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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38세의 직장인 D씨

증세: 심장 박동, 호흡에 집착해서 죽음 공포에 시달리고 있음

접촉: D씨는 작년에 6개월간 치료자에게 공황 장애 때문에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 때 좀 더 치료를 받으라는 치료자의 권유에 이제는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겠다고 치료를 종결했던 사람이었다. 그 이후 약 1년이 지나면서 공황 장애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으나 가끔 심장 박동, 호흡에 집착해서 죽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좀더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다시 치료자를 찾아왔음

진단명: 불안 장애, 공포증(죽음 공포증), 자아 장애

치료 기간: 1주일에 1회기로 2시간씩 분석치료를 받고 있음

치료의 결과: 치료 중반기에 들어가면서 D씨는 특히 자동차의 남버에 4 숫자가 보이는 것을 피하게 되고 자주 4 숫자가 의미하는 죽음이 떠오른다고 치료 회기 중간에 치료자에게 자주 전화로 두려움을 호소하는 경향이 잦아지고 있었다. 다음의 치료 회기는 약 15회기로 치료 30시간의 치료 회기를 지나가면서 치료의 과정을 요약한 것이다.

 

치료의 과정 

 D씨는 최근에 치료 회기 중간에 간간히 치료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서적 택배로 탑차를 몰고 서적을 매일 같이 배달을 하는 도중에 앞에 가서나 옆으로 지나가는 자동차들의 번호 판을 유심히 보게 되고 그 번호판에 4자 번호가 들어있는 자동차들을 보게 되면 두렵고 심장이 뛰고 호흡이 가파진다고 자주 호소를 해 오게 되었다.

 치료자는 이 문제의 근원이 D씨가 큰 아들 xxx 군이 출생 직후부터 5년-6년 동안에 겪었던 심리적 고통에 뿌리가 있음을 밝혀낼 수 있었다. 그는 그러한 고통들을 부부 사이에서도 혹은 어느 누구에게도 한번도 마음 놓고 표현을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 분석되어진 것이었다.

 

첫째 아들의 출산

 결혼 후에 부인이 출산 일이 가까워 오자  D씨의 집 인근에 있는 산부인과 의원에 입원을 했고 출산 시에 부인의 골반이 작아서 담당 의사로부터 일단 자연 분만을 시도해 보고 나서 어려우면 제왕절개를 하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하라고 승낙을 했다. 그 담당 의사는 부인의 진통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부인에게 분만 촉진제를 주사를 했고 진통을 유도를 했으나 출산이 어려워지자 두 번째 분만 촉진제를 다시 주사를 했고 그래도 분만이 어려워지자 이번에는 제왕절개를 해서 태아를 끄집어 낸 것이었다. 출산한 아기는 울지를 않았다고 했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그래도 괜찮다고 해서 부부는 걱정이 되었으나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러나 출산한 신생아는 계속해서 울지 않았고 신생아는 계속 용을 써는 모습(아기가 울지도 못하고 으응--으응하면서 얼굴과 신체를 뒤틀어 보이는 고통스러움을 보이는 행동)이 평범한 부부가 보아도 아기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계속해서 담당 의사 선생님에게 아기가 이상이 있는 것 같다고 해도 그 담당 의사는 괜찮다는 말만 하고 출산 4일 후에 집으로 퇴원을 했다고 했다.

 퇴원해서 집에 돌아혼 이후에도 신생아는 울지를 않고 계속 용을 쓰면서 괴로워하는 모습 때문에 퇴원해서 1주일이 지난 후에 즉각 xxx 대학 병원으로 아기를 데리고 달려갔다. xxx 대학 병원에서는 환자들이 많아서 대기를 해야 한다는 말에 다시 xxx 종합 병원으로 응급실에 아기를 데리고 입원을 시켰다. xxx 종합 병원에서는 아기가 폐염이 있으니 이것을 치료를 하면서 아기가 오줌을 잘 못누는 것 같으니 계속 검사를 해 보자고 했다. 종합 병원 의사는 아기가 소변을 잘 보지 못해서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으나 xxx 종합 병원에서 1.5개월이 지나도 "희귀병"이라는 말만 했지 어떻게 하려고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 종합 병원의 응급실에는 수 많은 응급 환자들이 실려오고 있었다. 그 중에 초등학교 4학년 정도 되는 한 소년이 호흡이 어려워서 응급실에 실려왔고 그 소년이 결국 호흡 곤란으로 사망하는 모습을 D씨가 옆에서 지켜보게 되었다고 했다.

