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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38세의 남자 B씨

증세: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할 때면 손에 땀이 나고 가슴이 꽉 조이고 숨이 막히고 호흡이 가파지고 말을 할 때 버벅거리면서 말을 더듬고 목소리가 거칠 게 나오는 증세 때문에 20년동안 고통속에 살아온 B씨

접촉: 정신과 의사에게 약물 치료를 받아보었으나 도움이 되지 않았다. 6년 전에 한 정신과 의사가 운영하는 집단 치료 프로그램인 "인지 행동 치료"를 80만원의 큰 돈을 주고 12주 동안 받아 보았으나 효과를 보지 못했음, 이후에 몇 번의 심리치료를 받았으나 실패했음. 그 후에 자신의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 다양한 정신 의학적 서적을 탐독하면서 라깡의 정신분석, 프로이드의 정신분석, 불교 서적, 각종 정신 의학 서적 들을 탐독하면서 자신의 문제 해결을 시도를 했으나 실패했음. 치료자의 홈페이지에 접속한 후에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고 싶다고 전화를 걸어 왔음

진단: 불안증, 수행 공포증

치료 기간: 1회기에 2시간씩 1주일에 1회 치료 회기로 6개월 동안 치료 계약을 하고 지금 현재 1.5개월 째 치료를 받고 있음

치료 결과: 치료 1.5개월 만에 아래와 같은 내용의 문제의 핵심 원인이 분석되어졌음. 이 분석에 대해서 B 씨는 100% 치료자의 분석이 정확하다고 확신을 한다고 동의를 했다.

 

치료의 과정

제 1 회 치료 회기: B씨는 치료자를 만나자 말자 당당하게 그가 명문 대학의 명문 학과 출신이라고 소개를 했다. 외모로 보아서 키도 크고 미남이었다. 직장도 세계적으로 이름난 외국인 회사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엘리트 사원으로써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고 자신의 업무에 따라서 스스로 출퇴근을 조정해서 한다고 자랑을 했다. B씨는 자기 자신도 자기가 어디에 내 놓아도 꿀리는 것이 없는 당당한 엘리트 출신이라고 자부 한다고 했다. 그러나 조그만 문제 즉 큰 문제도 아닌 "조그만 문제"(그가 여러 번 강조함) 때문에 자신이 만신창이가 되어왔다고 한탄 쪼로 말을 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할 때만 되면 가슴이 조여오고 손에 땀이 나고 호흡이 가파지고 현기증이 나는 것 같은 느낌 때문에 말을 버벅거리고 목이 쉰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더욱 더 나아가서 이제는 그러한 상황이 예상되면 공포적이 되고 겁부터 먼저 난다고 했다. 언제부터 그러한 증세가 시작되었느냐는 치료자의 질문에 처음 시작된 것은 대학교 1학년 써클 활동 때였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지방의 소도시에서 성장한 지방 출신으로 중, 고등학교 때는 반에서 1등 2등을 다투었고 늘 반장 부반장을 해서 여러 동료들이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고 했다. 처음 증세가 시작된 대학 1학년 때의 그 치명적인 그 이벤트 이전에는 발표 문제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고 강조를 했다. 그 이벤트가 어떤 이벤트이었는지를 물었을 때 그는 망설이지 않고 소상하게 이야기를 했다. xx 대학교 1학년 때 그 당시에는 한창 데모가 유행이었고 학생들은 학교에서 길거리로 가두 행진을 했던 시절이었다고 했다. 그는 학생 이념 써클에 가입해서 사회주의 이론들과 계급 투쟁 이념 서적들을 탐독하였다고 했다. 자신이 가입한 써클은 데모 시에 다른 학생들을 선동하는 노래 패 써클로써 여러 명이 역할을 분담하였는데 B씨는 그 때 노래를 부르는 역할을 담당했다고 했다. 연습 시에 다른 사람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자신이 노래를 부르는데 목소리가 이상하게 나오고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자 동료들이 깔깔 거리며 웃었던 일이 있었다고 했다. 이 때 그는 심한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꼈다고 했다. 동료들이 그것에 대해서 그 당시에 웃었던 것밖에 없었으나 그는 그 이벤트에 대해서 치명적으로 모욕감, 수치심에 치를 떨었다고 했다. 그 이후에 그는 여러 사람들 앞에 나와서 발표를 하는 것에 신경이 쓰이게 되었고 대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각종 연구 발표나 세미나 등에서 그룹으로 연구를 해서 발표를 할 때면 항상 B씨 자신은 직접 발표를 하는 것을 피하고 동료들에게 발표를 하는 것을 맡기고 B 씨 자신은 슬라이드 등을 조작하거나 발표 이외의 자료 수집 등의 역할을 도맡아서 옆에서 도와주는 일을 의도적으로 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후에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회사에 입사해서 지금까지 10년 이상을 엘리트 사원으로써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다른 모든 면에서는 남에게 꿀리는 것이 없는데 단지 다른 사람 앞에서 발표를 하는 이러한 조그만, 별 것도 아닌 일에서 자신의 콧대 높은 자존심이 꺽이는 것에 분해서 못살겠다고 하소연을 했다.

