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20대 초반의 대학 1 학년 휴학 여대생 B양

증세: 중학교 시절부터 대인관계에 어려움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대인공포증, 그리고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심장이 콩쾅거리는 공포증을 가지고 있음

접촉: 인터넷에서 치료자의 홈 페이지를 접한 후에 1년 전에 두 시간 인터뷰 상담을 받았다. 그 후에 그녀는 대학을 휴학하고 6개월 동안 아르바이트로 옷 가계에서 그리고 2개월 동안 음식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한 후에 치료 비용을 모아서 치료를 받으러 왔음

진단: 대인공포증, 심장이 뛰는 공포증

치료 기간: 1회기에 2시간으로 6개월간의 치료 계약을 맺고 지금 현재 6시간 째 치료를 받고 있음. 그녀는 3회 치료 회기 이후에 치료자에게 지금은 일을 하지 않고 집에서 쉬고 있기 때문에 1주일에 2회의 치료 회기를 요청해서 화요일과 금요일에 두 차례 치료 회기를 가지기로 했음

치료 결과: 아래의 치료 회기는 그녀가 제 3 회 치료에서 총 6시간 째 치료를 받은 이후에 그녀의 문제점들을 요약한 것임

 

치료의 과정

 B양은 심한 대인공포증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1년 전에 치료자에게 2시간 동안 인터뷰 상담을 가졌다. 그 이후에 1년이 지난 후에 2개월 전에 B양은 치료자에게 전화로써 치료를 받고 싶은데 치료 비용이 약 xxx만원 정도 모자라니 치료를 받아줄 수 없겠느냐고 간곡해서 애원을 하는 사람에 그녀의 치료를 받겠다는 간곡한 소망에 치료자가 허락을 해 주었으나 몇 분 후에 그녀의 오빠가 전화로써 동생의 치료를 부탁하면서 치료 비용이 xxx 원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에 치료자가 B양이 처음에 하는 비용과 오빠가 하는 치료 비용에 약 xx만원의 차이가 나는 것을 이야기를 하자 오빠는 즉각 부인을 했고 이후에 B양이 다시 전화로 처음에 치료자에게 치료 비용에서 오빠가 이야기한 xx만원의 차이가 나는 비용을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 치료자는 오빠와 함께 사는 B양이 한달치 생활 비용으로 남기고 나머지를 부족한 치료 비용으로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치료를 거부를 했다. 2개월 이후에 그녀는 다시 치료 비용 전액을 모아서 다시 치료를 받으러 오게 된 것이었다. 그녀는 치료자와 이야기를 하면서 작년 9월 달에 치료자에게 2시간 인터뷰 상담을 한 후에 대학 1학년을 휴학을 하고 옷 가계에서 6개월 동안 일을 해서 치료 비용을 모았으나 xxx 만원이 부족하지만 치료자에게 치료를 요청을 했고 치료자가 처음에 B양이 이야기를 한 내용과 오빠의 전화 후에 B양이 이야기를 한 내용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치료를 거부하자 그녀는 식당에서 야간 일로 2개월을 아르바이트를 해서 치료 비용 전액을 모아서 치료자를 받으러 오게 된 것을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그녀의 문제인 대인공포증을 잘 알고 있었다. 치료자와 2시간 인터뷰 상담을 받은 후에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을 것을 굳게 결심을 하고 꼭 그녀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였다. 그녀의 대인공포증의 역사를 먼저 살펴 보고자 한다.