 그 시점에서 xxx 종합 병원에서 D씨의 신생아는 "희귀병"으로 "가망성이 없으니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라"는 최후의 통첩을 받았고 D씨는 그 당시에 사진사로 암실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하다가 암실에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에 공포를 느꼈다고 했다. 혹시 xxx 종합 병원 응급실에 1달 반 동안 입원해 있는 첫째 아들인 신생아 때문에 걸려오는 부고 즉 사망 전화가 아닐까 해서 하루 종일 숨을 죽이면서 두려움에 떨었다고 했다. 죽음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서 부인의 언니의 남편 즉 큰 동서가 답답해서 병원 측에 크게 항의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여기에서 자신이 없으면 다른 큰 병원으로 보내주지 않고 왜 우물주물하면서 시간을 끌고 있느냐?" "당신네 들이 치료에 자신이 없으면 다른 큰 병원을 소개해 주어서 보내주어야 하지 않느냐?" "왜 희귀병 따령만 하고 있느냐?"고 따지게 되었고 병원 측에서는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명령이 내려졌다. D씨 부부는 신생아를 데리고 인근에 있던 xxx 대학 병원의 응급실에 달려 갔고 그 대학 병원의 응급실에서는 D씨의 아들을 받아줄 수 없다고 거부를 했다. 그래서 즉각 서울대학 병원의 응급실에 달려 갔고 그 병원에서는 "이 아기를 빨리 데리고 오지 않고 왜 이제 데리고 왔느냐?"라고 나무라면서 즉각 수술에 들어갔다고 했다. 오줌을 누는 방광에 문제가 생겨서 수술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출생 후에 오줌을 누려고 할 때 마다 고통스러워써 얼굴을 찡그리고 용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수술 후에 D씨의 첫째 아들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고 이후에 4년-5년 동안에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고 했다.

 수술 후에 큰 아들 K군은 장애자로 남게 되었고 오줌을 혼자서 누지 못하는 장애로 남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은 K군이 사춘기로 중학교 2학년이 되었고 지금도 부모가 밤에 오줌을 누도록 도와주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D씨는 지금까지 출산으로 입원을 했던 그 산부인과 의사에게 분노와 적대 감정을 쌓아두고 있었다. 부부는 속으로는 그 산부인과 의사의 의료 사고 때문에 K군이 장애아가 되었다고 확고하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K군의 출산 이후에 한번도 그 산부인과 의사에게 항의나 분노를 표현해 본 적도 없었고 또 xxx 종합 병원의 의사들에게도 한번도 분노를 표현해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속으로는 출산을 맡았던 산부인과 의사에게 분노, 원망과 적대 감정이 쌓여 있었다. D씨는 임신 10개월까지는 정기적으로 부인이 산부인과에 들나들었고 태아와 임신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출산 시에 그 산부인과 의사가 2번이나 분만 촉진제를 주사한 것이 K군의 장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지금까지 확고하게 믿고 있었다. 출산 시에 그 산부인과 의사는 부인의 출산 일을 잘못 계산을 해서 진통도 없는 부인에게 분만 촉진제를 두 번이나 주사한 것이 K군의 장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D씨는 K군이 성장해 가면서 K군에게 쏟은 장애자를 양육 하는데 어려움들을 말로써 표현을 할 수가 없었다. 가끔 TV에서 유명한 의사 선생님들의 특강을 들어면서 출산 시에 분만 촉진제가 신생아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것을 몇 번 보게 되었고 K군이 장애인이 된 것은 틀림없이 2번이나 맞는 그 분만 촉진제가 틀림없다고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애통의 소화 과정