 

제 2 회 치료 회기: 치료자는 B씨의 증세 발생에 관계해서 좀더 소상하게 그 증세와 관련된 과거의 역사들을 탐색하기로 하고 B 씨에게 그 증세와 관계되어 지금까지 어려웠던 경험들을 이야기를 해 달라고 했다. 그는 대학교 1학년 때 노래 패의 써클 행사 공연 연습장에서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해서 겸연쩍어 동료들의 웃음거리가 된 이후에 이것을 커다란 망신으로 체면 손상으로 기억을 하고 있었다. 이후에 동료들 앞에서 발표를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피하고 도망을 다녔다고 했다. 자신의 약점이 다른 사람에게 발각 되는 것에 신경을 곤두세웠다고 했다. 대학 3학년, 4학년이 되면서 그룹 연구 조사나 세미나 등에서 자신이 발표를 하는 것을 피하고 다른 그룹 참가자로 하여금 발표를 하도록 하고 자신은 자료들을 챙기거나 시청각 기구들을 조작하는 일들을 일부러 맡아서 발표를 피해왔다고 했다.

 회사에 입사 후에 얼마되지 않아서 어느 날 직장의 상사가 자신에게 어떤 인쇄된 유인물을 자신에게 주면서 읽어 달라고 요청을 받고 그 인쇄 내용물을 읽으면서 또 망신을 당했다고 부끄러워했다. 그것을 읽는데 목소리가 떨리고 더듬거리고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초등학생처럼 부자연스러웠다고 했다. 그 때 상사가 B씨가 인쇄물을 읽는 것을 듣고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자신을 이상하게 보면서 왜 그러냐고 물어보았던 것이 기억난다고 했다.

 그 이후에 직접 발표를 하는 일은 의식적으로 빠지고 동료들에게 미루어왔으나 지점장의 명령으로 자신이 발표를 직접 하게 되어 피할 수 없었던 때가 회사 입사 후에 약 6년 쯤에 있었다고 했다. 그 때 그의 회사의 직원들과 간부들이 약 130 여명이 모인 대 강당에서 발표를 하게 되었고 사전에 많은 연구들을 해서 풍부한 자료 수집으로 모든 준비를 완료 한 후에 정작 그 발표 시에는 준비한 자료들을 제대로 활용도 하지 못하고 버벅거리고 머리 속이 햐얗게 변해서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겨우 발표를 끝마쳤으나 동료들과 상사들이 다음에 더욱 잘하면 된다는 격려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망신을 당하고 수치심으로 고통스러웠다고 그 때를 치욕으로 회상을 했다.

 최근에  3개월 전에 지점장을 뽑는 지점장 채용 시험에 응시를 했으나 인터뷰 시에 말을 더듬거리고 목소리가 떨려서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약 30여명이 응시한 시험에서 떨어진 경험을 이야기를 했다.

 지난 주일에는 새해 업무 보고에서 약 8명의 간부들이 지점장과 함께 타원형 테이블에 앉아서 슬라이드로 준비한 약 15페이지의 내용물들을 각자가 발표를 하는데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면서 손에 땀이 나고 긴장되어 부자연스러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역시----"라는 한탄 쪼의 목소리가 입 속에서 맴돌았다고 했다.

 그리고 더욱 최근에 지점장이 다른 지점으로 발령이 나서 같이 근무를 했던 사원들이 각 부서별로 비디오 촬영을 해서 그것을 떠나는 지점장에서 선물로 주게 되어 B씨 자기 차례가 왔을 때 비디오 촬영을 하는 카메라 앞에 섰을 때 또다시 말을 버벅거리고 손에 땀이 나고 목소리가 거칠 게 나와서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몇 일 전에는 동료들과 모여서 스크린 골프를 치면서 1000원 차리 내가 골프를 장난으로 칠 때에 B씨는 자신이 그의 자아에게 마음 속으로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치료자에게 이야기를 했다. "친구들보다 더욱 잘해야 해, 멋지게 해서 친구들을 능가해야 해" 이런 말을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손에 땀이 나고 가슴이 꽉 조여오고 호흡이 거칠고 숨이 막힐 것 같은 것을 느꼈다고 실토를 하면서 자신의 머리 속에는 다음과 같은 프로그램이 작동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어떤 것을 동료들 앞에서 할 때는 자신도 모르게 예견 불안이 오고 그 다음에 손에 땀이 나고 그 다음에 호흡이 가파지고 가슴이 조여오는 순서가 그대로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짜여져서 B씨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대로 작동이 되는 것 같다고 하소연을 했다.

 어제는 신임 지점장이 오셨는데 깐깐하고 일일이 하나씩 따지는 성격으로 혹시 자신에게 엄무 보고나 앞으로 그 지점장과 대면에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의 고민으로 고통스럽다고 했다.

 

제 3회 치료 회기: 치료자는 B씨의 어린 시절의 가족 환경을 이야기를 해 달라고 했다. 그는 어린 시절에 너무나 경제적으로 커다란 타격을 받고 자랐다고 했다.

 아버지는 대학 때 학생 회장을 했던 사람으로 키가 180cm가 넘은 호인으로 성격도 호탕하고 친구가 많았고 운동을 했던 체질로 단단한 근육형이었으며 대학 때 학생 회장을 했었던 사람이라고 자랑스럽게 말을 했다. 아버지가 대학 시절에는 학생 회장을 "학도 호국단 단장"이라고 호칭을 했으며 그 때에 학생회의 활동으로 박정희 대통령과 악수를 하면서 찍은 사진이 지금까지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늘 그것을 자랑스러워했다고 했다. 아버지는 B씨가 유치원 시절에 처음으로 사업을 했는데 그 사업이 스마일 벳지(smile badge) 사업으로 스마일 마크를 만들어 가슴에 달고 다니는 장식물 사업이었으나 그 사업이 실패하고 두 번째로 동료와 동업으로 아버지가 아이디어를 내서 친구와 동업으로 크다란 백화점을 개업을 했는데 친구가 그 사업을 자신이 독차지 하면서 아버지에게는 그 백화점에 딸린 점포를 몇 개를 주면서 발을 빼라고 한 것에 격분해서 그 친구를 폭행했다가 6개월간 감옥에 갔었던 이후에 다시는 사업 실패에서 재기를 하지 못하고 결국은 45세의 나이로 간 암으로 별세하기까지 아버지는 너무나 비참한 삶을 살아왔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과 대학 시절에 친가에서 앞으로 큰을 할 인물이 태어났다고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기대를 했던 인물로써 각광을 받았으나 결혼 후에 사업 실패의 연속으로 한 번도 경제적으로 풍족한 삶을 살아본 적이 없었고 늘 신세 한탄과 음주와 부부 싸움으로 조용한 날이 별로 없었다고 했다. B씨가 대학 1학년 2학기 때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고향에 계시는 아버지를 만나뵈었을 때는 아버지는 간암 말기로 피골이 상접해서 눈뜨고 볼 수 없었다고 했다. 몇 일 후에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의 이런 모습에서 죽음을 처음 보았다고 했다. 아버지를 존경하고 안타까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무능력한 모습, 빌빌대며, 아무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어슬렁 거리면서 세월을 사신 아버지에 대한 평소에 느꼈던 분노, 적대 감정에 괴로워했다.

