군의 분리 불안을 막아주고 있다가 아버지가 사라지자 그 분리 불안이 C군을 엄습한 것이었다. 고로 어머니가 일을 하러 나갔을 때 C군은 불안에 휩싸여 공포 속에서 살 게 된 것이었다. 심리학자 듀폰(DuPont, 1982)은 공포증을 "어른의 분리불안"으로 보고 있다. C군은 아버지로부터 분리 불안으로 공포증(독살될지 모른다는 공포증) 속에 휩쓸려 가족, 친지들과 관계를 거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가족, 친지들 한데 왜 편집증적인 의심으로 독약을 넣어서 죽이게 할지 모른다는 의심으로 가족들과의 관계를 피했는가? 하는 것이다. 먼저 친족과 관계에서 작은 큰 아버지가 아버지와 자동자를 바꾼 이후에 아버지가 음주와 자동차 사고로 숨졌다고 어머니가 작은 큰 아버지와 대판 싸운 것에서 친가 가족 쪽에 분노와 원망이 있다는 것을 C군이 감지를 하고 있었다는 점이 있고 그리고 두 번째 이모와 이모부가 운명하는 슈퍼마겟을 인수를 받아서 8개월간 운명을 하다가 다시 다른 사람에게 매각을 하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음주로 사고나 나서 사망했다는 것이다. 분명히 아버지가 인수를 받은 그 슈퍼마겟이 잘 운명이 되었으면 왜 8개월 후에 매각하려고 시도를 했겠느냐? 하는 것이다. 슈퍼마겟이 잘 되지 않아서 다시 팔겠다는 것이었고 아버지가 술을 마셨다는 것은 무엇인가? 불쾌감 화가 나서 술을 마셨을 것이라는 점이다. 경찰 순찰차에 걸리자 아버지는 도망을 쳤고 음주에다 아버지의 내면에 쌓인 분노는 그 경찰관들에 대한 분노로 방향이 바뀌어서 경찰관들에게 분노가 흘러가면서 도망과 "붙잡으려면 붙잡아보아라"라는 분노의 표현으로 방향이 바뀐 것으로 볼 수 있다. C 군은 이러한 무의식적인 것을 감지를 하고 있었고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그는 친가와 외가쪽 가족 구성원들에게 감정 지원과 관계 자체를 거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것은 어머니가 그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어머니의 내면의 마음이 C군에게 반사되어 흘러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서 C군이 아버지에 대한 죽음에 애도를 하지 못하고 내면의 마음 속에 갇힌 감정들이 소화 기관 쪽으로 흘러가서 심한 위와 장에 소화불량으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C군은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아무런 감정의 표현이 거의 없었다는 말을 할아버지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에서 애도의 과정을 충분히 거치지 못했다. 이 애통이 내면 마음 속에서 쌓여서 위와 장으로 흘러갔고 분노, 적대 감정이 가족 구성원들 친족 들 한데로 흘러가서 그들의 접촉을 막아 버린 것으로 보인다. C군은 아버지와 관계가 아버지의 죽음 이전까지는 좋았다는 점이 그것을 뒷받침해 준다.

 물론 이것은 C군의 첫 2시간 동안의 인터뷰에서 치료자가 분석한 것으로 이것은 이후에 치료에서 그것이 확실한지 아니면 다른 원인으로 나타날 것인지는 분석의 과정을 거치면서 드러날 것이다. 치료에서는 이러한 과정들이 하나씩 밝혀질 것이다. 치료의 과정에서 초점이 맞추어져야 하는 부분이 바로 그 애도의 과정을 다시 거치게 하고 마음 속에서 아버지에 대한 애정과 분노(가족을 버리고 먼저 떠나간 것에 대한 분노)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C군은 이후에 분석에서 심한 공포증임이 밝혀졌다. 그의 증세들은 그의 내면의 공포감으로 인한 두려움 때문에 자아 소멸을 방어하기 위해서 그의 증세들을 개발한 것으로 분석이 되었다. 그의 상세한 분석에 흥미가 있는 사람들은 다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