 마음의 상처들은 D씨의 내면의 마음 속에 쌓여있었고 이 상처들을 끄집어 내어서 애통의 과정을 거치도록 했다. 내면 속에 분리되어 자아로부터 고립되어있는 상실, 아픔, 고통들을 끄집어 내서 그것을 말로써 표현하게 하고 그것들을 정화시켜서 내면의 상처들을 수리한 후에 자아에 통합하는 과정을 거치도록 했다. D씨가 자동차나 길거리에서 보는 4라는 숫자들은 한자어로 4 숫자와 같은 발음의 사 즉 死(죽을 사)을 의미하는 것으로 지각되어진 것이었다. 그 죽음의 공포는 D씨가 결혼 후에 부인의 자녀의 출산으로 얻는 첫 아들의 고통을 D씨가 신생아의 고통스런 모습을 옆에서 지겨 보면서 스스로 부모로써 어떻게 그 고통을 제거해주고 고통에서 해방시켜주지 못하는 무력감에서 비롯된 것임을 분석해 낼 수 있었다.

 치료자는 D씨의 내면에 쌓인 그 출산을 맡은 산부인과 의사에게 분노를 말로써 표현을 하게 했다. D씨는 울부짖어면서 그의 분노와 항의를 토해 냈다. 그가 K군을 양육하고 키우면서 지금까지 장애인의 부모로써 고통을 받았던 것을 아무에게도 부부 사이에서도 서로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쌓아놓고 있었다. D씨는 눈물을 흘리면서 그 분노들을 토해냈다. "의사 선생님 우리는 순진하고 착해서 모든 의사 선생님들이 다 유능한 사람들로 믿고 맡기고 안심을 했는데 당신을 믿었던 우리가 바보였습니다. 평범한 우리 부부가 보아도 태어난 신생아는 울지를 못했고 아기가 용을 쓰면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아기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는데고 당신은 아무 이상이 없다는 말한 대풀이 했고 결국 4일 후에 퇴원을 시켰습니다." "당신이야 말로 우리 K군을 장애자로 만든 장본인입니다." "우리가 법을 몰랐기 때문에 당신을 의료 사고로 고발을 해서 K군에 대한 손해 배상을 했어야 했는데 우리가 무지해서 당신에게 항의도 한번 못하고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내 마음 속에는 당신에 대한 원망, 적대감정, 분노를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D씨는 경제적으로도 어려웠고 집 가까이에 있다는 이유도 이름없는 작은 산부인과를 찾은 것이 화근임을 뼈져리게 후회하고 있었다. 결국 그 산부인과 의원은 몇 달 후에 화재로 소실되어 그곳에서 사라지고 지금은 없다고 했다. D씨는 그것이 하늘이 내린 인과응보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xxx 종합 병원의 의사들에게 분노를 토해냈다. "희귀병"으로 이름을 붙이고 K군을 1.5개월 동안 응급실에 붙잡아 놓은 것에 대한 분노를 말로써 토해내게 했다. "당신에 의사들은 당신들이 잘 모르겠다는 빨리 더 큰 병원으로 빨리 보내주었어야 했는데 왜 1.5개월 동안 붙잡아 두고 있었습니까?" "우리 K군이 서울대학 병원에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때 대학병원의 의사 선생님이 왜 지금왔으냐 조금만 빨리 왔었어도 K군이 장애인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원망을 들어면서 D씨는 xxx 종합 병원의 의사들에게도 분통이 터져나왔다.

 K군이 서울 대학 응급실에서 수술 후에 생명에는 지장이 없게 된 후에도 늘 4년-5년 동안에는 병원에 응급실에 너무나 많이 자주 드나들었다고 했다. K군이 호흡이 거칠어 지거나 용을 써면 부부는 즉각 K군을 안고 인근 종합 병원의 응급실에 달려간 것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고 했다. 지금까지 장애인 K군을 양육 하면서 받은 고통을 부모로써 말로써 표현할 수 없다고 털어 놓았다. 그 5년 동안에 K군을 양육하면서 받은 심리적 고통을 앞으로 남은 치료 기간에 토해내고 분노, 미움, 적대 감정 등을 다스려야 D씨의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근본적으로 해결이 되어질 것임을 이야기를 했을 때 D씨는 스스로 인정을 했다.