 어머니는 외할아버지가 은행원 출신으로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난 딸로서 외할아버지가 은행 지점장을 마지막으로 은퇴해서 지방에서 엄청나게 큰 과수원을 하게 되면서 시골의 B씨의 아버지가 사는 지역 인근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고 결혼이 이루어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 만나게 되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아는 것이 없다고 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자신의 어린 시절의 성장 과정에 대해서 자녀들에게 이야기를 소상하게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의 백화점 사업의 실패로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어머니가 일을 하게 되었고 어머니는 안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생활력이 강했다고 했다. B씨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경제적으로 어렵게 생활을 해 왔으나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는 어머니의 사업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일이 잘 되면서 B씨의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런대로 큰 경제적 어려움이 없이 살아온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B씨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의 사업이 잘 되지 않아서 어려움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B씨가 대학에 입학할 시점에는 어머니의 사업의 완전한 실패로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게 되었고 입학 등록금을 다른 친척이 부담을 했을 정도로 어려웠다고 했다. 그 시기에 B씨가 대학에 입학을 하면서 B씨는 각종 아르바이트로 생활비와 학비를 부담하게 되었다고 대학 시절의 경제적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이후에 어머니는 지금까지 각종 다양한 사업들을 시도했으나 결국은 실패를 거듭하고 B씨가 회사에 입사해서 셀러리 맨으로 모아 저축한 돈들을 사업을 한다고 빌려간 후에 한번도 제대로 돈을 갚아준 적이 없이 약 2억원의 돈을 빌려갔으나 한푼도 돌려 받지 못하고 있다고 어머니에게 분노했다. 어머니는 매번마다 눈물로 호소를 하는 바람에 2천만원, 3천만원, 4천만원 등으로 돈을 빌려가서 봉급 생활로써 푼푼이 모아두었던 돈들이 날아가 버리고 B씨 자신은 정작 10여년간 돈을 저축해 왔으나 지금은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분개 했다. 친구들은 모아서 저축한 돈으로 구입한 아파트와 부동산들이 10억이 넘어가는 사람도 있는데 B씨 자신은 정작 모아둔 돈도 없고 내 세울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고통스러워했다.

 형제로는 2살 아래의 남동생이 있으나 그는 학교 시절부터 부모님의 속을 썩이게 만든 동생으로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 말썽만 피워온 동생으로 몇 번 사업을 한다고 형인 B씨에게 모두 7천여만원을 빌려 갔으나 사업에 성공을 하지 못하고 지금은 서로 연락이 잘 되지 않게 지내고 있다고 했다. 남동생은 중학교 시절에 군에서 운영하는 항공 정비 고교 교장 선생님이 아버지의 대학 때 친한 친구로써 원서만 내면 합격할 수 있도록 손을 써 놓았기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동생에게 응시 원서를 내라고 종용을 받았으나 아버지의 권고를 무시하고 공부는 뒷전으로 불량 청소년들과 어울려 다니다가 아버지에게 호되게 처벌을 받은 것이 기억난다고 했다. 그 당시 항공 정비 학교는 국비로써 그 학교에 들어갔었다면 비행기 정비 기술자로 군에서 장기 복무자로 하사관(부사관)으로 복부하면서 크게 어려움이 없이 정비 기술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B씨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에게 한번도 체벌을 당한적이 없었고 부모님의 기대를 많이 받고 자랐다고 했다.