 B양의 대인공포증의 역사: B양은 대인공포증으로 너무나 오랫동안 심리적인 고통을 받아온 학생으로 그녀의 대인공포증은 중학교 시절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였다. 중학교 시절에 그녀는 고모가 뉴질랜드로 딸을 유학을 보내기 위해서 딸과 함께 이민을 간 후에 고모의 권유로 아버지가 B양에게 뉴질랜드 유학을 권유하는 바람에 3년간 뉴질랜드에서 유학을 갔다. 그곳에는 상당히 많은 한국 유학생들이 있었고 고모는 그곳에서 유학생들을 상대로 하숙을 하고 있었는데 B양은 고모 집에서 5명의 유학생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고모 딸이 다니는 학교는 사립으로 학비가 비싸서 그녀는 인근에 있는 공립학교에 전학을 여러 차례 다니면서 동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만들지 못했다고 했다. 3년 동안 유학으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모와 고모의 딸이 귀국을 하자 그녀는 다시 한국으로 되돌아 와서 고등학교에 무시험으로 들어갔다. 그 고등학교는 평준화가 되지 않는 학교로써 우수한 학생들이 대거 몰려 있는 고등학교였다. 그녀는 아버지가 그곳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과 친분이 있어서 그녀가 무시험으로 그 우수한 고등학교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고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녀는 우연히 아버지가 운영하는 슈퍼마켓(식료품을 제외한 슈퍼마켓)에 물건을 사기 위해서 들렸던 담임 선생님이 아버지에게 xxx양은 수줍어 하고 친구 관계가 잘 되지 않는다는 말을 하게 되었고 아버지는 딸에게 말을 하지 않고 행동으로 불평을 하게 되었고 아버지의 그러한 행동에 B양은 주죽이 들 게 되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1 층에서 슈퍼마켓을 하고 2 층에는 가족들이 거주는 곳으로 아버지가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실 때 아버지의 불평 불만을 행동으로 2층 계단을 쿵쾅거리면서 내려오는 바람에 그녀는 아버지가 그녀에게 불만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수용하게 되었고 그 시점에서부터 B양은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고 털어 놓았다. 그녀는 그 이후부터 잠을 들기 전에 항상 심장이 뛰고 가슴이 조여주는 공포증을 느끼게된 것으로 보였다.

 B양의 성적은 영어는 상위권이었으나 수학 성적을 좋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부터 그녀는 특별히 오빠의 친구로부터 수학 개인 교수를 받았다. 6살 위인 오빠와 어린 시절부터 친밀한 관계는 없었다고 했다. 그녀는 개인교수와 3년 동안 뉴질랜드 유학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고등학교 성적이 뛰어나지 못하자 아버지의 실망으로 연결되어 아버지의 심리적인 구박과 처벌을 몸으로 느끼면서 고통을 받았다고 그녀의 마음의 고통을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는 말이 없는 사람으로 어린 시절부터 가족과의 대화가 거의 없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항상 자녀에 대한 불만족을 행동으로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쿵쾅거리면서 계단을 오르 내리거나 하는 행동으로 자녀들에게 불만족을 표현해온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그러한 위협과 처벌적인 행동으로 B양은 어린 시절부터 가슴 속에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쩔줄 몰라서 그녀 자신을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그녀는 치료자와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늘 눈물을 훔쳤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너무나 많은 심리적 고통으로 그녀는 항상 그녀의 마음 속에 분노가 쌓여있어서 가슴을 졸이면서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녀의 말은 느리고 말을 하는데 너무 조심스러워 보였다.

 그녀는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을 하지 못하고 먼 곳에 있는 지방 대학에서 1학년을 다니다가 대학 생활에 적응을 하는데 실패하고 작년 9월 달에 치료자와 2시간 인터뷰 상담을 한 후에 학교로 복귀에서 3일 후에 대학에 휴학을 신청을 했고 서울로 올라와서 오빠가 거주하고 집에서 함께 지내고 있으면서 치료 비용을 모으기 위해서 6개월간 백화점 옷 가계에서 일을 했으나 치료 비용이 부족하게 되자 2개월간 음식점에서 야간에 일을 하게 되었고 치료 비용을 모아서 치료를 받으러 오게 되었다고 했다.