 

이론적 근거

 D씨는 죽음에 대한 공포 즉 4라는 숫자는 죽은 사 死에서 온 것임을 D씨 스스로가 지적을 했다. 고로 D씨의 4숫자에 대한 두려움을 죽음에 대한 두려움임이 밝혀진 것이다. 그러나 그 죽음의 공포는 D씨 자신의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고 K군이 출생 후에 죽음의 문턱에서 드나들면서 부모로써 아버지로써 K군의 고통스런 감각이 D씨의 몸과 마음에 각인이 된 것임을 지적을 했을 때 D씨는 무릎을 쳤다. K군이 출생 후에 특별히 4개월-5개월 간 생과 사를 넘나들었을 때 K군이 숨을 몰아쉬고 용을 쓰고 오줌을 줄 때 괴로워하는 그 감각적 고통을 D씨가 옆에서 지켜보면서 아버지로써 K군의 고통을 완화시켜주지 못하고 그져 바라만 보고 있었던 D씨의 무기력감에 각인된 것에서 오는 것은 분명했다. D씨는 이것을 D씨 자신의 죽음으로 느끼고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치료에서 K군의 출생 직후에 D씨 부부가 받은 심리적 상처와 고통들을 칼로 찢어내서 그 곪아터진 부분을 닦아내고 씻어내어 마음의 정화 과정을 거치셔 이것을 전체 자아에 통합을 하는 과정이 앞으로 남아 있는 치료의 과정임을 이야기를 하면서 D씨가 자신의 마음 속의 아픔과 K군에 대한 고통과 아픔을 구분하도록 하게 했다.

 왜 D씨의 죽음에 대한 공포가 D씨 자신의 죽음이 아니고 K군의 죽음인가?하는 이론적 근거는 K군이 출생 직후 1달 만에 xxx 종합 병원 측의 의사선생님으로부터 K군의 병이 "희귀병"으로 진단을 받았고 그리고 그 진단 얼마 후에 D씨는 병원 측으로부터 가망이 없으니 "K군의 죽음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최후의 통첩을 받았던 것과 연결 되었다. 그 당시에 D씨는 사진사로써 암실에서 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고 캄캄한 암실에서 전화 벨이 울리면 가슴이 쿵쾅거리면서 호흡이 가파지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그 시점을 회상하면서 그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두려움에 떨면서 살았다고 회상을 했다.

 최근에 K군은 중학교 2학년으로 사춘기에 들어가면서 부모가 K군을 컨트롤하기 어려워게 된 점과 그리고 K군은 장애인 교회에서 일요일마다 봉고차로 K군을 데리고 가서 교회에서 돌보아주는 바람에 지금까지 조용하게 지내왔으나 최근에 교회에서 K군이 사춘기로 들어가면서 교회에서 돌보아주는 시기가 지났다고 통고를 받고 다른 교회로 옮기려고 하는 문제들이 겹친 것을 밝혀낼 수 있었다.

 사춘기에 들어선 K군이 행동이 거칠어지고 부모님과 갈등이 잦아지면서 아버지인 D씨에게 부인이 K군을 컨트롤해 달라는 SOS의 요청을 받은 것과도 관계가 있었다. 이런 주변 환경이 D씨에게 지금까지 마음의 깊숙한 곳에 묻어두렀던 K군의 출생 시에 죽음을 넘나들었던 그 고통스러움에 연결이 되면서 지금까지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지 못하고 일상생활을 해 왔던 D씨에게 최근에 죽음의 두려움을 몰고 오게 된 것과 연결이 될 수 있었다.

 지난 주일부터 이 문제를 다루면서 D씨는 치료 회기 시간의 중간 중간에 일상생활에서 치료자에게 자주 전화로 옆으로 지나가는 자동차의 번호판에 4숫자를 보게 되고 또 그 4숫자를 피하려고 하는 것에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차서 죽는 것이 아니가 두렵다고 계속해 시도 때도 없이 하소연의 전화는 뚝 거쳤다는 것을 볼 때 D씨의 죽음의 공포는 바로 K군의 출산 후에 받은 K군의 괴로움과 죽음의 공포가 D씨에게 각인된 것이 틀림없다는 확신을 얻을 수가 있었다.

다음의 치료 과정은 D씨가 20회 치료 회기 총 40시간의 치료의 과정을 거치면서 장애인의 큰 아들의 컨트롤에 문제가 생기게 되면서 부부가 겪는 고통 때문에 두려움과 분노, 불안 때문에 생긴 심리적 문제를 신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