제 4회 치료 회기: 치료자는 B씨에게 증세와 어린 시절의 경험을 더 구체적으로 연결시켜 탐색을 해 보기로 하고 B씨에게 어린 시절의 상처나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소상하게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B씨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별로 없었다. 유치원 때는 거의 기억이 없었다. 유치원 때 찍었던 사진이나 생일 파티 기억들, 친한 친구의 기억, 유치원 모습, 유치원 선생님들의 기억이 있는지 또 유치원 때 재롱 잔치 등의 기억이나 사진들이 있는지 물어 보았으나 그러한 기억은 전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잦은 이사로 유치원 때 찍은 사진들로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유치원 시절의 기억은 완전이 빈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 이것은 유치원 시절에 고통스러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통스러운 기억은 억압해서 무의식으로 억압해 버린 것을 알 수 있었다. 이후에 기억에서 초등학교 2학년 때 쯤에 담임 선생님에게 정확하게 어떤 쌍욕인지는 기억이 아니 않으나 쌍욕(개 새끼, 씨발년과 같은 심한 욕설)을 한 것 때문에 이후에 동료들과 학교 선생님들에게 소문이 났을까봐서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수년간을 교무실을 쳐다볼 수 없었고 동료들에게 부끄러움과 수치심으로 살았던 고통스런 기억을 떠 올렸다. 그는 그 시절을 회상하면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쉬는 시간에 책상 위에 업드려서 자고 있었는데 그 때 누가 자신의 머리를 때리는 바람에 "씨발놈" 혹은 "씨발"이라는 욕설을 하면서 머리를 처들었을 때 담임 선생님이 자신을 쳐다보고 황당해 하는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추측을 했다. 그 희미한 기억이 정확한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B씨의 성격상 선생님에게 쌍욕을 할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자신도 모르게 친구가 자신을 괴롭히는 것으로 오인하고 욕을 하고 보니 선생님이어서 어쩔 줄을 몰라 했고 그 때 부끄러움과 수치심 때문에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5년 동안 그리고 그 이후에 중, 고등학교 시절에까지 그 상처가 따라다녔고 지금까지 머리 속에 남아서 괴롭히고 있다고 했다. 이후에 초등학교 5학년 시점에서 그가 동료를 공부를 못한다고 놀리고 괴롭히던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 날 가족들이 이사를 간다고 해서 간 그 집이 그가 놀리고 괴롭히던 그 친구의 집에 세를 들어서 그 친구 집에 들어가게 된 자신을 보고 너무나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B씨는 초등학교 시절에는 공부는 그런대로 잘했다고 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친구들과 갈등이 많았던 것 같고 싸움이 잦았던 것 같다고 했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어머니가 사업이 잘 되어서 경제적으로 좀 나아졌고 학교에서 공부를 잘 해서 반에서 1등-2등을 하고 그리고 반장과 부반장을 해서 동료들에게 인기도 있었다고 했다. 크게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몇가지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학급 동료들을 지도하면서 중학교 1학년 때는 한 동료와 싸움이 터져서 B씨가 그 친구를 두들겨 패서 얼굴이 만신창이가 되어 그 동료의 어머니가 학교에 찾아와서 B 씨를 퇴학 시키겠다고 하는 것을 담임 선생님이 극구 말리고 달래서 무마되었던 기억이 있고 또 중학교 3학년 쯤에 한 동료와 갈등으로 그 급우를 걸상으로 내리 찍으려고 할 때 옆에 동료들이 말리는 바람에 큰 사건으로 터지지는 않았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이 두 개의 사건에서 한번도 부모님에게 그 사건을 이야기한 적이 없다고 했다. 즉 B씨 자신의 고통을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한 적이 없고 자신의 괴로움과 갈등을 마음 속에 억압해 온 것이 밝혀졌다. 이후에 대학 1학년 2학기 때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사업 실패 때문에 그리고 경제적으로 심한 어려움이 겹치면서 그는 대학 1학년 2학기 때가 가장 어려운 시점으로 그 때 6개월간 심한 우울증과 공황 장애를 앓았던 기억을 이야기했다. 1학년을 마치고 휴학계를 내고 군에 입대해서 3년 간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2학년으로 복학을 해서 졸업을 할 때까지 다양한 아르바이트와 학업에 전념하게 되었다고 했다. 군에서 복학한 이후에는 1학년 때 몰두했던 이념 써클이나 학생 운동에는 손을 때고 공부에 올인했고 졸업과 동시에 세계적으로 이름난 외국인 회사에 입사를 했다고 했다. 그는 초, 중,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시절 즉 초등학교 시절과 대학 1학년 시절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었고 초등학교 시절에는 동료들과 갈등으로 그리고 대학 1학년 시절에는 자신의 증세의 등장과 우울증, 공황 장애로 가장 어려움이 많았던 것 같다고 회상을 했다. 자신의 어려움이 경제적인 것과 연결되었음을 시사한 것이었다.

 