현재의 문제점: B양은 24시간 문을 여는 음식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게 되면서 밤과 낮이 바뀌었다고 고통스러워했다. 저녁 10시 경에 일을 시작해서 아침 5시까지 음식점에서 일을 하면서 주간과 야간이 바뀌어 버렸고 지금은 밤에 밤을 자면 잠이 오지 않아서 고통스럽다고 했다. 잠을 자기 위해서 침대에 누워있으면 가슴이 쿵쾅거리는 옛날의 고통이 재연되어 잠이 오지 않아서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으로 오는 그 전날에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고 눈물을 지었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 고객들과의 관계는 어려움이 없었으나 항상 같이 일을 하는 동료들과의 관계는 시간이 점점 지나갈수록 어려워진다고 했다. 그녀는 친밀관계를 만들어 나가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친밀관계를 만들어가는가? 가 그녀의 근본 문제라고 그녀 자신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다. 현재의 또 다른 문제점을 치료자가 질문을 했을 때 그녀는 오빠가 내년에 대학에 편입을 하게 되면 기숙사로 들어갈 예정인데 B양을 고향에 있는 부모님 집으로 귀환하라고 종용을 하고 있다고 했다. 오빠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휴학 후에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을 준비 중에 있으나 오빠는 자신의 전공과 대학을 바꾸기로 하고 지금은 그가 원하는 대학에 편입을 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했다. 왜 오빠가 B 양을 부모님이 계시는 집으로 복귀 하라고 하느냐?라는 치료자의 질문에 그녀는 오빠가 대학 기숙사로 들어가게 되면 여동생이 오빠의 보호막을 벗어나기 때문에 동생의 위험과 안전 때문일 것이라고 대답을 했다. B양이 심리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을 때 오빠는 부모님이 계시는 집에서 거주를 하면서 이곳 치료자가 있는 서울까지 치료를 받으라고 하는 말에 대경실색을 했다고 털어 놓았다. 부모님이 계시는 곳은 멀리 강원도로 이곳 서울까지 오고가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데 어떻게 그곳에서 이곳까지 치료를 받으러고 왕복을 하느냐 하는 것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 같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녀는 몇 치료 회기 이후에 치료자와 만남에서 한동안 말로 표현을 하지 못했다. 그녀이 이후에 마음을 진정시켜서 치료자에게 털어 놓은 것은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 감정을 감추기 위해서 참는다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녀는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틀킬까봐 두려워서 감정을 숨긴다고 했다.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는 것은 모욕적이고 고통스럽다고 했다.

 그녀의 감정을 억압하고 숨기려는 시도와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와의 감정 표현과 연결되어져 있었다. 그녀는 치료자와 함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그녀 자신의 마음을 열고 그녀 자신의 내면의 고통스런 감정을 표현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아버지든지 어머니든지 간에 같이 앉아서 그녀 자신의 감정을 털어 놓는 적이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늘 감정을 말로써 잘 표현을 하지 못하고 행동으로 표현을 한다고 했다. 화나가 나면 고함을 지르거나 물건을 집어 던지는 경향이 있고 아버지 자신의 감정을 말로써 표현을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어머니 역시 그녀 자신의 느낌을 말로써 표현을 하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B양이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에서 동료들과의 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학교에 가는 것이 싫어져서 짜증을 내는 것을 보고 어머니가 "전학을 보내줄까?"했던 것이 유일하게 그녀에게 그녀의 문제를 물어본 것이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B양에게 무슨 문제가 있느냐? 힘들어 하는 것이 있으면 말로 이야기를 해 보라"라는 말은 하지 않았고 무조건 전학을 보내줄까?라고 하는 말에 그녀는 그녀가 동료들과의 관계의 어려움들을 말로써 표현을 하지 못하고 그냥 어떤 일 때문에 힘들어서 그렇다고만 대답을 하고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행동을 해서 그 이후에는 어머니에게 절대로 그녀 자신의 문제점들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의 문제는 내면의 마음 속에 꼭꼭 숨기로 절대로 표현을 하지 않고 문제가 없는 것처럼 행동을 해 왔다고 했다. 왜 문제를 숨기려고 했느냐?라는 말에 그녀는 부모님에게 문제를 이야기를 하면 부모님이 괴로워하는 것이 고통스러워서 그녀 자신의 문제들을 숨기게 되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감정을 말로써 표현을 하지 않고 행동으로 고함을 지르거나 물건을 집어 던지는 것에 대해서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대답을 했다고 했다. 그러나 B양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어머니와 아버지는 자주 다투는 모습을 보게 되어 어머니가 아버지 자신의 감정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에 기분이 좋지는 않은 것으로 알 게 되었다고 했다. 그녀 자신도 아버지가 감정을 행동으로 표현을 하고 나면 그것에 대한 영향력 때문에 그녀 자신이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얼마 전에 그녀가 야간에 음식점에서 일을 할 때 그녀가 동료에게 화가 나서 고함을 질렀서 그녀의 감정을 행동으로 표현을 했을 때 약간 기분이 좋아서 감정을 억제하다가 한번씩 행동으로 폭발을 하는 것이 속이 시원함을 느꼈다고 좋아하게 되었다고 했다. 치료자는 B양에게 아버지의 감정 표현 방식이 감정을 쌓아두었다가 누적이 되면 행동으로 폭발시켜서 고함을 지르거나 물건을 집어 던지는 행동을 B양이 닮아있다고 지적을 했다. 그러고 한가지 더 붙여서 어머니가 아버지의 그러한 감정 표현 행동을 좋은 것으로 이야기를 한 것에서 B양이 아버지처럼 감정을 표현을 하고 있음을 지적을 했을 때 그녀는 깜짝 놀랬다. 치료자가 그녀의 그러한 감정 표현이 좋아서 그녀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말에서 아버지의 그러한 감정 표현들을 그녀가 들었을 때 기분이 좋았는지에 대해서 회고해 보도록 했다. 그녀는 아버지의 그러한 감정 표현 형식에 기분이 나쁘고 분노를 느꼈다고 했다. 고로 아버지의 감정 표현 방식을 닮은 것을 걷어 내고 감정을 숨기지 말고 치료자에게 표현을 말로써 하는 것을 새로 배워야 함을 강조 했다.