제 5회 치료 회기: 치료자는 B씨에게 어린 시절의 가족들과 상호관계와 가족 구성원들과 의사 소통 즉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탐색을 하기로 했다. B씨가 어떻게 해서 아버지와 어머니와 동생과의 어린 시절의 관계가 대인관계로 연결되었는지를 탐색해 보기로 했다. B씨의 아버지는 그가 암으로 죽을 때까지 어머니와 늘 티격태격으로 싸움이 잦았다고 했다. 초등학교 6학년 쯤에 한번은 어머니가 B씨를 불러서 아버지를 데리려 가자고 해서 따라 갔었더니 아버지가 어떤 술집 홀에서 종업원들을 때려서 소동을 일으키고 있었다고 했다. 그 이후에 자주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B씨와 동생을 돌보아줄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어머니는 직접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고 B씨는 지금도 그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목에 집의 열쇠를 걸고 다녔던 기억을 회상했다. 어머니는 6살 때 6.25사변으로 가족들이 방공호에 숨어 있다고 조용해지자 밖으로 나갔다고 폭격으로 사망했고 이후에 그녀의 아버지(외할아버지)의 재혼으로 양모 밑에서 자랐다고 했다. 여기에서 어머니가 자신의 감정 표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양모는 어머니에게 잘해주어서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어머니가 말해주었다고 했다. 그러나 양모 밑에서 자란 자녀들은 자신의 욕구 표현과 감정 표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여러 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이것을 지적해주고 있다.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지 못했고 그 결과는 B씨의 어린 시절에 어머니와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하거나 B 씨 자신의 감정을 솔찍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분노와 적대 감정을 마음 속에 쌓아두었과 유치원 시절의 엄마와 관계의 기억이 거의 없다는 것 등이 B씨의 감정의 표현의 어려움의 원인이 된 것임을 밝혀낼 수 있었다. 아버지 역시 감정을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사람으로 동업 친구와 갈등에서 폭력으로 감옥을 6개월 갔었고 술집에서 종업원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어머니에게 폭력을 사용한 점 등이 이것을 증명해주었다. 어머니는 B씨에게 여러 번씩 몇 천만원을 빌려가면서도 빌려갈 때마다 자기 합리화로 "내가 혼자서 잘먹고 잘 살려고 했느냐? 내가 말못한 것이 뭐가 있느냐 나도 잘살아 볼려고 하다가 실패한 것이 아니냐?"라고 자기 변명으로 일관되게 이야기하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석해 낼 수 있었다. 이러한 어머니의 행동에 대해서 B 씨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면서 쌍욕을 했다고 했다. 즉 씨발년아! 개년! 등으로 분노를 언어 폭력으로 사용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죄의식으로 자신을 처벌한다고 했다. 어머니에게 불효 자식으로 괴로워하면서도 어머니가 요구하는 돈을 보내 달라는 요구를 거부할 수 없다고 했다. 즉 어머니에게 분노와 적개심을 말로써 표현하지 못하고 행동으로 언어 폭력으로 사용해서 화풀이를 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 죄의식으로 어머니에게 거부를 하지 못하고 돈을 빌려주었고 이것이 되풀이 되면서 지금까지 약 2억원의 돈이 어머니 사업 자금으로 날라갔다고 했다. 동생의 행동을 보면 동생 역시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생은 부모님에게 분노를 말로써 표현한 것이 아니고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반대로 함으로써 부모님을 처벌했다. 공부는 하지 않고 불량 청소년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 반장 부반장으로 동료들에게도 인기가 있었으나 그는 한번도 친구들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온 적이 없었다고 했다. 자신의 사는 모습을 동료들에게 숨기고 경제적 어려움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중학교 때 우연히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었다가 그 돈을 받지 못하게 되자 그 돈 대신에 다방을 물러 받아서 사업을 해서 제법 다방이 잘 되어서 몇 개의 다방을 함께 운영을 했으나 이후에 그 사업의 실패로 고통을 받게 된 때가 B씨의 대학 1학년 시절이었다고 했다. B씨는 중, 고등학교 시절에 어머니가 다방을 경영한다는 말을 친구들에게 부끄럽게 생각해서 한반도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학교의 환경 조사서에도 어머니가 사업을 한다고 적었지만 다방업을 한다고 적지 않았다고 했다. 다방은 유흥업소로써 다방 마담이나 다방 여종업 원들의 품행 때문에 자랑스러운 직업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또 아버지께서도 어머니가 다방을 운영하는 것 때문에 남자들과의 관계를 의심하고 그 문제로 자주 다투었다는 고통스러운 경험들을 이야기했다.

 

제 6회 치료 회기: B씨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감정을 말로써 표현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계속 분석에서 밝혀졌다. 그는 결혼을 한지 1년이 되었고 부인은 프랑스에서 10년동안 유학을 한 여성으로 이후에 한국에서 프랑스 계통의 사업을 하는 프랑스인 사장의 여비서로 근무하다가 결혼으로 물러나서 지금은 출산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부인과 결혼을 하기 전에 약 7년 동안 사귀던 여성이 있었고 그 여성은 7년 동안 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해서 공부를 했던 여성으로 B씨가 학원 비용이나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고 임용 고시에 합격을 해서 지금은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와 결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유는 서로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 서로 흥미가 사라져서 B씨가 그녀를 보내주기로 했다고 했다. 여기에서 B씨는 7년 동안 사귀던 결혼을 약속한 여성이나 결혼을 한 지금의 부인에게 한번도 자신이 치료자에게 이야기를 한 이러한 자신의 고통과 수친심, 모욕감에 대해서는 일체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지금까지 어떤 친구들에게나 가족들에게도 자신의 고통스러운 감정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에게 쌍욕을 한 사건은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고 대학 1학년 때 수행 공포증과 우울증, 공황 장애 등을 어느 누구에게도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고 실토를 했다. 한번은 7년 동안 사귀던 여자 친구가 어느 날 "지금까지 오빠를 사귀어 오면서도 오빠가 어떤 사람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하소연을 하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치료자는 B씨의 수행 공포증의 증세를 세밀하게 분석해 보기로 했다. B씨에게 수행 공포증의 증세의 과정을 빠짐없이 소상하게 재연해 보라고 요구를 했다. B씨는 어떤 것을 발표를 할 때가 되면 마음 속에서 "예측 불안" 혹은 "예견 불안"이 온다고 했다.

 그는 정신 의학에 서적들을 많이 읽어서 대부분의 정신의학이나 정신분석의 전문 용어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지식으로 이해를 하면 자신의 문제들이 해결되어질 것으로 믿었다고 했다. 수행 공포증이 어떤 것인지 어떤 특징들이 있는지를 알 게 되었으나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했다. 즉 정신분석적인 전문 용어로써 지식화의 방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지식으로 많이 알면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어질 것으로 생각해서 이론적 무장을 해 보았으나 결국은 문제를 덮어 버리는 것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론적 무장을 하느라고 치료의 시기가 그 만큼 늦어지고 그 고통이 점점 커지게 되어 할 수 없이 치료자를 마지막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지식화 방어는 자신의 불안을 일시적으로 감소 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정신분석에서는 방어로 보고 있다. 이 방어를 사용할 때는 지식으로 무장하면 그 문제가 풀릴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마음 속의 고통을 줄어든다. 그러나 실제로는 일시적으로 고통을 피하기 위한 다른 방어기재들과 똑 같다는 것을 본인은 모르고 있다. 고로 치료의 시기가 지연되고 고통은 연장이 되는 것이다.

 예견 불안이 오면 이미 마음 속에서 자신의 문제가 예상이 되고 피할 수 없다는 듯이 목에 힘이 들어가고 "음" "에" 으으"라는 말들이 나오면서 말을 하면서 드듬거리고 목소리가 부자연스럽고 껄끄러워지고 손에 땀이 나고 호흠이 가파지고 가슴이 조여오고 심하면 머리에 현기증이 느껴진다고 했다. 입사 6년 쯤에 130여명의 회사원과 간부들 앞에서 발표를 할 때 그 때는 많은 준비와 연구를 해서 사전에 연습을 많이 했는데도 불구하고 머리 속이 하얂게 되면서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을 기억을 했다. 최근에 년초 엄무 보고에서도 15페이지 정도의 유인물을 스라이드로 보여주면서 달걀형 타원형 테이블에 앉아서 발표를 하는데도 머리 속이 하앟게 되지는 않았으나 말을 하면서 "음음" "에" 으어" 등으로 말을 더벅거리고 초등학교 시절에 글을 잘 읽을 줄 모르는 어린이처럼 목소리가 떨리고 발음이 유창하지 못해서 동료들이나 자신이 실망을 한다고 했다. 그는 이것을 마음 속에 만들어진 고정된 프로그램이 작동을 해서 아무리 그가 그것을 수정하려고 해도 그대로 작동이 되는 컴퓨터와 같다고 하소연을 했다. 이것 때문에 대학 시절에는 웅변학원이나 말더듬이 학원에도 다녀 보았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여기에서 B씨는 과거의 수치심, 모욕감으로 얼룩진 고통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되씹는다고 털어 놓았다. 치료자에게 결정적인 단서가 포착되었던 순간이었다. 그는 자동차를 몰고 가면서 옛날의 그 고통스러운 기억을 회상하면서 "그것도 못하는 바보가 어디있어!"라고 큰 소리를 치면서 자신도 모르게 자동차의 커락숀을 빵빵 울리다가 옆 자동차의 운전자가 깜짝 놀래서 자신을 처다보도 욕을 하는 수모를 여러번 겪었고, 길거리를 걸어가다가 "초등학교 학생들도 다 하는 말들을 하지 못하는 바보야! 이 거지 같은 놈아!"라고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가 튀어나와서 옆에 걸어가던 사람이 그에게 욕을 하는 것으로 오인해서 항의로 비시를 걸어와서 극구 변명을 하면서 무마했던 기억들도 이야기를 했다.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그 담인인 여선생님에에게 한 쌍욕에 대한 수치심과 그리고 대학 1학년 때 노래패 써클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망신을 당한 그 상처와 그리고 6년 전에 회사의 전 사원들 앞에서 당한 부끄러움, 수치심과 3 개월 전에 지점장 승진 시험에서 말을 더듬거리고 버벅거리든 그 상처, 그리고 최근에 동료들과 장난으로 내가 골프를 치면서 손에 땀이 나고 가슴이 조여오던 그 부끄러움 그리고 최근에 연초 업무 보고 때 더듬거리고 말 소리가 부자연스러웠던 그 일등 등을 하루에도 여러번 되풀이 반추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어린 시절부터 있었던 그 수치심의 이벤트들을 하루에도 수 십번씩 깨씹고 반추하면서 자신의 자아를 처벌하고 있다는 B씨의 사고 과정 즉 정신분석적인 말로 그의 자아의 사고 하는 인지 구조가 밝혀지게 되었다. 만약에 이 문제를 그대로 방치를 하면 계속해서 앞으로 유사한 문제들이 늘어나서 계속 쌓이게 되고 그러한 상처와 자아 처벌은 누적되어져 산더미처럼 많아져서 앞으로는 더욱더 자아 처벌이 늘어나고 삶은 고통스러워질 것임을 지적하자 그것 때문에 더 이상 그 문제를 방치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제는 더 이상 그 문제를 무시하고 지나갈 수 없는 단계 즉 한계점에 왔다는 것을 그가 판단했다고 했다.

 B씨는 지난 주일에 부인이 딸을 순산했다고 기쁜 소식을 전하면서 그 딸을 보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의 회상했다고 했다. 치료자가 그 딸을 보면서 만약에 B씨의 감정 표현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고그대로 남아 있다면 딸에게 그 문제가 대물림이 될지 모른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으냐고 물었을 때 그는 그것이 걱정이 된다고 했다. B씨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바로 어머니와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문제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정신적인 문제는 그것이 본인도 모르게 자녀들에게 대물림이 된다는 것이 아닌가!라는 지적에 B씨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문제 해결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는 자신의 고통 즉 모요감, 수치심을 절대로 다른 사람이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고 또 다른 사람이 그 감정을 알게되면 큰일 날 것이라고 마음 속에 꼭꼭 숨겨서 비밀로 지켜왔다고 했다. 그러면 B씨의 누적된 감정적인 홍수는 대학 1학년 때 증세로써 터져 나왔으나 그 이후에도 역시 꼭꼭 숨겨서 마음 속에 억압해서 지금까지 어떻게 해서 마음 속에서 참고 견디어 낼 수 있었는지가 궁금했다. 여기에서 치료자는 또 한가지의 B씨의 습관적 행동을 분석해 낼 수 있었다. 그는 작년에 결혼 한 이후에도 1주일에 3회-4회 정도는 소주 반병 정도로 술을 혼자서 마신다고 했다. 그는 혼자서 마시는 것 이외에도 고등학교 때 친구나 대학 친구들을 만나서 한 달에 2회 3회 정도로 동료들과 같이 술을 많이 마시는 편이라고 했다. B씨의 아버지는 직장을 잃고 무의 도식하면서 술을 비교적 많이 먹었던 편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사망 원인은 간암 이었다는 것을 알고 치료자가 술과 간암 과의 관계를 연결 시킬려고 했으나 그는 아버지는 평소에 간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간염이 간암으로 간으로 술과 연결을 피하려고 했다. 치료자는 B씨의 술을 마시는 습관이 언제부터 인지 탐색을 해 보았을 때 그가 입사 후 지금까지 2년-3년전까지만 해도 술을 하루에 빠짐없이 그의 소주 반병 정도를 마셔왔다고 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사업 자금으로 자신의 봉급의 저축을 밑도 끝도 없이 뜯기면서 분노해서 우울증으로 심하게 고생을 해 왔으며 어머니에 대한 분노, 적대감정 때문에 자살을 해 버릴까 생각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이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그가 술을 많이 마셨다는 것이 연결 되면서 자신의 내면에 쌓이 고통스러운 감정을 술로써 완화 시켜온 것임을 지적했을 때 스스로 인정을 했다. 술은 불쾌한 감정을 완화시키고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에 지적에 스스로 동의를 했다.