 B양은 말을 하는데 뜸을 들이는 시간이 많아서 치료자가 물어보거나 이야기를 하라고 시간을 주었을 때 2분 3분씩 뜸을 들이면서 느리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그녀의 특징이었다.

유아기 시절: 그녀의 유아기의 어린 시절에 엄마와 아빠와의 관계로 다시 되돌아갔다. 그녀는 친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서 자란 것이 아니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손에서 자라났다고 했다. 외할머니가 차갑고 무서운 분으로 그녀가 두려워했고 외할아버지는 그녀를 좋아해서 무릎에 자주 앉히고 귀여워해준 기억이 난다고 했다. 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강원도 xx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크다란 오징어 가공 공장을 운영했다는 말을 들었고 할아버지는 B양이 어릴 때 일찍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아들 3명과 2명의 고모집에서 돌아가면서 거주하고 있다고 했다. B양이 어린 시절에 어머니와 할머니와의 갈등을 본 것을 회고를 했다. 할머니는 자주 자식들 집에서 오래 거주하지 못하고 이집저집으로 돌아다닌다고 했다. 아버지는 세 번째의 아들로 서울에서 이름이 있는 xxx 공과 대학을 졸업하고 초반기에 xxx 호텔에서 몇 년간 근무하다가 어머니와 만나서 결혼을 했고 결혼 후에는 호텔 일을 그만 두고 아버지의 전공인 전기 분야에서 대기업의 전자 대리점을 하게 되었고 B양이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전자 대리점에서 같이 일을 해서 유아기 때 엄마와 친밀관계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녀는 어머니에게 크게 애착을 보이지 않았다고 회고를 했다. 어머니가 직장에 나가려고 할 때 B양이 매달리자 외할머니가 프라이팬과 쇠고기를 주면서 요리를 해 먹으라고 전기 화덕에 프라이 팬을 올려주어서 그녀가 쇠고기를 요리를 해서 밥을 먹었던 것들을 회고를 했다. 어머니를 찾지 않고 전열기 화덕 위에 프라이팬으로 요리를 해 먹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고 털어 놓았다. 이후에 그녀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지금이 강원도 xxx 지역의 고향으로 아버지가 이사를 해서 그곳에서 아버지는 지금까지 식료품을 제외한 모든 물건들을 파는 상점을 운명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를 하면서 치료자가 느낀 것은 그녀는 대인관계에서 애착 형성에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 자신의 느낌과 생각과 감정을 말로써 표현을 하는데 크다란 문제가 있음을 발견을 했다. 앞으로 치료에서는 그녀 자신의 생각, 느낌, 감정, 지각, 상상, 감각 등을 미주알 고주알 이야기를 하는데 집중되어질 것임을 알 게 했다.

 다음의 치료 회기는 B양이 섹스 문제와 감정 억압 문제들이 분석되어지면서 그녀의 문제의 핵심이 하니씩 드러나고 있었다. 상세하게 알고 싶은 사람은 다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