 또 한가지 B씨의 사고 과정에서 밝혀진 것은 B씨가 어떤 고통스러운 일에 직면하거나 자손심을 상하는 일에 직면하게 되면 그는 그 자아에게 스스로 "사법고시 수석합격!"이라고 마음 속에서 외친다는 것이었다. 사법 고시 수석합격 할 것이다 이냐? 혹은 사법 고시 수삭합격을 했다는 것이냐? 어느 쪽이냐고 질문을 했을 때 그는 그냥 "사법 고시 수석 합격!"이라고 해서 그 말 뿐이라고 했다. 치료자는 "사법고시 수석 합격을 했다!"고 말을 하면 그것은 자아가 거짓 말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아 수치심에 더 클 것이라고 지적을 했다. 만약에 아직 사법고시를 공부를 한 적도 없고 공부를 할 예정이 아니기 때문에 "사법 고시 수석 합력을 할 것이다"라고 하면 아직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같이 보이지만 역시 공부를 한 적도 없고 시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짓말이 됨으로 자아에 처벌, 양심에 처벌을 받게 된다는 지적에 대해서 그는 "사법 고시 수석 합격!"이라는 말만 한다고 했다. 자아가 얼마나 교모하게 이러한 약점을 피하고 있는지을 분석하면서 무의식적인 면의 지혜에 감탄을 했다. 여기에서 B씨는 자신의 자손심을 들어 올리는 방어기재를 사용해서 자신의 감정적 불쾌감을 피하고 있다는 것을 분석해 낼 수 있었다. 즉 라이벌의 상대에게 혹은 감정적으로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자신의 자아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어서 자신감을 들어 올리고 있는 것이다. 즉 라이벌에게 "나는 사법 고시 수석합격을 한 사람이다, 당신과는 다른 사람이다. 당신과 같은 사람은 내 적수가 아니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다"라는 무의식적인 자아 칭찬으로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치료자는 B씨에게 사법 고시를 꿈꾼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대학 입학 시에 법대를 가려고 했으나 성적이 미치지 못해서 경영학과에 갔다고 했다. 사법 고시를 하려고 시도를 해 보지는 않았지만 언제부터 인지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말들을 자신의 자아에게 하고 있다고 의하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수집된 자료들을 바탕으로 문제의 원인을 분석

 B씨는 한번도 자신의 수치심과 모욕감에 해당되는 고통들을 말로써 다른 사람에게 표현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즉 그는 부모님에게도 7년 동안 사귀오던 여자 친구에게도 그리고 지금의 부인에게도 자신의 수치심과 모욕감의 상처에 관련된 이벤트 들에 대해서 한번도 이야기를 해보지 않았다. 그는 이러한 치료자의 지적에 대해서 맞장구를 쳤다. 그는 1년 전에 부인과 결혼을 한 이후에 자신의 책꽂이 꽂혀 있는 정신 의학 서적들의 표지들을 부인이 보지 못하게 책을 거꾸로 꽂아 그 책들의 제목들이 눈에 보이지 않게 반대로 꽂아 놓았다고 했다. 부인이 자신의 문제점을 알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에게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씨발놈, 깨새끼" 등의 심한 욕설을 한 것에 대해서 깜짝 놀라서 그것을 기억 속에서 지우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 욕설은 그의 머리를 때린 사람이 학급 동료인 것으로 오인해서 그렇게 욕을 하게 되었고 정작 선생님에게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 선생님이나 동료들에게 말로써 해명을 하지 못하고 그 부끄러움을 평생도록 십자가로 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즉 그는 그의 그러한 해명을 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것은 부모님과의 커뮤니케이션의 스타일을 보면 알 수 있다. 부모님에게 자신의 감정을 소상하게 말로써 표현을 한 적이 없었다. 부모님 역시 그들의 감정을 말로써 표현한 것이 아니고 행동으로 표현을 한 것임이 이것을 증명해준다. 고로 이후에 자라면서 B 씨는 자신의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는 것에 결함을 가지게 되었고 자신의 고통, 수치심, 모욕감 등을 말로써 표현하지 못하는 즉 한마디로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지 못하는 장애"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 장애는 성격장애의 핵심으로 떠 올라서 최근에 미국에서 이 장애를 alexythymia라고 부른다. 라틴어로 A는 없다. 못한다는 뜻이고 lexy는 언어, 말이는 뜻이고 thymia라는 말은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병 이라는 그리스 말의 복합어로 탄생되었다.

 B씨의 마음 속의 자아는 어린 시절 즉 유아기 때부터 엄마가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지 못하는 결함 때문에 그리고 아버지의 감정 표현 결함 때문에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는 자아는 제대로 자라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고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것을 정신분석적인 용어로써는 "고착"이라고 부른다. 어떤 욕구들이 제대로 자라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성장을 멈추어 버린 것으로 이것을 성장이 중지되거나 성장의 지연으로 부른다. 우리가 성인 어른들 한데서 다른 부분들은 정상적인 어른의 모습인데 어떤 특이한 점이 유아적이어서 우리는 그러한 사람들을 보고 "당신의 xx 는 어린 아이처럼 미성숙하다"라는 말을 한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변태성욕자들의 변태성욕 행동들은 모두가 어른들이 하고 있는 어린 유아들의 행동이 아닌가! 다른 사람의 섹스 행위를 보려고 남의 집을 침범하는 행동인 관음증이나 자신의 성기를 다른 사람에게 내 보이면서 오르가즘을 느끼는 노출증 이나 자신의 성기나 엉덩이를 채찍으로 때리게 상대에게 요구를 하면서 오르가즘을 느끼는 마소키즘적 섹스 행동들을 보면 어린아이 같은 유치한 행동 들이 아닌가! 변태 성욕에 대해서 더욱 알고 싶은 사람은 다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이러한 행동들은 상처를 받았던 그 당시에 욕구들이 그 자리에서 성장을 멈추어 버린 것으로 이것을 정신분석에서는 "고착"으로 부른다. 고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분은 다음의 홈페지에 들어가 보세요.  

 B씨가 처음으로 상처를 받았던 초등학교 2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이에게 한 욕설(씨발년 혹은 개쌔기)과 B씨가 증세로써 처음 등장한 대학 1학년 때 소래 써클에서 소리를 부르다가 모욕을 당한 것 들은 모두가 감정을 표현하는 것과 관련되어있지 않는가! 노래를 부르는 것이 바로 감정을 말과 리듬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닌가! B 씨는 이후에 이것이 확대 증폭 되면서 이것이 인지 구조로 습관화가 된 것이었다. 여기에다 그는 과거의 상처들을 되씹어 자아 처벌을 하고 있는 것을 하루에도 여러번씩 되풀이 해서 반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B씨는 자신의 감정 처리에 고착이 되어서 어린 시절부터 고통스런 감정을 마음 속에 억압해 온 것으로 이러한 불쾌감, 부정적인 감정이 누적이 되어 마음 속에서 갇혀 있어서 이 고통스러운 부정적 감정들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서 한계점에 다가가면서 한쪽이 터진 것이 대학 1학년 때의 최초의 증세의 등장으로 나타난 것임을 B씨에게 인식을 시켰다. 그는 한번도 고통스러운 감정을 부모나 부인이나 7년 동안 사귀어왔던 여자 친구에게 말로써 표현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 이것을 증명해준다. 결국 B씨의 수행 공포증은 여러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는 것에 결함이 표면으로 나온 것이며 내면에는 불쾌감, 부정적 감정들이 저수지처럼 고여 있어서 누적된 감정에 두려움, 공포를 느끼고 있고 이들 감정들이 터져나올까봐서 전전 긍긍하고 있는 것이 증세로써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수행 공포증은 불안증, 불안장애 안에 들어가는 것으로 불안증이라는 장애 그 자체가 내면 마음 속에서 자아가 감정을 통제하기 못해서 생기는 두려움과 공포가 아닌가!

 치료자는 여기에서 B씨의 어린 시절에 제대로 성장을 하지 못하고 웅크리고 무의식속에서 고통스럽게 신음을 하고 있는 감정을 말로 표현을 하지 못하는 자아를 성장을 시켜서 어른의 자아와 통합을 하는 것임을 설명을 했을 때 B씨는 "선생님의 말이 100% 맞다는 것을 확신합니다."라고 무릎을 쳤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는 B씨의 질문에 치료자는 어린 시절의 상처 기억들을 전무 끄집어 내어서 다시 재연해서 그 때 표현하지 못하고 막혀 있는 감정 표현 자아를 다시 되살리기 위해서 감정을 새로 표현하는 것을 치료자 한데서 배우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 과정이 될 것입을 지적을 했다.

 그는 동료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말로써 표현을 해 본 기억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표현을 할 수가 없다. 그는 치료자의 이러한 지적에 대해서 맞장구를 치면서 자신은 자신의 자아에게 "그것도 못하느냐 이 바보야, 그것은 유치원 아이들도 다 하는 것이야!"라고 질책을 하면서도 그것을 정작 실현을 하려고 하면 입에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경험이 많이 있다고 했다. 즉 그는 한번도 입 밖에서 감정을 말로써 표현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직접 표현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행을 해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시행, 수행 공포증이 아닌가!

 B씨에게 치료자는 B씨의 증세인 여러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할 때 손에 땀이 나고 말이 더듬거리고 가슴이 꽉 조이고 호흡이 막히면서 말을 자연스럽게 나오지 못하는 공연, 혹은 수행 공포증은 그 행동 자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고 어린 시절에 고착된 감정의 표현이 성숙해지면 그 문제가 저절로 해결이 되이질 것임을 확인 시키면서 앞으로 치료의 결과를 지켜 보기로 하고 다음 치료 회기부터는 어린 시절의 감정 표현에 치료의 초점이 맞추어질 것임을 예고 했다.

 B씨의 6개월 치료 과정에서 그 동안에 드러나지 않은 더욱 세부적인 많은 것들이 분석되어졌다. B씨는 6개월의 치료 과정을 끝내고 다시 6개월의 치료를 재 계약을 한 후에 7개월 째 치료를 계속하고 있다. B씨의 첫 2개월 이후의 치료 과정을 상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